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 이민숙 시인의 시 《봄을 깨우는 꽃잎》 ㅡ 고독의 결 위에 피어나는 봄의 선율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오선 이민숙 시인의 시 《봄을 깨우는 꽃잎》 ㅡ 고독의 결 위에 피어나는 봄의 선율 2026.03.31
□오선 이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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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깨우는 꽃잎
시인 오선 이민숙
토방 쪽마루
부지런히 넘나들던 햇살은
시절 인연 숲에서 길을 찾는다
새로운 벽을 넘지 못하는
주소 잃은 새벽이슬
방울방울 맺힌 그녀의 눈물일까
엊밤 내린 봄비 톡톡 찍어
마른 숲 적셔 봄을 깨우는 꽃잎
분홍색실 한 올 한 올 물어다
진달래 꽃잎 짜는 봄바람
아쉬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이
새바람이 밀어 주는 대로
바람결에 흔들리고 찬비에 젖던 날
고독이 피어나고
외로움이 고개 들어야 볼 수 있던
이름 모를 하얀 꽃잎
떨어질 줄 알지만
피어나는 인연이여
한 치 앞은 몰라도 이 봄이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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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 이민숙 시인의 시 《봄을 깨우는 꽃잎》
ㅡ 고독의 결 위에 피어나는 봄의 선율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봄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알아보는 감각이 서서히 깨어날 뿐이다.
오선 이민숙 시인의 《봄을 깨우는 꽃잎》은 그 미세한 깨어남의 순간을 섬세한 결로 펼쳐 보인다.
이 시의 첫 장면인 ‘토방 쪽마루’를 오가는 햇살은 그저 자연의 빛만이 아니다. 시간의 숨결이며, 계절이 이동하는 흔적이다.
“시절 인연 숲에서 길을 찾는다”는 구절은 지나온 시간과 다가올 계절이 교차하는 지점을 포착한다.
여기서 봄은 이미 도착한 계절이 아니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주소 잃은 새벽이슬”은 방향을 잃은 존재의 비유다. 머물 곳을 찾지 못한 감정이 방울로 맺혀 있다. 그것이 “그녀의 눈물일까”라는 물음으로 이어질 때, 자연의 이미지와 인간의 내면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엊밤에 내린 봄비가 마른 숲을 적시는 장면은, 굳어 있던 마음의 결이 서서히 풀리는 순간과 닮아 있다.
오선 시인의 언어는 음을 품고 흐른다. 피아노를 전공한 이력은 시어의 운율과 결에서 은은하게 드러난다.
“분홍색 실 한 올 한 올 물어다 / 진달래 꽃잎 짜는 봄바람”이라는 구절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하나의 연주처럼 다가온다.
봄바람은 직조자이고, 꽃잎은 그가 엮어내는 선율이다. 한 음 한 음 쌓여 하나의 화음이 되듯, 시어 역시 겹겹이 쌓여 정서를 완성한다.
“아쉬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이 / 새바람이 밀어 주는 대로”에서는 내려놓음의 태도가 드러난다.
이는 체념이 아니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깊은 수용이다. 바람에 흔들리고 찬비에 젖는 시간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 속에서, 시는 더욱 단단해진다.
“고독이 피어나고 / 외로움이 고개 들어야 볼 수 있던 / 이름 모를 하얀 꽃잎”은 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구절이다.
보이지 않던 것은 고독 이후에야 비로소 드러난다. 외로움은 시야를 열고, 고독은 감각을 깨운다. 그때 발견되는 ‘이름 모를 꽃’은 명명되지 않았기에 외려 더 깊은 본질을 지닌다.
마지막의 “떨어질 줄 알지만 / 피어나는 인연이여”는 존재의 역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사라짐을 알면서도 피어나는 것, 끝을 알면서도 시작하는 것. 그것이 삶이며, 사랑이며, 봄이다.
“한 치 앞은 몰라도 이 봄이 좋아라”라는 고백은 순간을 온전히 긍정하는 태도로 읽힌다.
이 시는 과장되지 않는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언어로 조용히 스며든다. 피아니스트의 손끝에서 태어난 듯한 시어들은 잔향을 길게 남기며, 독자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봄을 다시 피워낸다.
오선 이민숙 시인은
슬쩍
귀띔한다.
봄은 계절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여는 한 장의 꽃잎이라고.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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