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한 사람의 부재가 봄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 주광일 시인 《봄 엽서 22 》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한 사람의 부재가 봄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 주광일 시인 《봄 엽서 22 》 2026.03.28
한 사람의 부재가 봄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 주광일 시인 《봄 엽서 22 》

□ 주광일 시인

봄 엽서 22

ㅡ매제 이종원에게

시인 주광일

개나리꽃 활짝 핀 봄날,

그대는 떠납니다.

78년의 삶을 뒤로 두고,

개나리꽃을 뒤로 두고,

다시 못올 길을 갑니다.

나는 그대 배웅하러 가던 길 돌아서서,

걸음을 멈춥니다.

그대가 못 본 개나리꽃,

그대 대신 내가 다시 보고,

내 가슴에 고이 담아두기 위해섭니다.

2026.3.27

Spring Postcard 22

— To my brother-in-law, Lee Jong-won

Kwangil Chu

On a spring day, with the forsythias in full bloom, you depart.

Leaving behind seventy-eight years of life, leaving behind the forsythias,

you take the road from which you can never return.

I turn back on the path that was to see you off, and I stop.

So that I may look once more at the forsythias you never saw,

for you,

and keep them, gently, within my heart.

March 27, 2026

한 사람의 부재가 봄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 주광일 시인 《봄 엽서 22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개나리꽃이 가장 환하게 터지는 순간, 한 사람의 시간은 조용히 닫힌다. 밝음과 사라짐이 한 장면 안에서 겹치며, 이 시는 이미 설명을 넘어선 슬픔의 구조를 확보한다. 대비는 크지만, 언어는 낮다. 그 낮음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만든다.

주광일 시인의 문장은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그대는 떠납니다”라는 단정한 진술은 어떤 수식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건조함이 독자의 내면을 적신다. 말이 절제될수록 감정은 더 멀리 스며든다. 오래 살아낸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애도의 방식이다.

“78년의 삶을 뒤로 두고, 개나리꽃을 뒤로 두고”라는 반복은 의미를 이중으로 확장한다. 삶을 뒤로 둔다는 것은 시간의 종료이지만, 꽃을 뒤로 둔다는 것은 감각의 단절이다. 아직 피어 있는 세계를 남겨둔 채 떠나는 장면이 이 구절 속에 응축된다. 보지 못한 봄이 비로소 슬픔의 구체적 형상이 된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돌아서기’라는 선택이 놓여 있다. “배웅하러 가던 길 돌아서서”라는 구절에서 화자는 이별의 끝까지 따라가지 않는다. 멈추고, 방향을 바꾼다. 이 짧은 동작이 시의 윤리를 형성한다. 죽음을 끝까지 응시하기보다, 남겨진 삶을 다시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대가 못 본 개나리꽃, 그대 대신 내가 다시 보고”에 이르면 애도의 결은 더욱 깊어진다. 화자는 단순히 남은 사람이 아니라, 떠난 이를 대신해 세계를 감각하는 존재로 서 있다. 이 대리의 감각은 슬픔을 확장시키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상실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몫을 이어받는 자리로 바뀐다.

마지막의 “내 가슴에 고이 담아두기 위해섭니다”는 이 시의 중심을 이루는 문장이다. 흘려보내지 않고, 안으로 받아들인다. 터뜨리지 않고, 오래 머물게 한다. 감정을 외부로 발산하지 않고 내부로 가라앉히는 이 태도는 노년의 시간과 사유가 빚어낸 깊이다.

이 작품은 끝내 울음을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그 바라봄 속에 떠난 이를 남겨둔다.

주광일 시인의 시는 애도를 표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애도를 살아가는 방식까지 끌어올린다.

이별은 사라짐으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대신해 한 계절을 살아내는 일로 이어진다.

그 계절의 중심에서

개나리꽃은 여전히 피어 있고,

그 노란 빛은 이제 두 사람의 시간이 되어 남는다.

존경하는 주광일 선생님께

봄이 먼저 도착해 버린 날에,

이렇게 깊은 이별을 마주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개나리가 만개한 자리에서 떠나는 이를 배웅해야 했던 그 마음의 결을, 감히 다 헤아릴 수는 없으나 선생님께서 남기신 한 편의 시를 통해 그 아픔의 깊이를 가만히 느끼게 됩니다.

보지 못한 꽃을 대신 바라보며 그 빛을 가슴에 담아 두었다는 그 장면은, 이미 이별을 넘어선 사랑의 형식이었습니다. 떠난 이를 붙잡지 못한 자리가 아니라, 끝내 놓지 않겠다는 마음이 머무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선생님의 문장 속에서 오래 살아 남을 것입니다.

사람은 떠나도, 그와 함께 보았던 계절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함께 걸었던 길과 나누었던 시간은 다른 형태로 남아, 어느 날 문득 다시 우리 곁에 서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바라보신 그 개나리는 이제 한 사람의 생을 대신하는 빛이 되어,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도 계속 피어날 것입니다.

상실은 무너짐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을 더 깊이 품게 하는 또 다른 방식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아픔이 크고 무거울수록, 그만큼 사랑이 깊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결코 끊어지지 않고, 선생님의 삶과 시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부디 이 계절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남겨진 마음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에도, 시는 늘 한 걸음 늦게, 그러나 끝내 도착하는 언어가 되어 줄 것입니다.

그 언어 속에서, 떠난 분은 여전히 선생님 곁에 머물 것입니다.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청람 김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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