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범수 시인의 《비둘기가 죽었다》 — 무심 속에서 건져 올린 인간의 온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한범수 시인의 《비둘기가 죽었다》 — 무심 속에서 건져 올린 인간의 온기 2026.03.06
□ 한범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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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가 죽었다
시인 한범수
죽었다
비둘기가
차가운 거리
차들이 지나갔다
타이어 자국이 났다
날갯죽지가 흩어졌다
차창밖으로 지켜보는 시선
없다
비둘기가
흔적만 남았다
햇살이 한쪽 면만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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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범수 시인의 《비둘기가 죽었다》
— 무심 속에서 건져 올린 인간의 온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범수 시인의 시 《비둘기가 죽었다》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장 단정한 언어로 응시한 작품이다.
“죽었다 / 비둘기가”라는 선언은 설명을 버리고 존재의 사실만 남긴다. 감정의 과장도 없다. 차가운 거리, 지나가는 차들, 타이어 자국, 흩어진 날갯죽지. 시인은 사물의 배열만으로 세계를 드러낸다.
이 절제는 곧 그의 미의식이며, 한평생 강단에서 후학을 길러 온 학자이자 휴머니스트로서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대학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마주하던 그의 시선은 언제나 섬세했다. 한 사람의 말투와 숨결, 침묵의 결까지 읽어내던 그 습관은 시 속에서도 그대로 살아 있다. 전철역으로 가는 교차로에서 마주한 죽음 앞에서도 그는 먼저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관찰한다.
그리고 오래 바라본다.
그 바라봄 속에는 차가운 분석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이 놓여 있다.
“차창밖으로 지켜보는 시선 / 없다”라는 구절은 세계의 무심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시인의 인간적 윤리를 반사한다. 누구도 멈추지 않는 자리에서 그는 멈춘다.
누구도 보지 않는 장면을 그는 끝까지 바라본다. 그 태도는 학자로서의 성실성과 인간을 향한 존중에서 비롯된 것이다. 죽음의 원인을 캐묻지 않는다. 다만 존재의 마지막 자리를 지켜본다.
아내를 전철역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 이미 치워진 자리와 지워진 흔적 앞에서도 시인은 침묵한다. 존재는 남지 않는다. 흔적조차 사라진다.
그 사라짐을 기록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을 향한 마지막 예의라고 그는 믿는다.
하여, 그의 시선은 냉정해 보이면서도 끝내 따뜻하다.
햇살이 한쪽 면만 밝히는 마지막 장면은 그의 삶의 철학을 상징한다. 세계는 언제나 밝음과 어둠을 함께 지닌다.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역시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다. 한범수의 시는 그 경계에서 인간을 놓치지 않는다. 절제된 언어, 섬세한 시선, 따뜻한 가슴.
그것이 그의 시가 오래 존경받는 이유이며, 휴머니스트로서의 삶이 작품 속에서 조용히 살아 있는 증거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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