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구 시인의 시 《메콩강 바람》과《호치민의 밤》을 읽고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황성구 시인의 시 《메콩강 바람》과《호치민의 밤》을 읽고 2026.03.15
□ 이어도문학상을 수상하고 있는 황성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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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의 밤
시인 황성구
낯선 도시라고 처음 말하려다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어디선가 한 번쯤 걸어본 듯한 거리
습한 바람이 가로수 잎을 흔들 때 오래된 기억 하나가 조용히 돌아온다
십여 년 전 스쳐 지나간 시간들이 골목의 불빛처럼
하나 둘 켜진다
분주한 오토바이 물결 사이로 사람들으 웃음이 흐르고
그 소리 위로 열대의 저녁이 따뜻하게 내려앉는다
낯설지 않은 이국에서 나는 잠시 길 위어 서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본다
도시는 변했지만 어쩌면 조금 달라진 것은 거리보다도
그때보다 조금 더 천천히 걷는 나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밤
이 도시의 불빛은 여행자의 눈에 낯선 별이 아니라
오래전에 한 번 스쳐간 친근한 별빛처럼 조용히 반짝인다

□호치민의 밤
메콩강 바람
시인 황성구
남녘 강은 말없이 흘러도 세월으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어디서 시작했는지 모를 물길이 먼 산과 들을 지나 이 도시의 저녁까지 숨결처럼 이어진다
강가에 서면 낯선 나라의 바람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나는 문득 오래된 여행자의 마음으로 그 바람을 느껴본다
물결 위를 스치는 저 따뜻한 숨결 속에는 먼 상류의 숲과 이름 모를 마을과 사람들의 하루가 함께 실려 오는 듯하다
그래서 강은 흘러가는 물이 아니라 세상과 세상을 이어 주는 조용한 길 하나
오늘 밤 메콩의 바람은 낯선 땅에 선 나에게도 잠시 고향 같은 마음을 건네준다

□ 메콩강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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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구 시인의 시 《메콩강 바람》과《호치민의 밤》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황성구의 《호치민의 밤》과 《메콩강 바람》은 이국적 풍경을 노래하면서도 낯섦을 강조하지 않고, 외려 익숙함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환기하는 서정의 연속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두 시는 공간은 다르나 정서의 결은 하나로 이어지며, 여행자의 감각과 내면의 시간을 동시에 드러낸다.
《호치민의 밤》은 낯선 도시를 마주한 순간의 미세한 심리 움직임에서 출발한다.
첫 행에서 “낯선 도시라고 처음 말하려다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는 진술은 이미 낯섦의 해체를 예고한다. 화자는 이국의 풍경을 외부 대상으로 보지 않고 기억과 감각의 층위 속으로 끌어들인다.
“습한 바람이 가로수 잎을 흔들 때 오래된 기억 하나가 조용히 돌아온다”는 구절에서 현재의 감각은 과거의 시간과 맞물리며, 도시의 불빛은 “십여 년 전 스쳐 지나간 시간”의 환등처럼 밝혀진다.
특히 오토바이의 물결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인 장면은 도시의 역동성을 보여주면서도 그 위에 내려앉는 “열대의 저녁”이 정서를 안정시킨다.
시의 말미에서 도시의 불빛이 “낯선 별”이 아니라 “친근한 별빛”으로 변모하는 순간, 여행은 외부 탐색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회귀로 완성된다.
《메콩강 바람》은 보다 명상적인 흐름을 지닌다. “남녘 강은 말없이 흘러도 세월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첫 구절에서 강은 자연물이 아니라 시간의 서사로 제시된다.
이어 “먼 산과 들을 지나 이 도시의 저녁까지 숨결처럼 이어진다”는 표현은 물길을 하나의 생명적 흐름으로 확장한다. 강가에서 느끼는 바람은 단순한 기후 현상이 아니라 기억과 상상을 매개하는 감각이다.
특히 “먼 상류의 숲과 이름 모를 마을과 사람들의 하루가 함께 실려 온다”는 구절은 강을 통해 세계와 세계가 이어지는 구조를 보여준다. 종결부에서 메콩의 바람이 “고향 같은 마음”을 건네준다는 인식은 이국의 풍경이 결국 내면의 귀향으로 귀결됨을 말한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절제된 문장과 잔잔한 리듬 속에서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풍경은 묘사에 머물지 않고 시간과 기억을 매개하며, 여행은 낯선 체험이 아니라 내면을 돌아보는 서정적 행위로 변환된다. 황성구의 시적 미덕은 바로 이 고요한 사유와 균형 잡힌 시선에 있다.
■ 강바람 속에 남는 이름
청람
베트남으로 향한 일정은 결코 한가로운 여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새로 이어도문학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역할과 비즈니스 일정이 치밀하게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황성구 시인은 하루의 첫 숨결을 시로 연다. 눈을 뜨는 순간 언어는 이미 그의 곁에 와 있었을 것이다.
매일 두세 편의 시를 빠짐없이 써 내려가는 습관은 그에게 시가 노동이 아니라 호흡임을 말해준다.
삶이 먼저 있고 시가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시가 먼저 있고 하루가 그 뒤를 따르는 형국이다. 그의 하루는 마치 보이지 않는 잉크로 적혀 내려가는 일기처럼 조용히 시 속에 스며 축적된다.
호치민의 밤거리에서 그는 한 번쯤 걸음을 늦추었을 것이다. 분주하게 엇갈리는 오토바이의 물결과 눅진한 공기 속에서 도시의 불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기억의 파편처럼 흔들렸을 것이다.
그에게 도시는 지도 위의 이름이 아니라 오래전에 스쳐 지나간 시간의 표정이었을 것이다. 밤은 언제나 현재보다 과거에 가까운 시간이다.
이국의 거리는 어느새 낯선 장소가 아니라 한때 지나왔던 내면의 골목으로 변한다. 그 순간 그는 여행자가 아니라 시간을 건너온 사람으로 서 있었을 것이다.
메콩강가에서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강은 흐르되 말이 없고, 말이 없되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물결 위를 스치는 바람은 기후가 아니라 기억의 손길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강가에 서면 사람은 저절로 오래된 자신을 만난다. 강은 언제나 먼 상류에서 온 이야기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내일을 함께 싣고 흐르기 때문이다. 그 바람 속에서 그는 일정의 분주함을 잠시 내려놓고 오래된 여행자의 마음으로 서 있었을 것이다.
그때 그의 시선은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풍경 속으로 스며드는 시선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언제 어디서나 시를 쓴다. 그것은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여, 그의 시에는 과장된 장식도, 과도한 수사도 없다. 대신 하루의 온기와 사람의 체온이 잔잔히 스며 있다. 그의 문장은 급히 피어난 꽃이 아니라 오래 묵은 나무의 결처럼 단단하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시를 놓지 않는 태도는 결국 자신을 놓지 않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에게 하루를 견디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하루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다가오는 5월, 이어도를 주제로 한 작품만으로 백여 편을 묶은 시집을 최초로 펴낼 계획이라 한다. 바다 위에 실재하지 않는 섬을 노래하는 일은 결국 마음속의 섬을 찾아가는 일과 같다.
이어도는 지도에 없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가장 또렷한 귀향의 상징이다. 매일 새벽 시를 써 온 그의 시간을 떠올리면, 그 시집은 단순한 묶음이 아니라 긴 항해의 기록이 될 것이다.
이국의 밤과 강바람 속에서도 시를 놓지 않는 사람. 황성구라는 이름이 오래 남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그는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여, 그의 하루는 늘 조용히 반짝인다. 멀리서 보면 별빛 같고 가까이 다가가면 사람의 숨결 같은, 그런 빛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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