박진우 시인의 시《잔고殘高》 ㅡ 하루의 잔고를 묻지 않는 사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박진우 시인의 시《잔고殘高》 2026.03.02
□ 박진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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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고殘高
시인 박진우
저녁 창에 빛이 고이고
오늘도 하루를 조용히
인출한다
주머니 깊숙이 접힌
영수증 몇 장
구겨진 동전처럼 남은 숨
창틀 위로
바람 한 푼 내려앉고
별 하나
어둠 쪽으로 미끄러진다
계산기를 두드리다
불이 꺼진 화면에
내 얼굴이 겹친다
잔고를 묻지 않은 채
창문은
조용히 닫는다
■
박진우 시인의 시《잔고殘高》
ㅡ 하루의 잔고를 묻지 않는 사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진우 시인은 먼저 사람의 결이 고운 이다.
말보다 침묵이 앞서고, 주장보다 경청이 익숙한 성품.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조용히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는 태도. 그의 시가 섬세하다는 평은 단순히 표현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인품에서 비롯된 호흡의 길이와 관련이 있다. 서두르지 않고, 과장하지 않으며, 작은 사물 하나에도 시간을 들이는 사람.
《잔고殘高》는 그런 시인의 내면이 고스란히 반영된 작품이다.
이 시는 화려한 장면을 펼치지 않는다. 대신 저녁 창에 고이는 빛에서 출발한다.
“오늘도 하루를 조용히 인출한다”는 첫 선언은 이미 그의 시적 태도를 드러낸다.
하루를 ‘보낸다’가 아니라 ‘인출한다’고 말하는 감각.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꺼내 쓰는 자산이 된다. 그 자산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묻는 일, 그것이 시인의 성찰이다.
박진우 시인의 시 세계는 소리 낮은 계산법을 따른다.
“주머니 깊숙이 접힌 영수증 몇 장 구겨진 동전처럼 남은 숨.”
남은 숨을 동전에 비유하는 감각은 예리하면서도 절제되어 있다. 그는 피로를 과장하지 않는다. 다만 하루의 무게를 최소 단위로 환산해 보여 준다. 숨은 생의 기본 단위이고, 동전은 가치의 최소 단위다. 그 둘을 겹쳐 놓는 순간, 존재의 잔량이 드러난다.
“창틀 위로 바람 한 푼 내려앉고.”
바람마저 ‘한 푼’으로 계산하는 이 대목에서, 시인은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모든 것이 숫자로 환산되는 세계 속에서 자연조차 화폐 단위로 호출된다.
곧이어
“별 하나
어둠 쪽으로 미끄러진다.”
별은 계산되지 않는다. 인간의 장부와 무관하게 제 길을 간다. 이 대비가 이 시의 미의식을 형성한다. 계산 가능한 것과 계산 불가능한 것의 긴장.
가장 깊은 장면은 “불이 꺼진 화면에 / 내 얼굴이 겹친다”는 부분이다. 숫자가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자신의 얼굴이 떠오른다.
박진우 시인의 시는 여기서 본질을 드러낸다. 잔고를 확인하려던 행위는 결국 자기 점검으로 이어진다. 경제적 잔고가 아니라 존재의 잔고. 오늘 하루, 무엇이 남았는가. 무엇이 빠져나갔는가.
마지막에서
“잔고殘高를 묻지 않은 채 / 창문은 / 조용히 닫는다.”는 결말은 시인의 인품을 닮았다.
끝까지 소란을 만들지 않는다. 남은 것이 많든 적든, 확인하지 않고 닫는다. 이는 체념이 아니라 품위다. 모든 삶을 숫자로 환산하지 않겠다는 태도. 잔고를 묻지 않음으로써, 외더 깊은 질문을 남긴다.
박진우 시인의 시는 크지 않다. 대신 오래 남는다. 그것은 그의 인품처럼 조용하고 단단하다. 하루를 인출하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불 꺼진 화면에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
그 소박한 장면 속에서 그는 삶의 윤리를 세운다. 잔고는 숫자로 남지 않지만, 태도로 남는다.
그 태도야말로 시인ㅈ박진우 시가 남긴 가장 값진 잔고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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