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침묵의 해역에서 먼저 피어나는 계절 — 황성구 시인의 ‘이어도’와 시간의 감각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침묵의 해역에서 먼저 피어나는 계절 — 황성구 시인의 ‘이어도’와 시간의 감각 2026.03.22
침묵의 해역에서 먼저 피어나는 계절  — 황성구 시인의 ‘이어도’와 시간의 감각

이어도에서 봄을 맞다

시인 황성구

남쪽 먼 바다의 끝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민

신새벽은 언제나 그보다

조금 더 먼 곳에서 열린다

남녘 깊은 물길 위

파도 하나가 먼저 눈을 뜨고

물밑 이어도의 바위는

긴 겨울을 털어내듯 천천히 숨을 고른다

아직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른다

새봉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먼 바다 물결 끝에서 연둣빛 한 가닥에

햇살이 조용히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때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을 가르는 바다새 한 마리

크게 한 바퀴 돌아 이어도의 하늘에

가느다란 소식을 걸어 둔다

봄이 온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는 섬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계절

나는 그 바다의 문 앞에서 파도 소리를 쓸며

세상보다 먼저 봄을 맞는다

침묵의 해역에서 먼저 피어나는 계절

— 황성구 시인의 ‘이어도’와 시간의 감각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 시는 단순한 자연 서정이 아니다. 이어도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실상은 ‘먼저 도착하는 것들’에 대한 사유다. 시인은 인간의 인식보다 앞서 움직이는 세계, 곧 자연의 시간과 감각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은 공간의 시가 아니라 ‘시간의 시’로 읽히는 것이 타당하다.

첫 연에서 “남쪽 먼 바다의 끝”이라는 통념적 인식을 제시한 뒤, 곧바로 “신새벽은 언제나 그보다 / 조금 더 먼 곳에서 열린다”고 전환한다. 이 문장은 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인간이 규정한 ‘끝’보다 더 바깥에서 시작되는 시간, 그것이 이 시의 시적 긴장이다. 여기서 이어도는 지리적 대상이 아니라, 인식의 경계 바깥에 놓인 ‘미지의 시작점’으로 격상된다.

이어지는 연에서는 파도와 바위의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파도 하나가 먼저 눈을 뜨고”라는 표현은 생명의 기원을 연상시키며, “물밑 이어도의 바위”가 “숨을 고른다”는 구절은 무생물에 생명성을 부여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과장된 의인화가 아니라, ‘시간의 깊이’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겨울을 털어내는 바위의 호흡은 계절의 변화가 단순한 외적 현상이 아니라, 존재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임을 암시한다.

세 번째 연에서는 인식의 주체가 전환된다. “아직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 문장으로 인간의 둔감함을 짚은 뒤, 봄의 시작은 “연둣빛 한 가닥”과 “햇살의 흔들림”이라는 미세한 징후로 제시된다. 여기서 시인의 시선은 극도로 섬세해진다. 거대한 계절 변화가 아니라, 거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 속에서 봄을 감지하는 감각이 이 시의 미덕이다.

그 다음 연에서 결정적인 전환이 이루어진다. 봄을 가장 먼저 알아보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 바다새”라는 설정이다. 이는 인간 중심적 인식에 대한 조용한 전복이다. 바다새는 하늘과 바다를 가로지르는 존재로서, 경계의 감각을 지닌 매개자다. 그가 “가느다란 소식”을 걸어 둔다는 표현은, 계절이 소리치지 않고 ‘걸려 있는 상태’로 도착함을 보여준다. 이 미묘한 표현은 황성구 시의 절제된 미학을 잘 드러낸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직접 등장한다. “나는 그 바다의 문 앞에서”라는 구절은 시적 자아의 위치를 명확히 한다. 그는 이어도의 중심이 아니라 ‘문 앞’에 서 있다. 이는 대상에 대한 겸허한 태도이며, 동시에 세계를 대하는 윤리적 자세다. “파도 소리를 쓸며”라는 표현은 듣는 행위를 넘어, 감각을 다듬고 마음을 비우는 수행의 태도로 읽힌다. 그 결과 “세상보다 먼저 봄을 맞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시의 가장 큰 성취는 ‘먼저’라는 시간 개념을 자연스럽게 풀어낸 데 있다. 먼저 온다는 것은 빠름이 아니라, 더 깊이 감각하는 능력이다. 인간보다 먼저 봄을 알아보는 바다새, 그리고 그 바다새의 움직임을 읽어내는 시인. 이 이중 구조 속에서 시인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미묘한 간극을 메운다.

황성구 시인의 이어도 연작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같은 대상을 지속적으로 응시하면서, 그 안에서 매번 다른 시간의 결을 길어내는 작업이다. 이 시에서도 이어도는 고정된 섬이 아니라, 계절과 감각이 가장 먼저 스치는 ‘열린 자리’로 형상화된다.

이 작품은 묻는다.

봄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눈에 보이는 순간인가, 아니면 아직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그 이전의 미세한 떨림인가.

황성구 시인 그 답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보여 준다. 독자로 , 세상보다 조금 먼저 마음을 열어 보라고 권한다.

황성구 시인은 이어도문학회 회장이다.

그동안

이어도 시만 1천여 편 지었다.

그중

100여 편을 선정해 5월에 첫시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자못 기대가 크다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