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바람보다 먼저 마음을 흔드는 꽃 — 화현 황성구 시인의 「섭지코지 찔레꽃」을 읽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바람보다 먼저 마음을 흔드는 꽃 — 화현 황성구 시인의 「섭지코지 찔레꽃」을 읽다 2026.05.11
바람보다 먼저 마음을 흔드는 꽃 — 화현 황성구 시인의 「섭지코지 찔레꽃」을 읽다

섭지코지 찔레꽃

시인 화현 황성구

나는 오늘

앞에 서서

시방 살아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조용히 배웠습니다

파도는 말없이 밀려와 꽃잎 곁을

서성이고 햇살은 연둣빛 잎새마다

작은 축복처럼 내려앉았습니다

섭지코지 찔레꽃은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으면서도

해안가 돌 구릉을 환하게 밝히기에

나 또한 남은 생애 누군가의

마음 한 켠에 저 하얀 꽃무리 같은

잔잔한 위로로 피어나고 싶습니다

오늘 섭지코지에서 만난 찔레꽃

맑은 향기에 가만히 두 손 모아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 이어도문학상 수상 ㅡ 황성구 시인

바람보다 먼저 마음을 흔드는 꽃

— 화현 황성구 시인의 「섭지코지 찔레꽃」을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꽃은 대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피지 않는다.

다만 제 자리에 묵묵히 피어 있을 뿐인데, 어느 날 한 사람의 마음이 그 앞에서 조용히 무너진다.

화현 황성구 시인의 「섭지코지 찔레꽃」은 바로 그런 시다. 화려한 언어로 독자를 압도하지 않는다. 외려 오래 바람을 견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낮고 맑은 시선으로, 살아 있다는 것의 고마움을 천천히 이끈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먼저 제주 바다의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거센 파도와 검푸른 해안, 돌무더기 언덕 사이로 소리 없이 피어 있는 찔레꽃.

황성구 시인은 그 풍경을 단순한 관광의 감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는 직접 제주를 찾고, 섭지코지 끝자락까지 걸어 들어가, 그 바람 속에서 자신의 생을 다시 돌아본다.

하여, 이 시는 자연을 바라보는 시가 아니라,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겸허해지는가를 보여주는 시에 가깝다.

첫 연은 매우 안온하게 시작된다.

“나는 오늘 / 앞에 서서 / 시방 살아 있음이 얼마나 / 고마운 일인지 조용히 배웠습니다.”

이 고백에는 과장이 없다. 담담하기에 더 깊다.

특히 “배웠습니다”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살아 있음은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 앞에서 새롭게 깨닫게 되는 하나의 배움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황성구 시인의 시 세계는 늘 ‘낮아짐’에서 출발한다. 그는 자연을 정복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앞에 오래 서서, 자신의 존재를 조용히 비워낸다.

이 시에서도 찔레꽃은 인간의 감정을 장식하기 위한 소재가 아니다. 시인은 찔레꽃 앞에서 삶의 태도를 다시 배우고 있다.

이어지는 구절은 이 시의 서정을 더욱 맑게 만든다.

“파도는 말없이 밀려와 꽃잎 곁을 / 서성이고 햇살은 연둣빛 잎새마다 / 작은 축복처럼 내려앉았습니다.”

여기에는 억지 감상이 없다. 파도와 햇살, 꽃과 잎새가 서로를 침범하지 않은 채 조용히 공존한다.

특히 “서성이고”라는 표현은 탁월하다. 파도가 꽃을 덮치거나 흔드는 것이 아니라, 곁을 맴돌 뿐이다. 자연조차도 찔레꽃 앞에서는 목소리를 낮추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황성구 시인의 언어는 이처럼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오래 바라본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한다.

그의 시가 지닌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화려한 수사보다 절제된 관찰, 강한 선언보다 조용한 공감이 더 깊은 울림을 만든다.

“섭지코지 찔레꽃은 아름다움을 / 뽐내지 않으면서도 / 해안가 돌 구릉을 환하게 밝히기에.”

이 대목에 이르면 찔레꽃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읽힌다.

찔레꽃은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는다. 그 존재만으로도 척박한 돌 구릉을 환하게 만든다. 황성구 시인이 바라보는 아름다움은 바로 이런 것이다. 요란한 빛이 아니라, 오래 곁에 남아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 존재의 빛.

여기에서 시는 자연의 묘사를 넘어 시인 자신의 삶으로 건너간다.

“나 또한 남은 생애 누군가의 / 마음 한 켠에 저 하얀 꽃무리 같은 / 잔잔한 위로로 피어나고 싶습니다.”

이 구절은 그저 소망이 아니다. 오랜 세월 문학과 사람 곁을 걸어온 황성구 시인의 삶의 태도에 가깝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으로서 그는 늘 사람과 문학 사이를 조용히 이어온 인물이다. 앞에 나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누군가의 상처 곁에서 오래 머무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런 삶의 결이 이 시 속에도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이 시의 ‘위로’는 관념이 아니다. 실제로 사람의 시간을 견디며 얻어진 온기다.

마지막 연은 기도처럼 맑다.

“오늘 섭지코지에서 만난 찔레꽃 / 맑은 향기에 가만히 두 손 모아 /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찔레꽃의 화려함이 아니라 “맑은 향기”다. 시인은 눈보다 먼저 마음으로 꽃을 받아들인다.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은다.

이 시는 찔레꽃을 노래한 작품이 아니다.

살아 있음의 감사와,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로 남고 싶은 인간의 소망을 노래한 시다.

황성구 시인의 「섭지코지 찔레꽃」은 크고 거창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 절제된 언어 속에는 오래 파도를 견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맑은 품격이 스며 있다.

시를 다 읽고 나면,

“사람도 한 송이 꽃처럼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누군가의 마음 한 켠을 오래 환하게 밝혀주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를

자문케 한다.

ㅡ청람 김왕식

□ 이두식 화백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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