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시인의 《서리꽃》 ㅡ서리꽃에 기대어 부르는 오래된 숨결의 사모곡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박정민 시인의 《서리꽃》 ㅡ서리꽃에 기대어 부르는 오래된 숨결의 사모곡 2026.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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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리 꽃
시인 박정민
울 엄니 외로울까 봐
고운 잔디 위에
하이얀 서리꽃 피었네
햇살이 비치면
금세 사라져 버릴
하얀 서리꽃
엄니 닮아 강한 척
꼿꼿하게 서릿발 세워
서 있지만 다리 아프겠다
하얀 서릿 꽃밭에
한 발짝 살포시 내딛으니
사각사각 고은 장단 맞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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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시인의 《서리꽃》
ㅡ서리꽃에 기대어 부르는 오래된 숨결의 사모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인 박정민의 《서리꽃》은 단지 어머니를 떠올리는 서정이 아니라, 삶을 이끌어온 자식의 속깊은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사모의 노래다. 이 시를 읽다 보면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온기가 있다.
화려한 수사나 힘주어 꺼낸 말이 아니라, 오래 품어온 마음이 스스로 고여 맺힌 듯한 결이다.
하여, 이 작품은 애틋함 이전에 다정하고, 슬픔 이전에 포근하다.
첫 연에서 “울 엄니 외로울까 봐”라고 부르는 대목은 이미 시의 모든 정서를 품고 있다. ‘울 엄니’라는 부름에는 세월이 묻어 있다. 그 안에는 가난한 살림살이 속에서도 묵묵히 자식을 키운 날들, 말없이 견뎌낸 숱한 새벽, 굽은 등 뒤로 감추어둔 고단함이 함께 서려 있다.
시인은 서리꽃을 어머니 곁에 피워놓듯, 말없는 위로를 건넨다. 그것은 커다란 효심이라기보다 살뜰한 일상의 마음이다.
햇살에 스러질 서리꽃을 바라보며 시인은 어머니의 삶을 떠올린다. 곧 사라질 줄 알면서도 피어나는 서리꽃은 오래 참고 살아온 어머니의 모습과 닮았다. 겉으로는 단단히 버텨온 듯 보였으나 속으로는 여린 숨결을 간직한 사람.
시인은 그 여림을 이제야 헤아린다. 젊은 날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세월을 건너며 또렷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이 시에는 뒤늦은 깨달음과 미안함, 그리고 더 늦기 전에 건네는 따뜻한 마음이 함께 흐른다.
특히 “다리 아프겠다”는 한마디는 이 시의 심장이다. 이 말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시인의 몸에서 비롯된 감정이입이다. 요즘 시인이 겪고 있는 다리 통증의 체험이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로 건너가며, 이해는 더욱 깊어진다. 젊은 시절에는 몰랐던 어머니의 고단함이 이제는 자신의 몸으로 느껴진다. 이 말은 애틋하면서도 담담하다. 과장되지 않기에 더 크게 울린다.
마지막 연의 “사각사각 고은 장단 맞추네”는 이 시를 가장 따뜻하게 마무리한다. 눈 위를 걷는 발소리가 곧 어머니를 향한 마음의 리듬이 된다. 그 소리는 슬픔의 울림이 아니라 동행의 울림이다.
시인은 이제 어머니와 나란히 걷고 있다. 비록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지만, 마음만은 늦게라도 어머니 곁에 닿고 있다.
이 시의 미덕은 토박이말의 온기다. ‘엄니’, ‘고운’, ‘살포시’, ‘사각사각’ 같은 말들은 꾸밈없고 투박한 듯하면서도 가장 깊은 정을 전한다.
이는 시인이 평소 지녀온 삶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요란한 감정보다 오래 머무는 정, 번쩍이는 말보다 살붙이 같은 말결을 더 신뢰하는 태도다.
요컨대,《서리꽃》은 한 자식이 늦게 깨달은 사랑의 기록이다. 서리꽃처럼 잠깐 피었다 스러질지라도, 그 순간만은 가장 곱게 빛나는 마음. 이 시를 읽고 나면 오래 잊고 있던 어떤 부름 하나가 조용히 되살아난다.
마음 한 켠에서 오래도록 고운 서리꽃이 녹지 않고 남는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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