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 《창살 넘어 시의 날개》ㅡ 창살을 넘어선 언어의 증언 — ‘시’가 역사를 통과하는 방식에 대하여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 《창살 넘어 시의 날개》ㅡ 창살을 넘어선 언어의 증언 — ‘시’가 역사를 통과하는 방식에 대하여 202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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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살 넘어 시의 날개
시인 청민 박철언
이 름을 지워버린 숫자 4077번
흰색 죄수복에 묶인 482일
하루 딱 40분 하늘 보며 땅 밟는 운동시간
쇠창살에 같혀 금이 간 그해 봄
창살 밖 민들레로 피어나
바람 타고 흰 씨앗으로 날아오른 시
죄 없는 옥살이와 등돌린 배신감
권력자의 칼춤에 찔린 무력감
출세욕, 명예욕에 눈먼 검사와 용기 없는 판사
진실을 외면해 버린 눈 감은 언론
긴 밤을 보내도 새벽은 여전히 멀어
무수한 상처가 함께 수감 되었던 잿빛 겨울
핏빛 바람이 잠들면 말하리라던
억울한 심정이
압축된 엽서 세 장
주인 대신 풀려나 언론에 보도 되니
원로 시인들 추천으로
시인이라는 푸른 모자 쓰게 되었어
국내외 곳곳에서
초등학생부터 청각장애인 주부, 청소부까지
걱정과 격려로 이어지던 글의 힘
5,000여 통의 편지와 2,000여 권의 책
답장으로 보낸 300여 통의 엽서
성원과 기도, 면회를 왔던 못 잊을 사람들
그 사연들 담아 당당하게 일어선 책
《14077 면회 왔습니다》
솟구치던 분노와 통한은 감옥에 묻고
정치 보복의 마지막 제물이 나이길 바라면서
시렸던 시류 추에 시의 날개 달아
푸른 하늘로 날려 보내니
시대의 베스트셀러 작가 되었어
갖가지 변곡점 모두 넘어
삶에게 길 물으니 시라 답했고
시에게 길 물으니 삶이라 답했어
비로소 열린 하늘과 땅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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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살을 넘어선 존재의 증언
— 시와 삶이 서로를 구원하는 순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학은 때로 기록이 되지만, 드물게는 증언이 된다. 기록은 사실을 남기지만, 증언은 존재를 남긴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창살 넘어 시의 날개》는 바로 그 증언의 언어로 쓰인 작품이다.
이 시는 한 개인의 억울한 수감 경험을 넘어, 한 시대의 권력 구조와 그 속에서 흔들렸던 인간의 존엄을 통과하여, 끝내 삶과 시가 서로를 구원하는 지점에 도달한 서사적 결정체다.
이 작품의 첫 구절은 이미 모든 것을 말한다. “이름을 지워버린 숫자 4077번.” 이름은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첫 번째 언어다. 그러나 그 이름이 삭제되고 숫자로 대체되는 순간, 인간은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관리되는 대상이 된다. 시인은 이 숫자를 그대로 제시함으로써, 외려 그 지워진 이름을 더욱 선명하게 복원한다. 이는 권력이 부여한 언어를 역으로 전복하는 시적 전략이다.
482일이라는 시간은 단순한 기간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압축된 시간이며, 인간이 견뎌야 했던 고통의 밀도다. 하루 40분의 운동시간이라는 구체적 수치는 자유가 얼마나 최소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늘을 보는 시간마저 제한된 상황은, 인간이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감각의 영역까지 통제당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처럼 시는 수치를 통해 고통을 가시화하며, 독자로 하여금 그 시간을 체험하게 만든다.
이 시의 진정한 힘은 절망의 묘사에 있지 않다.
‘타는목마름’의 시인 김지하가 감옥에서 보았던
그 민들레를 시인 청민도 본다.
“쇠창살에 갇혀 금이 간 그해 봄”이라는 구절에서 봄은 더 이상 희망의 계절이 아니다.
그 금이 간 틈에서 “민들레”가 피어난다. 민들레는 이 작품의 핵심 상징이다. 그것은 억압된 공간에서도 꺼지지 않는 생명이며, 동시에 시라는 언어의 형상이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씨앗처럼, 시는 창살을 넘어 바깥으로 확산된다. 물리적 감금은 가능하지만, 언어의 이동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이 장면에서 드러난다.
중반부에 이르면 시는 더욱 분명하게 시대를 겨냥한다. “출세욕, 명예욕에 눈먼 검사와 용기 없는 판사 / 진실을 외면해 버린 눈 감은 언론.” 이 구절은 단순한 감정의 분출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 사법, 언론이라는 사회의 핵심 구조가 어떻게 진실을 외면하는지를 직시하는 문장이다. 시는 여기서 개인의 억울함을 넘어 공적 발언으로 확장된다.
그 언어는 격렬하지 않다. 절제된 형태로 제시됨으로써,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경험에서 나온 언어만이 지닐 수 있는 밀도다.
“압축된 엽서 세 장”이라는 구절은 이 작품의 전환점이다. 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언어는 사라지지 않는다.
더 응축된 형태로 존재한다. 엽서는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 고통과 진실이 집약된 문학적 최소 단위다. 그것이 세상 밖으로 나아가 언론에 보도되는 순간, 개인의 목소리는 사회적 사건으로 변환된다. 이 지점에서 시는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언어가 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시인은 새로운 정체성을 얻는다. “시인이라는 푸른 모자 쓰게 되었어.” 이 구절은 고통이 어떻게 존재를 변형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시인은 처음부터 시인이 아니었다.
고통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시인이 된다. 이는 문학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임을, 그리고 그 과정이 존재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후반부는 공동체의 연대로 확장된다. 초등학생부터 청각장애인 주부,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편지는 이 사건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5,000여 통의 편지와 2,000여 권의 책, 그리고 300여 통의 답장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가 만들어 낸 관계의 총체이며, 인간이 서로를 지탱하는 방식이다.
문학은 여기서 개인을 넘어 공동체를 연결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이 모든 과정은 《14077 면회 왔습니다》라는 책으로 집약된다. 이 책은 기록을 넘어선 증언이며, 한 인간이 억압을 통과하며 다시 서는 과정을 담은 결과물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시작이 ‘시’였다는 점이다. 시는 가장 작은 언어의 형식이지만, 그 힘은 가장 넓은 세계를 움직인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더욱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삶에게 길 물으니 시라 답했고 / 시에게 길 물으니 삶이라 답했어.” 이 구절은 시와 삶의 관계를 단순한 병치가 아니라 순환으로 제시한다. 시는 삶을 해석하는 도구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이며, 삶은 시를 통해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 이때 시는 표현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 된다.
청민 시 《창살 넘어 시의 날개》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은 억압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가.
언어는 그 억압을 넘어설 수 있는가.
이 시는 그 질문에 단단히 답한다.
시는 날개가 된다.
그리고 그 날개는,
창살을 넘어
인간을 다시 인간으로 돌려놓는다.
ㅡ청람 김왕식


□ 청민 제7 시집 발간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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