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 《관계 진단》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 《관계 진단》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2026.04.27
□ 청민 박철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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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진단
시인 청민 박철언
긴 미몽의 숲인 듯
가운데 낀 검은 실루엣으로
맑아지지 않는 그대
어디까지 나였고
어디부터 그대였나
어렴풋한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갇힌 우리
가운데 자리한 줄 알았는데
그대의 금 밖에 있었을까
내 안 가득 채운 그리움도
금 밖으로 밀어내야 하나
언제부턴가 시작된 안개
밝고 투명하던 관계의 표정이
자꾸 사라지려 한다
다른 극이지만 서로 당기는 자석으로
같은 극이라서 서로 밀치는 엇갈림으로
그런 게 인생이라는 체념
몇 번을 더 해야 하나
라일락꽃향이 불러세운 이름
여. 전. 히
둘인 것 같지만 혼자인 나와 너
혼자인 것 같지만 둘인 우리
어서 미몽의 숲을 벗어나
처음처럼 마냥 설레는 우리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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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언 시인의 시《관계 진단》
ㅡ경계를 넘어, 관계를 다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말보다 먼저 삶이 지나간 자리에서 문장이 태어난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관계 진단》은 그런 문장의 전형이다. 이 시는 감정의 즉흥이 아니라, 한평생을 통과해 온 이력의 압축이며, 법과 경계 속에서 살아온 시간이 인간과 관계를 다시 묻는 자리에서 비로소 얻어진 언어다.
시의 중심에는 여전히 ‘경계’가 놓여 있다. “어디까지 나였고 / 어디부터 그대였나”라는 물음은 단순한 관계의 혼란이 아니라, 평생 ‘선을 긋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한 인간이 그 선의 허상을 깨닫는 순간에 가깝다.
한평생 법조인과 공직자로서의 삶은 분명함과 판단을 요구했으나, 시 속의 세계는 그 모든 명확함이 무너지는 자리다.
그가 “어렴풋한 경계에서 / 벗어나지 못한 채” 머무는 이유는, 그 경계가 더 이상 규정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직에서 물러나 변호사로서 다시 사회와 만나는 그의 행보는 이 시의 내면과 깊이 맞닿아 있다. 무료 법률 자문을 통해 소시민과 소외된 이들을 향해 다가가는 삶은, 이미 시 속에서 예비된 윤리적 태도다.
“내 안 가득 채운 그리움도 / 금 밖으로 밀어내야 하나”라는 구절은 단지 개인적 관계의 고백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마음조차 경계로 나누어야 했던 과거의 삶에 대한 반성으로 읽힌다.
이제 그는 그 경계를 허물며, 관계를 회복의 방향으로 끌어가고 있다.
“다른 극이지만 서로 당기는 자석”과 “같은 극이라서 서로 밀치는 엇갈림”이라는 대목은 그의 삶이 지나온 현실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공직의 자리에서 겪어야 했던 갈등, 인간과 제도 사이의 긴장,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이 간결한 비유 속에 응축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가 거기서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단순한 체념으로 처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몇 번을 더 해야 하나”라는 자문은 포기의 언어가 아니라, 다시 묻고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다.
특히 마지막 연에서 드러나는 “라일락꽃향이 불러세운 이름”과 “여. 전. 히”라는 분절된 호흡은, 기억과 현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관계의 본질을 붙잡으려는 몸짓이다.
그리고 “둘인 것 같지만 혼자인 나와 너 / 혼자인 것 같지만 둘인 우리”라는 역설은,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평화로운 관계의 철학을 함축한다.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끝내 둘로만 남지 않으려는 태도. 바로 그 사이의 긴장이 이 시의 핵심이다.
박철언 시인의 문학은 화려하지 않다. 외려 덜어내고 낮추는 방식으로, 삶의 본질에 접근한다. 이는 무료 법률 자문과 사회적 약자를 향한 실천과도 맞닿아 있다.
그의 시는 관념으로서의 평화를 말하지 않는다. 실제의 삶 속에서 부딪히고, 이해하고, 다시 이어 붙이려는 과정 자체를 시로 만든다. 그 점에서 그의 문학은 단순한 서정이 아니라, 윤리이자 실천이다.
청민 시 《관계 진단》은 관계를 해석하는 시가 아니다. 관계를 다시 살아내려는 의지의 기록이다. 법과 제도의 경계를 넘어,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로 나아가려는 한 사람의 여정이 이 시에 담겨 있다. 그 노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시가 닿는 곳에서, 관계는 더 이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회복의 가능성이 된다.
그 가능성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태도—그것이 박철언 시인이 삶으로 증명하고 있는 문학의 자리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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