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자 시인의 시 《아직 남아 있는 길》을 읽고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변희자 시인의 시 《아직 남아 있는 길》을 읽고 2026.03.18
□ 한국문학신문에 게재된 변희자 시인의 시
《아직 남아 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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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남아 있는 길
시인 변희자
내일 뒤에
또 내일이 있습니다
오래된 나무에 기대어
해묵은 나이테 소리를 들어 봅니다
긴세월
빛과 바람을
얼마나 품었을지
짐작조차
쉽지 않아도
불끈 솟아오른
혈맥을 따라
길이 이어짐을 봅니다
나는
그 길 따라 걷고
어제에서 오늘
내일로 천천히
주어진 시간을
잠잠히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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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자 시인의 시《아직 남아 있는 길》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변희자 시인의 《아직 남아 있는 길》은 길을 말하지만, 실상은 시간을 말하고 존재를 말하는 시다.
시는 짧고 고요하지만, 그 안에는 한 생애가 응축되어 있다. 과장된 수사나 감정의 과잉 없이도 이 작품이 오래 울리는 까닭은, 시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이미 시의 형식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행 “내일 뒤에 또 내일이 있습니다”는 평범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시간에 대한 깊은 수용의 철학이 담겨 있다. 조급함도, 허무도 없다. 다만 이어지는 시간의 결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있을 뿐이다.
이어 “오래된 나무에 기대어 / 해묵은 나이테 소리를 들어 봅니다”라는 구절은 시인의 미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나이테의 소리를 듣는다는 발상은 사물의 표면이 아니라 시간의 내면을 감지하는 시적 감각의 본령이다.
“긴세월 / 빛과 바람을 / 얼마나 품었을지”라는 대목에서 나무는 더 이상 자연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온 시간의 축적이며, 존재의 깊이를 상징한다. 나이테는 곧 삶의 층위이며, 인간 존재의 기록이다.
시인은 그것을 분석하거나 단정하지 않는다. “짐작조차 / 쉽지 않아도”라는 절제된 인식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이해보다 존중을 택하는 태도다.
이 시의 중심은 “불끈 솟아오른 / 혈맥을 따라 / 길이 이어짐을 봅니다”라는 이미지에 있다. 길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솟아나는 생명의 흐름이다. 혈맥이라는 표현은 길을 단순한 이동의 통로가 아닌 살아 있는 시간의 결로 바꾼다.
이때 길은 공간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며, 삶의 흐름 그 자체가 된다.
종결부의 “나는 / 그 길 따라 걷고 / 어제에서 오늘 / 내일로 천천히 / 주어진 시간을 / 잠잠히 따라갑니다”는 선언이 아니라 깊은 고백이다.
그 안에는 어떤 과장도, 다짐도 없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걸어가는 태도만이 남는다. 이것이 바로 시인 변희자 시 세계의 본질이다.
홍천의 고즈넉한 둔덕 위, 남향으로 터를 잡은 소박한 집과 텃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그의 삶은 이미 하나의 시적 형식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길어낸 사유는 군더더기가 없고, 그만큼 더욱 단단하다. 그의 시에는 소음이 없고 설명이 없으며 과장이 없다.
대신 오래된 나무의 결처럼 고요하고 깊은 울림이 있다.
시인 변희자는 시인일 뿐 아니라 문학평론가이자 수필가로서,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을 비롯해 한국청람문학회, 한국현대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한국국보문인협회 등에서 활발히 활동해 온 문인이다.
아태문인협회 부회장으로서 문학적 교류의 지평을 넓혀왔으며, 국제계관시인연합 한국본부 회원으로서 시의 보편성과 품격을 함께 모색해 왔다.
황진이문학상 수상과 서울특별시장 표창은 그의 문학적 성취와 사회적 기여를 함께 증명한다.
또한 화훼장식기술사로서 자연을 다루는 섬세한 감각은 그의 시 세계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
시집 《가을 귀뚜라미》에서 드러난 절제된 서정과 깊은 울림 역시 이러한 삶의 축적에서 비롯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변희자 시인의 시는 보여주기보다 머문다. 말하기보다 듣는다.
하여, 그의 시를 읽는 일은 하나의 독서가 아니라 하나의 동행이다.
시 《아직 남아 있는 길》은 삶의 끝까지 남아 있는 시간을 조용히 응시하는 작품이며, 동시에 그 길을 겸허히 걸어가려는 한 영혼의 맑은 기록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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