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보다 오래 남는 이름 ― 김선영 시인의 《어머니》를 읽고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별빛보다 오래 남는 이름 ― 김선영 시인의 《어머니》를 읽고 2026.05.15
□ 김선영 시인
■
어머니
시인 김선영
하나 하나 짚어가는
별 사이로
문득 어머니 만납니다
별에서 별을 건너
내게로 오십니다
어머니는 별들의 마을에 사십니다
그러나
진실로 어머니는
반짝이지 않는 것에 더 있습니다
반짝이지 않는 것에 더 삽니다
내가 깜깜한 어둠에 걸려 넘어졌을 때
그곳에서 더 잘 보이시니까요
■
별빛보다 오래 남는 이름
― 김선영 시인의 《어머니》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빛나는 것보다 사라지지 않는 것을 그리워하게 된다.
젊은 날에는 환한 빛을 따라 달려가지만, 인생의 먼 길을 돌아온 뒤에는 어둠 속에서도 끝내 곁에 남아 있던 체온 하나를 오래 바라보게 된다.
김선영 시인의 《어머니》는 바로 그런 늦은 인간의 눈물과 깨달음이 스며 있는 시다.
“하나 하나 짚어가는
별 사이로
문득 어머니 만납니다”
이 시의 첫 연은 조용하다.
그 고요 속에는 긴 세월을 살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울림이 숨어 있다. 별을 ‘짚어간다’는 표현은 참으로 아름답다. 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 기억을 더듬듯 하나씩 만져가는 느낌이다.
시인은 지금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생애를 천천히 건너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문득’이라는 말은 오래 남는다.
어머니는 준비된 슬픔 속에서 오지 않는다. 어느 날 저녁 창가에 혼자 앉아 있을 때, 오래된 냄새 하나 스쳐갈 때, 혹은 문득 별빛 하나 흔들릴 때 살아난다. 인간의 그리움은 원래 그렇게 찾아온다. 잊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장 선명하게 돌아온다.
김선영 시인의 삶을 떠올리면 이 시는 더욱 깊어진다.
그는 개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전쟁은 한 소녀에게 고향이라는 가장 따뜻한 풍경을 빼앗아갔다. 동란의 피란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뿌리가 통째로 흔들리는 일이었다.
떠나온 사람에게 고향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며, 가슴속에서만 계속 살아 있는 마음의 마을이다. 김선영 시인의 시에 유난히 깊은 그리움과 낮은 슬픔이 흐르는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별들의 마을에 사십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오래 침묵하게 된다.
죽음을 이렇게 따뜻하게 건너가는 문장이 또 있을까. 시인은 어머니를 사라진 존재로 두지 않는다. 어머니는 여전히 별들의 마을 어디쯤 살아 계신다. 그것은 종교적 위안 이전에 사랑은 끝내 소멸하지 않는다는 인간적 믿음이다.
무엇보다 가슴 저미는 것은, 시인이 평생 어머니와 함께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전쟁을 건너고 타향의 세월을 견디며 어머니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 그 긴 세월 속에는 말로 다 못할 의지와 외로움, 서로를 향한 체온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시 속 어머니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다. 밥 짓는 냄새와 새벽의 기침, 늙어가는 손등과 침묵의 눈빛까지 함께 살아 있는 실제의 어머니다.
이 시가 진정 깊어지는 순간은 다음 구절이다.
“그러나 진실로 어머니는
반짝이지 않는 것에 더 있습니다
반짝이지 않는 것에 더 삽니다”
참으로 깊은 문장이다.
세상은 늘 반짝이는 것들을 향해 달려간다. 성공과 명예, 젊음과 화려한 언어들. 그러나 시인은 인간을 끝내 살게 하는 사랑은 대개 빛나지 않는 자리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안다.
어머니는 이름 없는 부엌의 새벽에 계시고, 먼저 닳아버린 손등 속에 계시며, 자식 대신 먼저 어두워진 눈빛 속에 계신다. 전쟁의 시대를 견디며 자식을 품어낸 한국의 어머니들이 모두 그러했다. 세상은 그 희생을 크게 기록하지 않았지만, 한 시대는 그런 사랑 덕분에 무너지지 않았다.
“내가 깜깜한 어둠에 걸려 넘어졌을 때
그곳에서 더 잘 보이시니까요”
사람은 밝을 때보다 무너질 때 더 본질적인 사랑을 기억한다.
삶이 흔들리고 마음이 꺼져갈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늘 어머니다. 김선영 시인은 그 오래된 인간의 근원을 너무도 맑고 낮은 언어로 건드린다.
김선영 시인의 시는 소란스럽지 않다.
외려 오래 닦인 백자처럼 맑고 절제되어 있다.
아흔이 다 된 지금도 김후란, 허영자 시인 등과 함께 왕성하게 시작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의 문장에는 기교보다 생애가 먼저 흐른다. 오래 살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요한 품격이 시 전체를 감싸고 있다.
1960년대 초, 한국 최초 여성 문학동아리 ‘청미회’의 창단 멤버로 시작해 평생 대학 강단에서 국문학을 가르치며 후학을 길러온 시간들. 그것은 단순한 문단 경력이 아니라 한국 여성문학의 한 정신사를 이루는 귀한 여정이었다.
오늘 어버이날, 김선영 시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한 편의 시를 감상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과 상실의 시대를 건너오면서도 끝내 인간 안의 따뜻함과 품위를 잃지 않았던 한 여성 문인의 생애를 마주하는 일이다.
사람은
반짝이는 빛보다
자기를 끝까지 품어준 어둠의 사랑으로 살아간다.
그 사랑의 가장 오래된 이름은
끝내
어머니다.
ㅡ청람 김왕식

■
별 하나 늦게 뜨는 저녁에
― 김선영 선생님께
청람 김왕식
선생님,
세상은 오래
빛나는 것들을 향해 달려갔지만
선생님은 평생
빛나지 않는 것들의 곁에
조용히 앉아 계셨습니다
전쟁은
한 소녀의 고향을 데려갔으나
선생님은 끝내
사람의 마음까지 빼앗기지는 않으셨습니다
개성의 저녁놀과
피란길의 먼 바람과
어머니의 마른 손등 같은 시간들이
선생님의 시 속에서
별빛보다 낮고 따뜻한 숨결로 살아왔습니다
별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별 사이를 짚어가며
사람의 그리움을 읽어내는 분
꽃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꽃 속에 숨어 우는
어린 생명의 울음까지 들으시는 분
하여,
선생님의 시는
소리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에 닿습니다
아흔의 시간 앞에서도
문장은 늙지 않고
오히려 오래 닦인 백자처럼
더 맑고 고요해졌습니다
젊은 날
청미회의 작은 등불 하나 들고
한국 여성문학의 어둔 길목을 건너오시던 선생님
그 조용한 걸음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 문학의 저녁도
이토록 따뜻한 빛을 품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참된 스승은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끝내 메마르지 않도록
자기 생애로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선생님은
오래 그런 분이셨습니다
문학을 가르치셨지만
실은 사람의 품위를 가르치셨고
시를 읽게 하셨지만
실은 인간의 슬픔을
함부로 지나치지 않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스승의 날 저녁
늦게 뜨는 별 하나 바라보다
문득 깨닫습니다
제 마음속에도
오래 지워지지 않는
한 사람의 별빛이 있다는 것을
선생님,
오래도록
우리 문학의 저녁 하늘에
조용한 별로 남아주십시오.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