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형식으로서의 ‘담백’ — 한범수 시인의 시적 세계와 가치철학에 대한 소고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삶의 형식으로서의 ‘담백’ — 한범수 시인의 시적 세계와 가치철학에 대한 소고 202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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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이 말하더이다
시인 한범수 교수
담백한 입술로 말하더이다
이제사 그대를 만났다고
지루한 겨울 벗겨내고
개천에 윤슬 반짝이고
풍경소리 전단향 그윽하던
그날
붉은 동백이 말하더이다
혼자 가는 그대
혼자 간다고 서러워 말라고
누군가는
눈물이라 말하더이다
순한 그대 입술
눈빛으로 담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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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책힘 독서 모임 벗 몇 분들과 선운사 동백을 보러 갔다. 선운사 뒷숲에 동백이 순이 같은 단아한 색으로 곱게 피었다.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사진으로 이리저리 담았다. 담백한 붉은색이 겨울을 잘 이겨냈다. 송창식은 선운사 동백을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이라고 했다.
누가 그리워 그리 눈물지었을지, 누가 보고 싶어 그리 대지에 뒹굴었을지, 동백의 볼에 대고 그냥 그대로 있어 달라고 말했다.
아직은 아니라고, 먼저 가는 님 혼자 보내 미안하지만 아직 같이 있어 달라고. 겨울 담은 붉은 꽃, 봄이 되어 피었다. 내 마음에 피었다. 순박한 순정으로. 선운사 동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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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범수 시인의 시《동백이 말하더이다》
ㅡ붉음으로 건네는 말의 윤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말은 입술에서 나오지만, 이 작품에서는 꽃에서 시작된다. 언어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동백이라는 점에서 이미 시는 존재의 방향을 바꿔 놓는다.
“담백한 입술로 말하더이다”라는 첫 구절은 과잉을 덜어낸 언어의 윤리를 선언한다.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오래 견딘 침묵 끝에 겨우 건네는 말의 결이다.
“지루한 겨울 벗겨내고 / 개천에 윤슬 반짝이고”에서 계절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통과의 시간이다.
겨울은 고통의 은유이며, 윤슬은 그것을 견딘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생의 미세한 빛이다. 이때 “풍경소리 전단향 그윽하던 / 그날”은 감각의 총합으로서, 시간의 완성된 한 순간을 포착한다. 시는 설명하지 않고, 그날을 그대로 열어 보인다.
이어 “붉은 동백이 말하더이다 / 혼자 가는 그대 / 혼자 간다고 서러워 말라고”에 이르면, 동백은 위로의 존재로 변한다. 여기서 붉음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다. 겨울을 통과한 생의 농도이며, 타인의 고독을 감싸는 온기다.
특히 ‘혼자’라는 반복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조건을 드러내면서도, 그 고독이 결코 고립이 아님을 역설한다.
“누군가는 / 눈물이라 말하더이다”라는 구절은 동백의 낙화를 불러온다.
송창식의 노래처럼, 동백은 떨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꽃이 가지에 붙어 있을 때가 아니라, 땅에 닿아 비로소 자신의 의미를 드러내는 존재. 이때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존재가 세계와 만나는 방식이다.
마지막의 “순한 그대 입술 / 눈빛으로 담으오”는 이 시의 핵심을 압축한다. 말보다 깊은 것은 눈빛이며, 언어보다 오래 남는 것은 마음의 결이다. 시는 결국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더 깊이 말한다.
이 작품은 쉽다. 그러나 가볍지 않다. 시어는 단정하지만, 그 내부에는 시간과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이 응축되어 있다. 동백은 피는 꽃이 아니라, 건네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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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형식으로서의 ‘담백’
— 한범수 시인의 시적 세계와 가치철학에 대한 소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들어가는 말
— 학문과 예술의 경계에서
한범수는 한 길의 이름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존재다. 그는 대학 강단에서 관광개발학을 연구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학자이자, 언어의 결을 다듬어 삶의 의미를 건네는 시인이고, 또 호흡과 음색으로 시간을 빚어내는 음악가다. 이 세 가지 층위는 서로 분리된 영역처럼 보이지만, 그의 삶에서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제도와 구조를 분석하는 학문의 자리와, 감정과 존재를 탐색하는 예술의 자리는 그에게서 결코 충돌하지 않는다. 외려 서로를 비추며 깊이를 더한다.
관광개발학이라는 분야는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설계하는 학문이다. 사람은 왜 이동하는가, 어떤 풍경에서 머무르는가, 무엇을 기억으로 남기는가를 묻는 이 학문은 본질적으로 인간 경험의 구조를 탐구한다. 이 점에서 그의 학문은 이미 예술적 감수성과 맞닿아 있다. 그는 단순히 공간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통과하는 인간의 감정과 시간을 이해하려 했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시 세계에서 더욱 정제된 형태로 드러난다. 시는 그에게 있어 설명이 아니라 응축이며, 분석이 아니라 통찰이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공동체적 실천이다. 오래전부터 독서 문학회를 설립하여 고전을 함께 읽고 토론해온 그의 행보는 지식을 개인의 소유로 두지 않으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고전은 단지 오래된 텍스트가 아니라, 시간을 견딘 인간의 사유다. 그는 그 사유를 현재로 불러와 타인과 나누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공동체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삶을 해석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된다. 그의 시가 지나치게 개인적 고백에 머물지 않고, 타자의 정서에 닿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음악 또한 그의 삶에서 중요한 축을 이룬다. 트럼펫과 색소폰을 연주하며, 수백 곡의 창작곡을 남겼다는 사실은 그의 감각이 단지 이론적 차원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준다. 음악은 시간을 직접 다루는 예술이다. 소리는 흐르고 사라지지만, 그 잔향은 오래 남는다. 그의 시가 지닌 여백과 리듬, 그리고 말해지지 않은 부분의 울림은 이러한 음악적 체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언어를 과도하게 채우지 않고, 비워둔 자리에서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완성하게 하는 방식은, 곧 음악적 구조와 닮아 있다.
이처럼 학문, 문학, 음악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은 그의 삶에서 분절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된다. 그것은 과잉을 덜어내고 본질에 가까이 가려는 태도, 곧 ‘담백’이라는 삶의 형식이다. 담백은 단순함이 아니라 절제이며, 결핍이 아니라 선택이다.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고 남겨야 할 것만 남기는 일, 그것이 그의 학문을 깊게 만들고, 그의 시를 오래 남게 한다.
한범수의 문학은 취미나 부수적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삶 전체가 도달한 한 형식이며,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학문이 구조를 세우고, 음악이 흐름을 만들며, 시가 그것을 언어로 정착시킨다. 이 세 층위가 교차하는 자리에서 그의 세계는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조용하고 단단한 하나의 기준이 놓여 있다. 덜어낼 줄 아는 힘, 곧 담백의 윤리다.
Ⅱ. 가운뎃말
— 통합적 인간과 ‘담백’의 철학
- 덜어냄의 미학 — 존재 방식으로서의 ‘담백’
그의 시와 삶을 관통하는 핵심은 ‘담백’이다. 이는 단순한 취향이나 문체의 선택이 아니라, 존재를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이며 삶의 형식이다. 그는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이 물음은 곧 자신을 향한 윤리적 성찰로 이어진다. 과잉의 시대에 그는 과잉을 경계하고,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의지를 통해 스스로의 언어를 정제해왔다. 화려함이 쉽게 주목을 얻는 시대 속에서도 그는 오래 남는 것을 선택한다. 그것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이며, 장식이 아니라 구조다.
그에게 있어 덜어냄은 단순한 축소가 아니다. 그것은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적극적인 선택이다. 불필요한 것을 제거함으로써 더 또렷하게 남는 것, 바로 그것이 그의 문학이 지향하는 자리다. 이러한 절제는 결핍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충만이다. 채워 넣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의미가 스며들게 하는 여백의 힘, 그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여, 그의 시는 말이 적지만 가볍지 않고, 간결하지만 얕지 않다. 덜 말할수록 더 깊이 파고드는 역설적 구조를 지닌다.
이러한 담백의 태도는 단지 문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삶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는 방식이다. 학문에 있어서도 그는 과시적 지식을 추구하지 않는다. 수많은 이론과 개념을 나열하기보다, 그것이 인간의 삶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를 끝까지 묻는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복잡한 기교보다 한 음의 울림을 더 중시하며, 그 울림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에 머무는지를 살핀다. 결국 그의 모든 활동은 ‘얼마나 많이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된다.
또한 그의 담백은 단순한 절제의 미학을 넘어, 관계의 윤리로 확장된다. 과잉의 언어는 때로 타인을 압도하지만, 절제된 언어는 타인이 머물 자리를 남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밀어붙이기보다, 상대가 스스로 도달할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한다. 이때 담백은 배려가 되고, 절제는 존중이 된다. 그의 시가 읽는 이를 피로하게 하지 않고, 조용히 감싸 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담백’은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다. 그것은 덜어냄을 통해 본질에 도달하려는 태도이며, 남겨야 할 것을 정확히 남기는 힘이다. 이 힘은 단순한 미학을 넘어, 삶을 대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그래서 그의 언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과장되지 않았기에 오래 남고, 비워두었기에 깊어진다. 담백은 그에게 선택이 아니라, 이미 몸에 밴 하나의 존재 방식이다.
- 고전과 공동체 — 사유의 깊이를 나누는 방식
그가 오랫동안 이어온 독서 문학회 활동은 단순한 취미나 교양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읽기의 형식을 넘어, 삶을 해석하는 하나의 실천이며, 인간을 이해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오래된 문장을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를 통과해온 인간의 질문과 마주하는 일이다. 그 속에는 시대를 넘어 반복되어온 고뇌와 선택, 사랑과 상실,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응축되어 있다. 그는 이 언어들을 단지 지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을 현재의 삶 속으로 끌어와, 살아 있는 질문으로 다시 묻는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함께 읽는다’는 점이다. 그는 고전을 개인의 성취로 두지 않고 공동체의 경험으로 확장한다. 문학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결이 만나는 자리이며, 각자의 해석이 교차하며 더 넓은 이해로 나아가는 공간이다. 한 사람이 읽어낸 의미는 또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다시 변주되고, 그 변주는 다시 새로운 질문을 낳는다. 이 순환 속에서 고전은 더 이상 과거의 텍스트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그가 지향하는 공동체는 결코 소란스럽지 않다. 과도한 주장이나 경쟁적 해석이 아니라, 조용히 듣고 오래 생각하는 태도가 중심을 이룬다. 이때 사유는 속도를 잃는 대신 깊이를 얻는다. 빠르게 결론에 도달하려 하지 않고, 하나의 문장 앞에 머무르며 각자의 삶으로 그것을 비춰보는 시간, 바로 그 느림 속에서 고전은 비로소 제 의미를 드러낸다. 이러한 경험은 자연스럽게 그의 시 세계에도 스며든다.
그의 시가 과도한 자기 고백으로 흐르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그것이 타인의 삶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고전을 통해 익힌 것은 단순한 문장력이나 표현 기교가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다. 그래서 그의 언어는 닫히지 않는다. 특정한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대입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긴다. 이는 곧 공동체적 읽기의 경험이 시적 형식으로 전이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지식을 축적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앎을 나누고, 나눔을 통해 다시 배우는 순환 구조를 실천한다. 이때 공동체는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각자의 삶에서 길어 올린 해석이 서로에게 닿으며, 개인의 사유는 공동의 깊이로 확장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한다.
그의 독서 문학회는 하나의 철학적 실천이다. 고전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공동체를 통해 그 이해를 확장하며, 다시 그 결과를 언어로 정제해 시로 건네는 과정. 이 순환 속에서 그의 시는 더욱 단단해지고, 동시에 더욱 열려 있게 된다. 사유를 혼자 소유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태도, 그것이 그의 문학을 오래 살아 있게 하는 근원이다.
- 음악적 감각 — 흐름과 여백의 언어
트럼펫과 색소폰 연주, 그리고 수백 곡에 이르는 작곡 활동은 그의 감각이 단순한 이론적 이해를 넘어, 몸과 호흡의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음악은 눈에 보이는 형태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 속에서 생성되고, 흐르며, 사라진다. 그러나 바로 그 비가시성 때문에 더욱 직접적으로 감정을 건드린다. 소리는 붙잡을 수 없기에 오히려 깊이 스며들고, 사라지는 순간에 더 또렷한 흔적을 남긴다. 그는 이러한 음악의 본질을 오래 체득해온 사람이다.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리듬은 단순한 운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호흡의 길이와 정지의 위치, 그리고 울림의 지속 시간을 고려한 감각의 결과다. 문장은 일정한 박자로 밀어붙여지지 않고, 때로는 멈추고, 때로는 흘러가며, 읽는 이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파동을 만들어낸다. 이는 악보 위에 음표를 배치하듯, 언어를 시간 속에 놓는 작업과도 같다. 그는 단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흐름을 설계한다.
또한 그의 시에서 중요한 것은 ‘여백’이다. 음악에서 침묵이 하나의 음으로 기능하듯, 그의 언어에서도 말해지지 않은 부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고, 일정한 지점에서 멈추는 선택은 독자에게 해석의 공간을 열어준다. 이 여백은 공백이 아니라 긴장이다. 채워지지 않았기에 더 오래 머무르고, 말해지지 않았기에 더 깊이 확장된다. 그는 이 여백을 통해 독자의 감각을 깨운다.
그는 언어를 채우기보다 흐르게 한다. 설명하기보다 울리게 한다. 이는 음악이 지닌 전달 방식과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 음악은 의미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진동으로 전달한다. 그의 시 또한 특정한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일정한 울림을 만들어내고, 그 울림이 독자의 내부에서 각자의 의미로 변주되도록 맡긴다. 이때 시는 완성된 구조가 아니라, 열려 있는 과정이 된다.
특히 그의 음악적 감각은 반복과 변주의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특정한 이미지나 어휘가 다시 등장하되, 동일한 의미로 머물지 않고 미묘하게 다른 결을 띠며 확장된다. 이는 음악에서 주제가 반복되면서도 변주를 통해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내는 방식과 유사하다. 그의 시는 이처럼 하나의 중심을 유지하면서도, 그 주위를 따라 유연하게 확장되는 구조를 지닌다.
그의 문학에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언어를 조직하는 근본 원리로 작동한다. 그는 시를 통해 소리를 보이게 하고, 음악을 통해 보이지 않는 감정을 드러낸다. 이 두 영역은 서로를 보완하며, 하나의 통합된 감각을 이룬다. 그 결과 그의 시는 읽히는 동시에 들리고, 들리는 동시에 오래 남는다.
이처럼 음악적 감각은 그의 시를 단순한 의미 전달의 도구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것은 감정의 흐름을 설계하고, 여백 속에서 울림을 지속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그의 언어는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깊이 스며들고, 짧은 문장 속에서도 긴 여운을 남긴다. 결국 그의 시는 말이 아니라 소리로 기억되고, 의미가 아니라 울림으로 오래 머무른다.
- 공간과 인간 — 학문이 시로 확장되는 지점
관광개발학자로서의 그의 삶은 단순한 직업적 배경을 넘어,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열쇠가 된다. 관광은 흔히 이동이나 소비의 행위로 이해되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과 공간이 만나는 방식에 대한 설계다. 사람은 왜 특정한 장소에 끌리는가, 어떤 풍경이 오래 기억으로 남는가,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감정이 발생하는가를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관광개발학이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공간이 단순한 물리적 배경이 아니라, 인간 경험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깊이 인식해왔다.
이러한 인식은 그의 시에 고스란히 스며든다. 그의 시 속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 발생하고, 기억이 축적되며, 존재가 스스로를 확인하는 장이다. 그는 특정한 장소를 묘사할 때 그것을 설명하거나 장식하지 않는다. 대신 그 공간이 품고 있는 시간의 결, 그 안에 스며 있는 인간의 흔적을 조용히 드러낸다. 이때 공간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머무름의 상태로 전환된다. 독자는 그 공간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잠시 머무르게 된다.
그의 학문적 배경은 이러한 ‘머무름의 구조’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관광개발은 단순히 장소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를 예측하고 구성하는 작업이다. 그는 이러한 경험 설계의 감각을 시로 확장한다. 그의 언어는 독자를 특정한 감정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여백을 열어두고, 그 안에서 독자가 스스로 감정을 형성하도록 기다린다. 이는 곧 ‘공간을 여는 언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공간을 통해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을 터득해왔다. 하나의 장소에는 수많은 사람의 시간이 겹쳐 있다. 그곳을 지나간 이들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이 층위로 쌓여 있다. 그는 이러한 층위를 읽어내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특정한 개인의 경험에 머물지 않고, 보다 넓은 인간의 정서로 확장된다. 타인의 고독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힘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공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그 공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언어가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강요하지 않음’이다. 이는 학문적 훈련에서 비롯된 균형 감각과도 연결된다. 관광개발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분야이며, 하나의 관점만을 밀어붙일 수 없다. 그는 이러한 태도를 시에서도 유지한다. 특정한 해석을 제시하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이 공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이때 시는 닫힌 의미가 아니라 열린 공간이 된다.
결국 그의 시는 하나의 ‘장소’로 기능한다. 독자가 들어와 머물고,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덧입히며, 다시 나갈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고, 강렬하지 않지만 깊이 스며든다.
이는 그가 평생 연구해온 ‘공간과 인간의 관계’가 문학적 형식으로 전환된 결과다.
이처럼 학문과 시는 그의 삶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공간을 이해하는 감각은 언어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인간 경험을 분석하는 시선은 타인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힘으로 확장된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단순한 표현을 넘어, 하나의 머무를 수 있는 세계로 완성된다.
Ⅲ. 맺음말 — 남겨야 할 것만 남기는 삶
한범수의 삶과 문학을 관통하는 중심에는 하나의 분명한 원리가 놓여 있다. 그것은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이 아니라,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를 아는 태도다. 그는 학문, 문학, 음악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을 살아왔지만, 그 모든 길은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된다. 덜어내고, 비워내고, 그 속에서 본질을 드러내는 일. 그것이 그의 삶이 선택한 형식이며, 그의 언어가 도달한 자리다.
그의 학문은 구조를 세우는 일이었고, 그의 음악은 흐름을 만드는 일이었으며, 그의 시는 그것을 가장 간결한 형태로 남기는 일이었다. 이 세 영역은 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내부에 흐르는 감각은 동일하다. 과잉을 경계하고, 핵심을 붙들며, 남겨야 할 것만 남기는 힘. 그는 지식을 과시하지 않고, 감정을 넘치게 하지 않으며, 표현을 지나치게 채우지 않는다. 절제된 자리에서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특히 그의 삶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지속성’이다. 그는 순간의 빛남을 좇기보다, 오래 남는 것을 택한다. 학문에서는 한 세대의 제자를 길러내며 지식의 흐름을 이어갔고, 문학에서는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언어를 다듬어왔다. 음악 또한 일회적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수백 곡의 창작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지속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스스로를 갱신하는 과정이다. 그는 매번 같은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덜어내며 더 깊어지는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왔다.
그의 문학이 지닌 힘은 바로 이 ‘덜어냄의 축적’에서 비롯된다. 보통 축적은 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그는 오히려 덜어내는 방식으로 축적한다.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고, 남겨진 것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 이 과정 속에서 그의 언어는 점점 더 투명해지고, 동시에 더 깊어진다. 그래서 그의 시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기억되고, 짧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또한 그의 삶은 ‘함께’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있다. 고전을 나누는 독서 공동체, 음악을 통해 감각을 공유하는 시간, 그리고 시를 통해 타인의 마음에 조용히 닿는 일. 그는 어떤 성취도 혼자만의 것으로 두지 않는다. 나누고, 연결하고, 그 속에서 다시 배우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간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문학을 더욱 열려 있게 만든다. 그의 시는 특정한 개인의 목소리에 머무르지 않고, 누구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된다.
한범수의 삶은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남겨야 할 것만 남기는 삶.’ 그것은 단순한 미학적 선택이 아니라, 존재를 대하는 윤리이며,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는 말이 많지 않지만, 그 적은 말 속에 충분한 시간을 담는다. 그는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깊은 울림을 준비한다.
이러한 삶은 오늘의 시대에 더욱 의미를 갖는다. 넘침이 일상이 된 시대, 빠름이 가치가 된 시대 속에서 그는 조용히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덜어낼 줄 아는 힘, 기다릴 줄 아는 태도, 그리고 오래 남는 것을 선택하는 용기. 그것이 그의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큰 가르침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를 떠올리면, 하나의 이미지가 남는다.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이 아니라, 조용히 떨어져 땅 위에 머무는 동백의 모습. 떨어진 자리에서 더 깊은 의미를 얻는 존재. 그의 삶 또한 그러하다. 드러남보다 머무름으로, 소리보다 울림으로, 그는 자신의 시간을 완성해왔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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