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낮은 손끝에서 밝아오는 새벽 — 황성구 시인의 시《걸레 한 장의 기도》와 그의 삶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낮은 손끝에서 밝아오는 새벽 — 황성구 시인의 시《걸레 한 장의 기도》와 그의 삶 2026.05.03
낮은 손끝에서 밝아오는 새벽 — 황성구 시인의 시《걸레 한 장의 기도》와 그의 삶

□ 정토 마을 능행 스님

걸레 한 장의 기도

시인 황성구

호스피스 병실 문을 여는 순간

말보다 먼저 다가오는 숨결

시간이 천천히 눕는 자리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틀에 쌓인 먼지를 닦으며

누군가의

지난 계절을 쓸어내고

바닥을 훔치는 손끝마다

남겨진 하루가 조용히 일어섰다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미약한 빛 하나 창가에 걸려 있고

나는 그 빛을 건드리지 않으려

걸레를 더 낮게 적셨다

누워 있는 이름들 사이로

바람처럼 스쳐 가는 나의 존자

그러나 그 짧은 머묾 속에서도

내 마음은 오래 머물러 있었다

청소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비워낸 것은 방이 아니라

내 안의 조용한 소망이었음을

□ 황성구 시인

낮은 손끝에서 밝아오는 새벽

— 황성구 시인의 시《걸레 한 장의 기도》와 그의 삶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 시의 시작은 한 편의 문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새벽에서 비롯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백여 명의 이름을 불러 기도하며 여는 시간. 그 호명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자신의 하루 안으로 끌어안는 의식이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존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그 다짐이 쌓여 한 사람의 생을 형성한다. 황성구 시인의 하루는 그렇게 타인을 향한 마음으로 먼저 밝아온다.

황성구 시인은

능행스님이 계신 울산 정토마을 자재병원을 한 달에 한두 번 찾는다.

시《걸레 한 장의 기도》는 바로 그 새벽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병실의 문을 여는 순간 다가오는 숨결, 말보다 앞서는 감각은 이미 오래 준비된 마음의 결과다. 기도 속에서 수없이 불러온 이름들이, 호스피스 병동의 ‘누워 있는 이름들’로 다시 마주 선다. 시와 삶이 분리되지 않는 지점, 이 시의 진정성은 그 일치에서 비롯된다.

이 시에서 ‘닦는 일’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다. 그것은 새벽마다 불러온 이름들에 대한 응답이며, 기도의 물성을 지닌 행위다.

창틀의 먼지를 닦으며 지난 계절을 쓸어내고, 바닥을 훔치며 남겨진 하루를 일으켜 세우는 손길은, 이미 기도로 다져진 마음의 연장이다.

하여, 그의 손은 거칠지 않다. 닦아내되 지우지 않고, 비워내되 남겨두는 방식으로 존재를 다룬다.

특히 “걸레를 더 낮게 적셨다”는 구절은 그의 삶 전체를 압축한다. 타인의 빛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더 낮추는 선택. 이것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존재를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다.

홍익인간의 이념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이렇게 구체적인 자세로 구현될 수 있음을 그는 보여준다. 널리 이롭게 한다는 것은 앞에서 이끄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받쳐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그의 새벽 기도와 병실의 청소는 서로 다른 행위가 아니다.

하나는 이름을 부르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이름을 지키는 일이다. 하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고, 다른 하나는 보이는 자리에서 완성된다.

이 두 흐름이 하나로 이어질 때, 그의 삶은 단순한 선행을 넘어 하나의 윤리로 자리한다.

사람들이 그를 ‘生佛’이라 부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시는 그 호칭조차 조용히 내려놓는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바람처럼 스쳐 가는 존재”로 머문다. 스쳐 지나가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태도, 그러나 그 자리에는 분명히 온기가 남는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다.

《걸레 한 장의 기도》는 결국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시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말로 쓰인 시가 아니라, 몸으로 살아낸 시. 새벽의 기도에서 시작해 병실의 바닥으로 이어지는 하루의 흐름 속에서, 시는 종이에 적히기 전에 이미 완성된다.

이 시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한 가지다. 인간을 향한 마음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증언이다. 황성구의 삶은 거창하지 않다. 그 안온함 속에는 분명한 방향이 있다.

타인을 향해 낮아지고, 존재를 해치지 않으며, 자신을 비워내는 길. 그 길 위에서 그의 시는 더욱 맑아지고, 그의 삶은 더욱 깊어진다.

이 시는 하나의 질문을 슬며시 내려 놓는다.

우리는 하루를 누구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있는가.

그 이름을 어떻게 지켜내고 있는가.

황성구 시인의 삶은 그 물음에 대한 한 가지 답을,

안온히 그러나 분명하게 보여준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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