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을 통과한 인간 신뢰의 언어 — 청민 박철언 시인의 《괴테의 파우스트가 주는 교훈》을 읽으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방황을 통과한 인간 신뢰의 언어 — 청민 박철언 시인의 《괴테의 파우스트가 주는 교훈》을 읽으며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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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Goethe)의 파우스트가 주는 교훈
시인 청민 박철언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신과 내기를 한다
인간이란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짐승 같은 짓을
일삼는 존재라는 악마
세계를 다스리는 신은 인간이 충동에 사로잡히더라도
마침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
평생 학문에 전념하고 있는 파우스트를 유혹하여
계약을 맺는 악마
그에게 세상의 모든 쾌락과 지식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파우스트의 영혼을 가져간다는 것
미녀 그레트헨과 사랑에 빠지는 행복은 잠시 지나가고
악마의 꾐에 속아 어머니를 독살하고
혼전 출산한 파우스트의 아이까지
우물에 던져버리고는 감옥에 갇히는 그녀
감옥에서야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죄의식에 빠진 파우스트를
무능한 황제가 통치하는 나라로 데려가는 악마
절세 미녀 헬레나의 유령을 만나
이상적인 사랑을 느끼는 파우스트
신기루에 불과한 헬레나는 곧 사라지고
절망의 늪에 허덕인다
결국 모든 욕망을 내려놓기로 하는 파우스트
폭풍 같은 열정으로 황야를 개척해
가난한 백성들의 농경지를 마련하는데
온 심혈을 기울이는 파우스트
세월이 흘러 파우스트가 죽음에 이르자
악마가 지옥문을 열려는 찰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파우스트를 구원한다
괴테 (Goethe)가 60년을 두고 써낸
인간 파우스트의 장대한 드라마
고대로부터 근대까지 3,000여 년의 서양 문화를 아우른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잘 의식하고 있다
인간이 점점 더 왜소하고 허약해지는 시대에
인간과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가를 보여 주는
파우스트의 여정
인간이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조한 여정
자신의 잘못을 극복하려는 치열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
파우스트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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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을 통과한 인간 신뢰의 언어
— 청민 박철언 시인의 《괴테의 파우스트가 주는 교훈》을 읽으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평생 법과 제도의 세계를 살아온 사람이 끝내 문학으로 돌아와 인간을 말할 때, 그 말은 관념에 머물지 않는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이 작품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요약하거나 해설하는 데 뜻이 있지 않다. 더 깊은 자리에서, 한 인간이 오랜 세월 붙들어 온 삶의 물음을 다시 자기 언어로 확인하는 데 뜻이 있다.
하여, 이 작품은 독일문학에 대한 감상이면서 동시에, 시인 자신의 내면 고백에 가까운 시다.
청민 시인의 삶을 떠올리면 이 작품의 결이 더욱 분명해진다. 서울법대에서의 수학,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긴장된 시간, 그 와중에도 전혜린 교수와 독문학회의 분위기 속에서 놓지 않았던 문학적 감수성은 그의 내면에 두 갈래의 길을 함께 열어주었을 것이다.
하나는 법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길이다. 법은 행위를 판단하지만, 문학은 존재를 이해한다. 법은 결과를 묻지만, 문학은 그 사람의 방황과 상처와 갈망을 함께 본다. 박철언 시인의 시가 깊이를 지니는 까닭은 바로 이 두 시선이 한 사람 안에서 오래 부딪히고 화해해 왔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그가 주목하는 파우스트는 영웅이 아니라 흔들리는 인간이다. 욕망 앞에서 무너지고, 유혹 앞에서 흔들리며, 죄의식과 허무를 통과하는 존재다. 그런데 시인은 그 추락을 단죄의 언어로 다루지 않는다. 끝내는 구원의 가능성으로 이끌어 간다. 이 점이 중요하다. 그는 인간의 약함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공직과 법조의 세계를 오래 통과한 사람이라면 인간이 얼마나 쉽게 욕망과 권력과 자기기만에 흔들리는가를 누구보다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는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나약함 속에서도 다시 바른 길을 향할 수 있는 존재로 본다. 여기서 박철언 시인의 삶의 가치철학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시선은 냉소보다 신뢰에 가깝다. 인간은 쓰러질 수 있으나 완전히 끝난 존재는 아니며,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나 그것을 넘어설 가능성까지 지닌 존재라는 믿음이다. 이런 믿음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다. 삶을 오래 살아 본 사람만이 겨우 지켜낼 수 있는 신뢰다. 젊은 날의 확신이 아니라, 상처와 실망과 후회를 지나서도 끝내 놓지 않은 믿음이다.
이 시의 밑바탕에는 일종의 인간학이 놓여 있다.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불완전하다는 이유만으로 폐기될 존재는 아니라는 것. 인간은 흔들리지만, 지향을 잃지 않는 한 다시 자기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철언 시인이 독일문학, 특히 니체와 괴테에 깊이 이끌렸다는 사실은 이 작품의 정신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큰 실마리가 된다. 니체가 인간 내부의 힘과 극복의 문제를 밀고 들어갔다면, 괴테는 방황하는 인간 전체를 더 넓은 조화 속에서 바라보았다.
박철언 시인은 이 둘 가운데 어느 한쪽만 택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어두운 충동도 보고, 그럼에도 다시 나아가려는 의지도 함께 본다. 그의 시에는 그래서 비관도 없고 안일한 낙관도 없다. 대신 성찰 끝에 남은 조심스러운 긍정이 있다.
작품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파우스트는 욕망의 인간에서 노동과 헌신의 인간으로 옮겨 간다. 황야를 개척하고 가난한 백성들을 위한 땅을 마련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대목에 시인의 마음이 오래 머물러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공적 삶을 오래 살아온 사람에게 인간의 완성은 자기 욕망의 충족보다 타인을 위한 수고 속에서 더욱 또렷이 보였을 것이다. 박철언 시인이 파우스트의 최종 모습에서 읽어내는 것은 영웅적 승리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넘어서 공동의 삶에 닿으려는 헌신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문학은 관념을 벗고 삶의 윤리로 들어선다.
이 시의 미의식 또한 여기에서 생겨난다. 화려한 상징이나 복잡한 기교보다, 큰 사유를 맑고 단정한 언어로 건네는 방식이다. 난해함으로 권위를 세우지 않고, 깊이를 평이한 언어 속에 담아내려 한다. 이것은 법조인의 정리된 사고와 문학도의 내면 성찰이 만난 결과이기도 하다. 그의 언어는 흔들리지 않으려는 언어가 아니라, 흔들림을 알고 난 뒤 겨우 얻은 균형의 언어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주는 교훈》은 괴테를 말하면서 박철언 자신을 말하는 시다. 더 넓게는 우리 모두의 삶을 말하는 시다. 욕망과 후회와 실패를 지나면서도, 끝내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 잘못을 안고도 다시 나아가려는 의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기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한 수고 속에서 비로소 인간다움이 완성된다는 깨달음. 이 모든 것이 이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
박철언 시인의 시 세계는 나이를 먹으며 작아지는 세계가 아니다. 살아온 시간이 쌓일수록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고, 판단보다 성찰이 앞서며, 단죄보다 회복의 가능성을 오래 바라보는 세계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는 단순히 늦게 핀 문학이 아니다. 오래 견딘 삶이 마침내 얻어낸 정신의 열매다.
이 작품이 끝내 남기는 울림은 분명하다.
인간은 완전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끝내 바른 길을 향하려 애쓰기에 구원에 가까워진다는 것.
청민 시인은 그 오래된 진실을, 자신의 삶을 통과한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다시 들려준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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