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 시인의 《어떤 기다림》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박철언 시인의 《어떤 기다림》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202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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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다림
시인 청민 박철언
새벽의 이마와 함께 보고 싶었지만
노을의 뒤통수에도 소식이 없을 때
어둠 쏟는 저녁 어스름 넘어
밤이 모두 눈 감아도
끝내 인기척이 없을 때
기대와 설렘이 등 돌리고
어두운 그림자 깊어 가면
서로 난간을 향해 걷는 발길
함께한 모든 날이 엎질러져
어떤 우산도 쓸 수 없을 때
뿌리는 빗방울 하나둘
세포방마다 스며 적신다
온통 젖은 시간만
꽃잎으로 흩날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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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 먼저 와 앉아 있는 자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기다림이 먼저 도착해 앉아 있고, 사람은 그 뒤늦게 따라온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어떤 기다림》은 단순한 그리움의 서정이 아니다. 이 시는 기다림이 어떻게 한 인간의 내부에서 변질되고, 스며들고, 끝내 하나의 상태로 굳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감정의 흐름을 서술하지 않고, 시간의 밀도를 통해 드러내는 방식이다.
“새벽의 이마와 함께 보고 싶었지만 / 노을의 뒤통수에도 소식이 없을 때”라는 첫 구절은 이미 하루의 시작과 끝을 모두 통과한 기다림이다.
새벽과 노을이라는 시간의 양극을 배치함으로써, 이 기다림이 단순한 순간이 아니라 지속된 시간임을 드러낸다.
특히 ‘이마’와 ‘뒤통수’라는 신체적 이미지의 사용은 시간에 생명을 부여하며, 기다림을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든다.
이후 시는 점점 더 깊은 어둠으로 들어간다.
“밤이 모두 눈 감아도 / 끝내 인기척이 없을 때”라는 대목에서 기다림은 더 이상 기대의 영역에 있지 않다. 그것은 부재를 확인하는 반복이며, 결국 감정의 중심이 무너지는 과정이다. “기대와 설렘이 등 돌리고”라는 표현은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끊고 떠나는 형식으로 그려진다. 이때 시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배반의 구조로 형상화한다.
특히 “서로 난간을 향해 걷는 발길”이라는 구절은 이 시의 결정적 장면이다. 난간은 경계이자 끝의 은유다. 서로를 향하던 존재가 각자의 끝을 향해 걷는 장면은, 관계의 단절을 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드러낸다. 여기에는 어떤 과장도, 직접적인 탄식도 없다. 외려 그 침묵이 더 큰 울림을 만든다.
뒤이어 시는 감정을 내부로 끌어들인다.
“어떤 우산도 쓸 수 없을 때 / 뿌리는 빗방울 하나둘 / 세포방마다 스며 적신다”에서 기다림은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신체의 내부로 침투한다. ‘세포방마다’라는 표현은 감정이 단순한 심리 상태를 넘어, 존재 전체를 적시는 물질적 감각으로 확장됨을 보여준다. 기다림은 더 이상 견디는 것이 아니라, 몸이 되어 버린 상태다.
마지막 구절 “온통 젖은 시간만 / 꽃잎으로 흩날리는구나”는 이 시의 미학적 완성이다. 젖은 시간이라는 무게감 있는 이미지를 ‘꽃잎’으로 전환시키는 순간, 고통은 비극으로 남지 않고 하나의 미적 잔상으로 승화된다.
이는 단순한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삶을 통과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언어의 자리다.
이 시를 더욱 깊게 만드는 것은 그 배경이다. 한평생 법조인과 공직자로서 치열한 삶을 살아온 시인. 수많은 결단과 긴장의 시간을 견디며 외부의 세계를 감당해온 존재가, 내부에서는 이토록 섬세한 언어를 길러냈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고교 시절 청맥 문학회에서의 시작, 대학 시절 독일문학회에서의 사유, 그리고 옥중에서 이어진 편지들. 그 시간들은 단절이 아니라 축적이었다. 특히 옥중의 글쓰기는 존재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언어였을 것이다.
그 침묵과 고립 속에서 다듬어진 시심이 오늘의 이 언어를 가능하게 했다.
하여, 이 시는 단순한 서정이 아니다.
한 인간이 통과해 온 시간의 압축이다.
깊이 살아온 사람만이
이처럼 안온히 말할 수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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