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먼저 알아본 사람의 시간 — 박철언 시인의 《시가 되어 만난 사람》을 읽고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시가 먼저 알아본 사람의 시간 — 박철언 시인의 《시가 되어 만난 사람》을 읽고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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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되어 만난 사람
시인 청민 박철언
영적인 언어의 정원에서
함초롬히 피어나는 시
묘한 끌림으로 잠겨간다
시 속 깊이 잠긴 내 영혼
첫사랑의 설렘처럼
다시 잔잔하게 뛰는 심장
시의 행마다 젖은 삶의 결
숨은 마음자리와 마주하니
깊은 파동이 가슴 두드려
서로의 눈빛에 윤슬이 반짝인다
짜릿한 첫사랑은 아니지만
호기심 가득 담은 첫걸음
내가 시 속으로 들어가니
시간도 훌쩍 뛰어넘은 만남
빈 시간의 간격만큼
살아온 날들 살아갈 날들
서로 엇박자인 삶이지만
시와 같은 박자로 피어나는 시간
시와 같은 박자로 흐르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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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먼저 알아본 사람의 시간
— 박철언 시인의 《시가 되어 만난 사람》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오랜 세월이 한 줄의 시어로 응축될 때, 그것은 기교가 아니라 체온으로 드러난다.
이 작품은 만남을 말하고 있으나, 실은 ‘시를 통해 살아온 시간’이 어떻게 한 인간의 내면을 단단히 빚어왔는가를 보여준다. 시작의 “영적인 언어의 정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시를 단순한 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가꾸는 장소로 인식해온 시인의 태도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첫 연에서 시는 ‘피어나는 것’이며 동시에 ‘잠겨가는 것’이다. 이는 이중적 움직임이다. 밖으로 드러나는 동시에 안으로 깊어지는 구조다. 이러한 이중성은 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리듬이 된다. 시를 읽는 행위가 곧 자신 안으로 들어가는 일임을 암시한다.
이어지는 “첫사랑의 설렘처럼 / 다시 잔잔하게 뛰는 심장”은 감정의 과잉으로 흐르지 않는다. 외려 절제된 회귀의 감각이 있다. 젊음의 격렬한 떨림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지나 다시 발견한 생의 미세한 진동이다. 여기서 시는 새로움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중심부에서 이 시는 가장 깊은 울림을 만든다. “시의 행마다 젖은 삶의 결”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은유를 넘어선다. 시어 하나하나에 축적된 경험의 층위를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이어지는 “숨은 마음자리”와의 마주침은 시를 읽는 일이 곧 자기 인식의 행위임을 분명히 한다. 이때 발생하는 “파동”은 외부의 자극이 아니라, 내면에서 되살아나는 기억의 진동이다.
눈빛의 “윤슬”은 그 파동이 관계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된 떨림이 타인과의 공명으로 이어진다.
후반부에 이르면, 시는 만남의 성격을 재정의한다. “짜릿한 첫사랑”이 아니라 “호기심 가득 담은 첫걸음”이라는 진술은, 감정의 격정보다 지속의 가능성을 선택한다.
이는 시인의 삶과 정확히 겹친다. 법조인과 공직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청년 시절부터 이어온 시적 사유를 놓지 않았던 시간. 그 시간의 밀도가 이 작품의 안정된 호흡으로 나타난다.
특히 “시 속으로 들어가니 / 시간도 훌쩍 뛰어넘은 만남”이라는 구절은, 시의 본질을 간결하게 포착한다. 시는 현재의 언어로 쓰이지만,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호명한다. 그래서 만남은 물리적 동시성이 아니라, 감각과 기억의 겹침 속에서 이루어진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결론이자 확장이다. “엇박자인 삶”이라는 인식은 현실의 불협화음을 인정하는 태도다. 그러나 그 불협 속에서도 “시와 같은 박자”를 발견하는 순간, 삶은 다시 의미를 얻는다.
시는 현실을 바꾸지 않지만, 현실을 견디는 리듬을 제공한다. 여기서 “그대”는 특정한 타인을 넘어, 시를 통해 만나는 모든 존재를 포함한다.
박철언 시인의 시는 결코 순간의 영감이나 우연한 재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몸에 밴 언어의 습관이며, 삶의 굴곡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해온 내면의 기록이다.
경북고 시절 문학동아리 ‘청맥’을 조직하며 시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 했던 젊은 날의 열망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한 이후에도 그의 시적 사유는 멈추지 않았다. 고시 준비라는 다급한 현실 속에서도 전혜린 교수와 함께한 독문학회를 통해 사유의 폭을 넓히고, 언어를 통해 존재를 탐색하는 시간을 이어갔다.
이는 시를 ‘쓰는 일’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로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옥중에서 주고받은 편지들은 그의 시 세계를 결정적으로 심화시킨 계기였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언어는 장식이 될 수 없고, 오직 본질만이 남는다. 그 절박한 기록들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층위를 건드리는 힘을 지닌다.
이처럼 그의 시는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이끌어 올린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오래 머물며 체화된 결과다.
약 70년에 이르는 시적 축적은 겉으로 드러나는 기교나 화려한 수사로 표현되지 않는다. 외려 절제된 문장과 담담한 어조 속에서, 시간의 무게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 작품은 한 개인의 문학적 성취를 넘어, 시가 무엇인지를 다시 묻게 한다. 시는 특정한 순간에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삶 전체를 통해 서서히 형성되는 하나의 존재 방식이다. 언어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세계와 관계 맺으며, 고통과 기쁨을 견디는 과정 자체가 곧 시다.
그렇기에 시는 종이에 쓰이기 이전에 이미 삶 속에서 완성되어 간다. 그 삶이 충분히 깊어졌을 때, 시는 더 이상 만들어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다가와 말을 건네는 존재가 된다. 청민 시인의 시는 바로 그 지점에서 태어난다.
시가 사람을 선택하고, 그 사람의 삶을 통해 다시 세상과 만나는 드문 경우를 이 작품은 증명하고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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