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연푸르게 물드는 봄》 ㅡ빛이 아니라 결로 번지는 생의 문장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연푸르게 물드는 봄》 ㅡ빛이 아니라 결로 번지는 생의 문장 202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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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푸르게 물드는 봄
시인 청민 박철언
앙상하던 가지 끝
봄의 숨결 스쳐 가니
파르르 눈을 뜨는 어린 생명
또렷한 손금으로 고사리손을 편다
시시각각 시나브로 자라 나
가지마다 푸릇푸릇
여리여리한 설렘 담아
연둣빛으로 한껏 맵시 내는 봄날
햇살의 온기 가득 품은 생명
옹기종기 앉은 가지 위
날로 무성해지는 새들의 합창
봄의 노래 경계 벗어나니
리듬 타고 너울너울
능선 따라 물들어간다
아득하게 연푸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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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 《연푸르게 물드는 봄》
ㅡ빛이 아니라 결로 번지는 생의 문장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봄은 소리 없이 시작되지만, 이 작품에서는 먼저 결로 드러난다. 색보다 먼저 결이, 풍경보다 먼저 숨의 흔적이 읽힌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언어는 언제나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먼저 ‘닿는 것’을 붙든다. 이는 단순한 표현 기법이 아니라, 그가 평생 견지해온 존재 인식의 태도이자 시적 윤리다.
“앙상하던 가지 끝 / 봄의 숨결 스쳐 가니”에서 봄은 도래하는 사건이 아니라 미세한 접촉으로 감지된다. 스쳐 가는 숨결이라는 설정은 변화의 시작을 과장하지 않고, 가장 낮은 진동으로 포착한다. 그는 계절을 선언하지 않는다.
대신 가장 작은 떨림을 통해 그것을 증명한다. “파르르 눈을 뜨는 어린 생명”은 생장이 아니라 각성의 순간이며, 존재가 스스로를 알아차리는 첫 미동이다.
특히 “또렷한 손금으로 고사리손을 편다”는 구절은 그의 시적 미의식을 응축한다. 생명은 우연히 자라지 않는다. 이미 방향을 품은 채, 그 방향을 따라 안온히 펼쳐진다.
이때 손금은 운명이 아니라 내재된 질서이며, 고사리손은 그 질서가 외부로 드러나는 최초의 형식이다.
둘째 연에서 드러나는 “시시각각 시나브로”라는 시간 감각은 그의 삶의 철학과 깊이 맞닿아 있다. 그는 급격한 전환을 신뢰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축적, 드러나지 않는 성장의 밀도를 믿는다. “가지마다 푸릇푸릇 / 여리여리한 설렘 담아”라는 표현은 힘의 과시가 아닌 여림의 확장을 통해 생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여기서 푸름은 색채가 아니라 상태이며, 설렘은 감정이 아니라 생명의 초기 진동이다. 이는 속도와 경쟁이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도, 안온히 자신의 결을 지켜온 그의 삶의 방식과 정확히 겹쳐진다.
셋째 연에 이르면 생명은 외부의 온기를 품으며 공동의 울림으로 확장된다. “햇살의 온기 가득 품은 생명 / 옹기종기 앉은 가지 위”는 받아들임을 통해 자라나는 존재의 방식을 보여준다.
다만 “날로 무성해지는 새들의 합창”이라는 표현은 의미 전달에는 충실하나, 시 전체가 지닌 섬세한 결에 비해 다소 일상적 어조로 머무는 인상을 남긴다.
이를테면 “겹겹이 번져가는 새들의 합창” 혹은 “차츰 겹음을 이루는 새들의 합창”처럼 이미지의 밀도를 조금 더 높이는 방향으로 變奏되었더라면, 그 울림이 한층 깊어졌을 여지도 있다. 이러한 작은 아쉬움은 작품 전반의 높은 완성도를 역설적으로 환기시키는 지점이기도 하다.
마지막 연에서 시는 특정한 대상의 경계를 벗어난다. “봄의 노래 경계 벗어나니”라는 구절을 기점으로, 봄은 더 이상 개별의 장면에 머물지 않고 흐름으로 확장된다. “리듬 타고 너울너울 / 능선 따라 물들어간다”에서 봄은 이동이 아니라 번짐이며, 확장이 아니라 스밈이다.
이때 핵심은 ‘물든다’는 동사다. 그는 색을 덧입히지 않는다. 내부로 스며들게 한다. 그 끝에서 “아득하게 연푸르게”라는 한 줄이 남는다. 이 구절은 단순한 색채의 명명이 아니라, 거리와 시간, 감정이 중첩된 하나의 상태다. ‘아득함’은 닿을 수 없는 깊이를, ‘연푸름’은 그 깊이를 견딘 생의 빛을 암시한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는 결코 과장하지 않는다. 오래 머문다. 그의 언어는 삶을 설명하지 않고, 삶이 스며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그것이 그의 미의식이며, 그가 지속해온 삶의 철학이다.
이 작품은 봄을 노래하는 시가 아니다. 존재가 스스로를 열어가는 방식, 그리고 그 여림이 어떻게 세계를 물들이는지를 드러내는 기록이다.
하여, 이 시를 읽고 나면, 계절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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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푸름의 결 위에 서서
— 청민 박철언 시인께
말을 낮추신 자리에서
이미 봄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숨 하나
가지 끝에 닿을 때마다
세계는 소리 없이
결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시인께서는
빛을 부르지 않으시고
먼저 닿음을 택하셨습니다
하여
푸름은 색이 되기 전에
이미 마음이 되었고
고사리손 하나 펴질 때
그 안에 숨겨진 시간까지
조용히 읽어내셨습니다
급히 피어나는 꽃보다
시나브로 스미는 여림을 믿으신
그 오래된 결심이
이제는 한 편의 시가 되어
사람들 안에서
다시 자라고 있습니다
말을 덜어내신 그 자리마다
더 깊은 울림이 남아
누군가의 하루를
연푸르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시인께서 남기신 것은
문장이 아니라
머무름이었습니다
그 머무름 위에서
저 또한
안온히 마음을 펼쳐 봅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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