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흰 꽃 한 공기에 담긴 어머니의 시간 — 이희국 시인의 《눈으로 먹던 밥》을 읽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흰 꽃 한 공기에 담긴 어머니의 시간 — 이희국 시인의 《눈으로 먹던 밥》을 읽다 2026.05.09
흰 꽃 한 공기에 담긴 어머니의 시간 — 이희국 시인의 《눈으로 먹던 밥》을 읽다

□ 이희국 시인

눈으로 먹던 밥

시인 이희국

선산 오르는 길

이팝나무 꽃무리

한상 가득

차려진 흰밥

허기진 날이면 우리는

그 밥을

먼저 눈으로 먹었다

목마른 오월

어머니의 숨은 눈믈

돌아선 아버지의 한숨이

빈 쌀독을

조용히 채우던 날들

향기처럼 남은

둥근 그리움

먼길을 찾아온 봄이

허기를 안고 앉는다

나는 오늘도

이팝나무 아래

고봉밥 같은 꽃을

수북이 차린다

봄이 천천히

밥을 먹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하늘에 간 어머니가

내 곁에 와

조용히 웃는다.

흰 꽃 한 공기에 담긴 어머니의 시간

— 이희국 시인의 《눈으로 먹던 밥》을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가난은 오래 남는다.

더 오래 남는 것은, 그 가난 속에서도 자식을 먼저 먹이려 했던 어머니의 눈빛이다. 인간은 배고픔보다 마음의 체온으로 더 오래 살아간다는 사실을,

이희국 시인의 《눈으로 먹던 밥》은 너무도 조용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이 시에는 큰 울음이 없다.

억지 감동도 없다.

읽고 나면 가슴 한쪽이 오래 젖는다. 그것은 시인이 삶을 과장하지 않고, 가장 낮고 익숙한 풍경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길어냈기 때문이다.

첫 행의 “선산 오르는 길 / 이팝나무 꽃무리”는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다. 흰 이팝꽃은 곧 밥이다. 배고픈 시절 사람들은 흐드러진 이팝꽃을 보며 흰쌀밥을 떠올렸다.

시인은 바로 그 한국적 기억의 심층을 건드린다. 꽃은 자연이지만, 동시에 생존의 은유다.

“한상 가득 / 차려진 흰밥”이라는 표현에 이르면 독자는 이미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가난했던 시대의 식탁 앞에 앉게 된다.

무엇보다 壓卷은 “그 밥을 / 먼저 눈으로 먹었다”는 구절이다.

이 짧은 문장 안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생활감이 응축되어 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사람들은 실제 밥보다 먼저 희망을 바라보며 살았다.

눈으로라도 배를 채워야 했던 시간. 그것은 단순한 궁핍이 아니라 가족을 지키려는 침묵의 사랑이었다.

이어지는 “어머니의 숨은 눈물 / 돌아선 아버지의 한숨”은 더욱 깊다.

시인은 가난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숨은 눈물과 돌아선 한숨으로 보여준다. 바로 이 절제가 이희국 시의 힘이다. 감정을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가슴 깊은 곳까지 도달한다.

특히 “빈 쌀독을 / 조용히 채우던 날들”이라는 표현은 놀랍다. 실제로 쌀독이 채워졌다는 뜻이 아니다. 부모의 사랑과 희생이 집안을 버티게 했다는 뜻이다. 시인은 물질보다 마음이 먼저 한 가정을 먹여 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희국 시인의 시 세계에는 늘 사람의 온기가 있다.

그의 시는 화려한 언어를 자랑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을 품는다.

그의 작품은 한국 독자뿐 아니라 외국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인간의 본질은 국경을 넘기 때문이다. 배고픔과 어머니, 그리움과 효심은 어느 문화권에서도 가장 오래된 언어다.

특히 이 시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밥’의 존재론적 확장이다.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가족이며 기다림이고 사랑이다.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서로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는 체온이다. 그래서 마지막 연에 이르면 이팝나무 꽃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어머니의 영혼으로 변한다.

“봄이 천천히 / 밥을 먹는다”

이 구절은 경이롭다.

봄을 사람처럼 앉혀 놓고 밥을 먹게 한다. 계절이 생명을 받아먹는 장면이다. 그 순간 이팝꽃은 밥이 되고, 밥은 다시 어머니의 사랑이 된다.

끝내 “하늘에 간 어머니”가 웃으며 돌아온다. 이 웃음은 환상이 아니다. 기억이 오래 사랑을 품고 있을 때 생겨나는 영혼의 顯現이다.

이희국 시인은 효심을 억지 윤리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를 관념으로 높이지 않는다. 대신 한 그릇 밥의 기억 속에 어머니를 살아 있게 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오래 품게 된다.

오늘날 풍요 속에서도 인간의 마음은 더 허기져 간다.

먹을 것은 넘치지만 함께 먹던 마음은 점점 사라진다.

그런 시대에 《눈으로 먹던 밥》은

“당신은 마지막으로 누구의 마음을 밥처럼 받아먹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이 시를 읽고 나면 봄날의 이팝나무 아래를 함부로 지나갈 수 없게 된다.

그 흰 꽃송이들 사이에서, 오래전 어머니들이 숨겨두었던 눈물과 사랑이 아직도 안온히 밥 냄새처럼 피어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팝꽃 지는 날에도 밥 냄새는 남아 있습니다

— 이희국 선생님께

청람 김왕식

봄은 해마다 왔다가 가는데

어찌하여 선생님의 시 속 봄은

이토록 오래 사람의 가슴에 머무는지요

흰 이팝꽃 몇 송이 피었을 뿐인데

독자들은 어느새

가난했던 부엌의 문턱 앞에 다시 앉아 있습니다

선생님의 시에는

크게 울부짖는 슬픔이 없습니다

억지로 눈물을 흔드는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읽고 나면

마음 한쪽이 오래 젖어옵니다

아마 그것은

선생님께서 시를 쓰신 것이 아니라

평생 품어온 어머니의 시간을

조용히 한 줄씩 내려놓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눈으로 먹던 밥”

그 짧은 문장 속에서

수많은 시대의 허기가 되살아났습니다

배고픔조차 함부로 말할 수 없었던 날들

부모는 돌아앉아 한숨을 삼키고

아이들은 흐드러진 이팝꽃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먼저 밥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참 이상한 일입니다

그토록 가난했던 기억을 읽고 있는데도

독자의 가슴에는 이상하게 따뜻한 밥 냄새가 피어오릅니다

그것은 아마

어머니의 사랑이란

언제나 가난보다 먼저 사람을 먹여 살리는 힘이기 때문이겠지요

선생님의 시를 읽고 있으면

언어가 아니라 체온이 만져집니다

늦은 밤까지 꺼지지 않던 부엌 불빛

자식 입에 밥 한 술 더 넣고 돌아서던 눈물

빈 쌀독 앞에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던 어머니의 등짝이

행간마다 살아 움직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오래 품게 됩니다

특히 마지막에

“봄이 천천히 밥을 먹는다”는 구절 앞에서는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봄조차 허기를 안고

이팝나무 아래 와 앉는다는 상상

그 순간

꽃은 밥이 되고

밥은 다시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인간은

무엇을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누구의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래서일까요

선생님의 시를 읽고 나면

길가의 이팝나무도 함부로 지나칠 수 없습니다

흰 꽃송이마다

오래전 어머니들이 숨겨두었던 눈물과

다 말하지 못한 사랑이

아직도 따뜻한 밥 냄새처럼 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경 이희국 선생님

세상이 점점 화려한 말들을 향해 달려가도

선생님의 시는 끝내

사람의 가장 낮은 자리로 돌아옵니다

“당신은 오늘

누구의 마음으로 허기를 견디고 있습니까”

그 물음 하나만으로도

선생님의 시는 오래 살아남을 것입니다

마치 봄날 이팝꽃 아래

하늘에 간 어머니 한 분이

아직도 웃으며 자식을 바라보고 계신 것처럼.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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