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김선영 시인의 시 《동승》 을 읽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선영 시인의 시 《동승》 을 읽다 2026.03.14
김선영 시인의 시 《동승》 을 읽다

□ 김선영 시인의 시집 《달빛 해일》 뒷부분에

동승이 실려 있다

□ 제 1회 여성인 문학상 운문부 수상자로

축하를 받고 있다.

□ 김선영 시인

동승

시인 김선영

산목련 산에 또 피면

고갯마루에 올라 기다리리

목련꽃 흰 밤에

멧새는 소리 죽여 울고

호롱불 켜고 소복 여인

법당 안에 염불 올리는 밤

자작나무에 걸린 흰 달은

나를 불러라

여울물이 눈 감은 채 울고

아윈 가을바람, 그리운 마음의 고향아

주고 간 염주 알들은 돌인 양 차다

시월 밤 이 밤은 서러워만 가라

때문은 장삼 흩날리고

살뜰이 그리운 어머니

산천이 깊숙이 가라앉고

법당에 호롱불 아니 끄면

눈가에 맴도는 눈물

그리운 마음의 고향이여

해랑자의 서글픈 전설이

갈잎처럼 쌓여저 간다

가난한 꿈이 잎처럼 시들어 간다

김선영 시인의 시 《동승》 을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선영 시인의 《동승》은 산사의 밤을 배경으로 한 서정이면서 동시에 유년의 결핍과 귀향의식이 응축된 심리적 서사이다.

서울사범학교(본과) , 지금의 고교 1학년부터 이미 동아일보 ‘학생문예’에 연이어 발표하며 박목월 · 서정주 시인 등에게 인정받았던 그의 초기 재능은 이 작품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김선영 시인의 《동승》은 산사의 밤이라는 단일한 시공간 속에서 유년의 상처, 모성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 그리고 시대적 체험이 서서히 겹겹이 쌓이며 깊어지는 서정의 구조를 보여준다. 작품은 외형상 정적인 풍경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어린 동승의 심리적 진폭이 미세하게 파동치는 내면 서사다.

이 시의 진정한 긴장은 사건이 아니라 정서의 이동에서 형성된다.

첫 연 “산목련 산에 또 피면 / 고갯마루에 올라 기다리리”는 계절의 순환을 기다림의 윤리로 전환한다. 목련은 단순한 봄의 징표가 아니라 회귀의 신호이며, 동승에게는 어머니를 향한 희미한 귀향의 약속이다. 고갯마루라는 공간 또한 경계적 장소로서, 속세와 산사, 현실과 기억 사이에 선 존재의 위상을 상징한다. 이처럼 시의 출발은 이미 결핍을 전제한 존재론적 위치 설정이다.

이어 “목련꽃 흰 밤에 / 멧새는 소리 죽여 울고”에서 흰빛과 침묵은 정서의 밀도를 높인다. ‘소리 죽여 운다’는 표현은 울음조차 절제해야 하는 수행자의 조건과 겹치며, 동승의 억눌린 감정을 자연의 소리로 치환한다.

“호롱불 켜고 소복 여인 / 법당 안에 염불 올리는 밤”은 이 시의 정서적 중심축이다. 법당이라는 종교적 공간과 소복 여인의 형상은 상징적으로 중첩되며, 수행의 세계와 모성의 세계가 교차하는 장면을 형성한다. 여기서 소복 여인은 현실의 인물이 아니라 결핍이 만들어낸 기억의 형상이다.

“자작나무에 걸린 흰 달은 / 나를 불러라”에서는 화자의 내면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달은 초월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어머니의 얼굴로 치환되는 이미지다.

이어지는 “여울물이 눈 감은 채 울고”는 감정의 완전한 내면화를 보여준다. 울음은 외부로 분출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순환하며, 이 지점에서 시는 철저히 침잠하는 정서를 구축한다.

중반부 “아윈 가을바람, 그리운 마음의 고향아 / 주고 간 염주 알들은 돌인 양 차다”는 촉각적 이미지의 극대화다. 염주는 종교적 도구이면서 동시에 기억의 잔해다. 그것이 차갑게 식어 있다는 사실은 시간이 감정을 어떻게 냉각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시월 밤 이 밤은 서러워만 가라”는 단순한 탄식이 아니라, 시간 자체가 슬픔의 방향으로 흐른다는 인식이다.

후반부에 이르면 개인적 서정은 더욱 깊어지며 넓어진다. “때문은 장삼 흩날리고 / 살뜰이 그리운 어머니”에서는 승복의 이미지와 모성의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결합된다. 장삼의 흩날림은 수행자의 외형이지만, 동시에 결핍의 상징이 된다.

이어 “산천이 깊숙이 가라앉고 / 법당에 호롱불 아니 끄면 / 눈가에 맴도는 눈물”은 자연과 인간의 감정이 동일한 호흡으로 움직이는 장면이다. 자연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동승의 정서를 반영하는 내면 풍경이다.

종결부 “해랑자의 서글픈 전설이 / 갈잎처럼 쌓여저 간다 / 가난한 꿈이 앞처럼 시들어 간다”는 시의 지평을 개인의 체험에서 시대의 체험으로 확장한다. 해랑자의 전설은 떠도는 존재의 집단적 운명을 환기하며, 갈잎처럼 쌓여가는 기억은 역사적 시간의 무게를 상징한다.

여기서 동승의 슬픔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라 전후 세대의 공통된 감정으로 확장된다.

《동승》은 절제된 언어와 고요한 리듬 속에서 감정을 응축하며,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여백으로 깊이를 형성한다. 김선영 시인은 고교 1년 작임에도 상징과 서정, 개인과 시대를 자연스럽게 결합시키는 역량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모성을 향한 귀향의식과 시대적 상실을 한 몸에 담아낸 서정시의 성취로서, 그의 시 세계가 지닌 근원적 울림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내는 한 편이라 할 수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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