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 시인의 시 《마음을 읽는 호수》 ㅡ고요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되는 삶의 문장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박철언 시인의 시 《마음을 읽는 호수》 ㅡ고요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되는 삶의 문장 202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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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호수
시인 청민 박철언
바뀐 계절의 한 모퉁이를 잔잔한 파문으로 물고 있는 호수
하늘 땅의 교신으로 피는 벚꽃
투영된 물속에, 마음속에 피었다가 꽃잎 흩날릴 땐 투명한 수채화 한 폭 수면에, 길바닥에 또 한 번 피는
때로 시화와 함께 때로 음악과 함께 흩어진 마음 불러 모으는 마력 하늘로도 마음으로도
아낌없이 길 열어주는 게
계절의 여신일끼
물의 여신일까
아침마다 힘 깨워 산책하는 발길들
해 질 녘 고요히 물드는 노을빛
깊은 밤 교교하게 흐르는 달빛 한순간도 물그림자 비었던 적 없는
입 꼭 다물어 소음 잠근 잔잔한 수면
내 마음 바닥까지 내려놓게 하는 너
길 잃은 마음도 위로하는 동반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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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언 시인의 시 《마음을 읽는 호수》
ㅡ고요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되는 삶의 문장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 시대의 공적 책임을 내려놓은 뒤, 인간은 비로소 자기 안의 가장 깊은 목소리와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이후의 시간, 다시 말해 ‘역할’이 아닌 ‘존재’로 돌아온 한 인간이 선택한 언어의 결실로 읽힌다.
공직자로서의 삶이 질서와 책임, 외부를 향한 긴장의 시간이었다면, 이 시는 그 모든 긴장을 풀어내고 내면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호흡이다. “잔잔한 파문”과 “소음 잠근 수면”이라는 이미지들은 그저 자연의 묘사만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통과한 이의 정신적 상태를 상징한다. 격동이 지나간 자리에서 비로소 가능한 평온, 그 깊이가 언어의 결로 드러난다.
특히 이 시에서 주목할 점은 ‘비춤’의 방식이다. 벚꽃이 물속에, 마음속에 동시에 피어나는 장면은,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더 이상 소유나 해석이 아니라 ‘투영’과 ‘수용’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공적 삶의 시선에서 사적 성찰의 시선으로 이동한 결과다. 대상은 더 이상 다루어야 할 세계가 아니라, 함께 머무는 세계가 된다.
“흩어진 마음 불러 모으는 마력”이라는 구절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통치나 설득의 힘이 아니라,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내면의 힘이다. 공직의 자리에서는 밖을 향해 힘을 행사했다면, 이제는 안을 향해 마음을 모으는 힘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 변화가 곧 이 시의 핵심적인 성취다.
또한 시간의 흐름을 따라 배치된 아침, 저녁, 밤의 장면들은 단순한 하루의 순환이 아니다. 그것은 한 생애의 은유다. 시작과 중간과 마무리의 시간 속에서도 “물그림자 비었던 적 없는” 호수처럼, 시인은 자신의 삶이 결코 공허하지 않았음을 조용히 증언한다.
마지막의 “동반자”라는 명명은 이 시를 결정짓는다. 자연은 더 이상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늙어가고 함께 숨 쉬는 존재다. 그 관계의 깊이는 설명되지 않지만, 이미 충분히 전달된다.
이 작품은 자연시를 넘어선다.
공직자로서의 소임을 다한 한 인간이, 문학과 시를 통해 자신의 여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가꾸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고요한 선언이다.
화려하지 않으나 단단하고, 과장되지 않으나 깊다.
시인 청민 시는 삶의 후반을 장식하는 장식이 아니라, 그 삶을 다시 쓰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그 방식은,
물처럼 낮고,
호수처럼 깊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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