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결을 만지는 언어 — 허형만 시인의 시《오월 햇살에서》를 읽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빛의 결을 만지는 언어 — 허형만 시인의 시《오월 햇살에서》를 읽다 202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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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햇살에서
시인 허형만
오월 햇살에서는
푸른 물 냄새가 난다
알래스카에서 보았던
새하얀 빙하 속
은은한 그 물빛처럼
우주가 한몸으로 뿜어내는 오월 햇살은
돌담을 어루만지는
바람의 손길처럼 부드럽고
창공을나는
새의 깃처럼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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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결을 만지는 언어
— 허형만 시인의 시《오월 햇살에서》를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빛이 냄새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감각을 넘어선 세계에 닿아 있다는 뜻이다. 이 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오월 햇살에서는 / 푸른 물 냄새가 난다”라는 첫 문장은 시적 감각의 경계를 가볍게 넘는다. 시각과 후각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순간, 독자는 현실의 인식에서 한 발 물러나 더 맑은 감각의 층위로 이끌린다.
허형만 시인의 시는 언제나 과장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사물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언어를 고른다. 알래스카의 빙하를 불러오는 장면에서도, 그것은 단순한 풍경의 재현이 아니다.
“새하얀 빙하 속 은은한 물빛”은 차가움이 아니라 맑음의 은유로 기능한다. 오월 햇살은 단순히 따뜻한 계절의 빛이 아니라, 우주가 한몸으로 내뿜는 생명의 순수한 기운으로 확장된다.
이 시의 미덕은 힘을 드러내지 않는 데 있다. “돌담을 어루만지는 바람의 손길”과 “새의 깃처럼 가벼운 햇살”은 모두 부드러움의 결을 따라 움직인다.
그 부드러움은 결코 약하지 않다. 외려 거칠게 드러내지 않음으로 더 깊이 스며드는 힘을 지닌다.
허형만 시인의 서정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난다. 강하게 말하지 않음으로 더 또렷하게 남는 언어, 그것이 그의 시를 지탱하는 중심이다.
허형만 시인의 삶을 떠올리면, 이 시의 결은 더욱 선명해진다. 한국 시단의 중심에서, 오랜 시간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길러온 스승으로서의 자리, 그리고 고매한 인품으로 다져온 삶의 태도는 시의 언어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그의 시가 맑은 이유는 기교 때문이 아니라, 삶 자체가 이미 한 번 걸러진 물처럼 투명하기 때문이다.
그의 서정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감정을 정화한다. 독자는 이 시를 읽으며 어떤 격렬한 울림보다, 오래 남는 잔향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오월의 햇살처럼 눈부시지 않으면서도, 어느 순간 삶의 결을 은은하게 밝혀주는 빛이다.
시 《오월 햇살에서》는 계절을 노래하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가장 맑은 상태로 환원되는 순간을 포착한 언어다. 빛은 여기서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삶을 통과한 정신의 투명한 형식이다.
허형만 시인의 시는 그 투명함으로 말한다. 드러내지 않음으로 더 깊이 전해지는 세계가 있음을.□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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