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시 《틈》ㅡ틈에서 피어나는 마음 — 작은 발견이 건네는 위로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지수 시인의 시 《틈》ㅡ틈에서 피어나는 마음 — 작은 발견이 건네는 위로 202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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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시인 김지수
속이 상해
고개 떨구며
걷던 길에
돌 틈 사이에서
만난 작은 풀 하나
잎도 있고
꽃도 피고
내 마음속
좁은 틈에도
꽃씨 하나 들어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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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에서 피어나는 마음
— 작은 발견이 건네는 위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지수 시인의 《틈》은 매우 짧은 시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 내면의 균열과 회복의 가능성이 함께 담겨 있다.
이 시는 거창한 사건이나 복잡한 사유를 전개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한 순간,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그 안에서 조용한 깨달음을 길어낸다.
시의 출발은 “속이 상해 / 고개 떨구며 / 걷던 길에”라는 구절이다. 이 문장은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감정 상태를 담고 있다.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는 이미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고개를 떨군 채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마음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를 상징한다. 이때 시는 독자를 낮은 자리로 이끈다.
그 낮아진 시선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바로 “돌 틈 사이에서 / 만난 작은 풀 하나”이다. 이 장면이 이 시의 전환점이다. 시선이 위가 아니라 아래로 향했기에 비로소 보이는 존재.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만든 발견이다.
여기서 ‘돌 틈’은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한다. 돌은 단단하고 막힌 세계를 의미하고, 틈은 그 안에 생긴 작은 가능성의 공간이다. 그 틈에서 자라는 풀은, 척박한 조건 속에서도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이다. 이는 단순한 자연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 삶의 은유로 읽힌다.
이어지는 “잎도 있고 / 꽃도 피고”라는 구절은 더욱 인상적이다. 시인은 그 풀을 과장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담담히 말한다. 그러나 그 담백함 속에서 외려 생명의 경이로움이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던 존재가, 사실은 완전한 생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전해진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핵심이다. “내 마음속 / 좁은 틈에도 / 꽃씨 하나 들어오길···.” 이 구절에서 외부의 풍경은 곧 내면으로 전환된다. 시인은 돌 틈의 풀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도 틈이 있음을 인정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틈’에 대한 시선이다. 일반적으로 틈은 결핍이나 상처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생명이 들어올 수 있는 자리로 이해된다. 상처가 곧 가능성이 되는 순간이다.
김지수 시인의 시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난다. 그는 특별한 것을 찾지 않는다. 다만 멈추어 바라본다. 햇빛을 따라 걷다가 잠시 멈춰 서는 순간,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것들이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이 시는 그 ‘멈춤의 미학’을 보여준다.
또한 이 작품은 과장이나 설명 없이 독자에게 여백을 남긴다. 짧은 문장과 절제된 표현은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틈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때 시는 읽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틈》은 작은 풀을 노래하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상처와 결핍 속에서도 여전히 열려 있는 가능성에 대한 시이다.
이 시를 읽고 나면, 길을 걷다가 한 번쯤 멈추게 된다. 그리고 발 아래 작은 틈을 다시 보게 된다. 그곳에 이미 피어 있는 생명처럼, 우리 마음속에도 아직 자라지 않은 무엇이 안온히 기다리고 있음을 느낀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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