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자 시인의 시 《발톱》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변희자 시인의 시 《발톱》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202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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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
시인 변희자
서릿발 매서운
산새 소리도
덜덜 떠는
발길 끊긴 다섯 달
하루 스물네 시간
어슬렁거려
풀칠은커녕 입술만 탄다
산다는 건
씨앗을 터뜨렸기에
목숨 하나
붙드는 일
절박한 눈
허공 짚는 것도 사치인가
던져준 고기 몇 점에
발톱을 세운다
굶주린 겨울 끝
서러운 길고양이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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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
— 생존의 끝에서 드러나는 존재의 윤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 생명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된 시가, 인간 존재의 본질로 곧장 이어진다.
이 작품은 길고양이 한 마리를 말하지만, 끝내 한 시대의 생존 방식과 인간의 조건을 응시하게 한다.
첫 행의 “서릿발 매서운 / 산새 소리도 / 덜덜 떠는”은 단순한 계절 묘사가 아니다. 세계 전체가 떨고 있는 상태를 제시한다. 추위는 온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압박이며, 그 속에서 모든 생명은 동일한 조건으로 놓인다. 이어지는 “발길 끊긴 다섯 달”은 시간의 고립을 강조한다. 단절된 시간, 누구도 찾지 않는 공간, 그 속에서 존재는 오롯이 스스로를 버텨야 한다.
“하루 스물네 시간 / 어슬렁거려”라는 구절은 인상적이다. ‘어슬렁거림’은 게으름이 아니라 목적을 상실한 생존의 몸짓이다. 움직이지만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 살아 있지만 살아내지 못하는 시간의 반복이다. “풀칠은커녕 입술만 탄다”는 표현에서 생존의 최소 조건마저 충족되지 않는 현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때 언어는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절제된 상태로 더 큰 결핍을 드러낸다.
중심 구절인 “산다는 건 / 씨앗을 터뜨렸기에 / 목숨 하나 / 붙드는 일”은 이 시의 핵심이다. 생은 선택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사건이며, 그 이후는 단지 버텨내는 과정이라는 인식이다. 여기서 ‘붙든다’는 말은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놓을 수 없는 조건에 가깝다. 살아 있음이 곧 책임이 되는 순간이다.
이어지는 “절박한 눈 / 허공 짚는 것도 사치인가”는 더욱 깊다. 절박함이 극에 달하면, 시도조차 사치가 되는 상태. 이 구절은 생존의 한계를 넘어, 존엄마저 위태로운 지점까지 내려간다. 눈은 살아 있으나, 그 눈이 향할 곳조차 없는 상황, 존재의 방향이 사라진 자리다.
마지막 연에서 시는 단호하게 수렴한다. “던져준 고기 몇 점에 / 발톱을 세운다.” 여기서 ‘발톱’은 단순한 공격성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도구이며, 동시에 인간이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본능의 상징이다. 존엄과 본능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존재는 선택이 아닌 반응으로 움직인다.
“굶주린 겨울 끝 / 서러운 길고양이 한 마리”라는 결말은 모든 것을 하나의 이미지로 묶는다. 그러나 이 한 마리는 결코 하나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밀려난 존재들이며, 동시에 우리 안에 숨겨진 생존의 본능이기도 하다.
변희자 시인의 시선은 여기서 빛난다. 사물을 단순히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머무는 시간까지 함께 들여다본다. 오래 바라본다는 것은 표면을 넘어서 존재의 조건을 응시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시는 동정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냉정하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인간다운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은,
차갑게 선 발톱 끝에서
오래 흔들린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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