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재 속에서도 끝내 꺼지지 않던 등불 ― 김석규 시인의 《편지》와 1938년 식민지 청춘의 숨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재 속에서도 끝내 꺼지지 않던 등불 ― 김석규 시인의 《편지》와 1938년 식민지 청춘의 숨결 2026.05.15
재 속에서도 끝내 꺼지지 않던 등불 ― 김석규 시인의 《편지》와 1938년 식민지 청춘의 숨결

□ 등화 표지화를 김석규 시인이 직접 그렸다

편지

시인 김석규

여기는 빈민부락

태양은 숭었는가

어둠고 습한 공허

바위틈에 달라붙은 박쥐인양

이곳에도 우편집배인은 기어오른다

토막으로 이어지는 마당길을 헤매다

거적지붕을 걷어 편지를 던진다

물 건너 떠나간 자식의 연필로 쓴 편지다.

아무럼

여기에도 편지는 닿는다.

치솟은 공장의 매연, 매연,

마을은 공동묘지 같이 회색

(등화燈火 1938.3 제4집)

□ 편지 원본

재 속에서도 끝내 꺼지지 않던 등불

― 김석규 시인의 《편지》와 1938년 식민지 청춘의 숨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 시 《편지》는

참으로

어렵게 구한 작품이다.

하마터면

영원히

묻힐 뻔했다.

그의 아들 김청 시인이 자료를

발굴ㆍ 번역해 빛을 보게 되었다.

어떤 시는 한 편의 문학이기 전에 시대의 체온이다.

김석규 시인의 《편지》를 읽고 있으면 먼저 시인의 개인적 감정보다 1938년이라는 암울한 시대의 공기가 먼저 폐부로 밀려온다. 공장의 매연과 눅눅한 빈민부락의 어둠, 그리고 그 속에서도 끝내 사람을 향해 도착하는 한 장의 편지.

짧은 시이지만 그 안에는 식민지 조선 청춘들의 절망과 인간적 그리움, 그리고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가 깊게 스며 있다.

무엇보다 이 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배경이다.

1938년. 중일전쟁 이후 조선이 본격적인 전시 체제로 편입되던 시기였다.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통해 조선을 병참기지화했고, 조선 청년들의 삶은 점점 더 가난과 억압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많은 문인들이 침묵하거나 친일의 길로 기울던 그 시대, 이름 없는 젊은 문학청년들은 필경 등사판 동인지 《등화燈火》를 통해 몰래 자신의 언어를 지켜내고 있었다.

여기서 ‘등화’라는 이름 자체가 상징적이다.

등불은 원래 어둠 속에서 존재 의미를 가진다. 빛이 넘치는 시대에는 등불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가장 캄캄한 시대일수록 인간은 작은 불빛 하나에 의지해 살아간다. 《등화》동인들의 문학은 바로 그런 시대의 불빛이었다.

김석규의 《편지》 역시 그렇다.

“여기는 빈민부락

태양은 숨었는가”

첫 문장부터 시는 빛을 잃은 시대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태양은 단순한 자연의 해가 아니다. 그것은 희망이며 인간다운 삶의 상징이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빈민부락에는 더 이상 태양조차 닿지 않는다. “어둡고 습한 공허”라는 표현 속에는 단순한 가난 이상의 절망이 스며 있다.

특히 “바위틈에 달라붙은 박쥐인양”이라는 비유는 처절하다.

인간이 더 이상 당당한 존재로 살아가지 못하고 어둠 속에 매달린 생명처럼 전락해버린 현실. 이 시기의 조선 청년들이 느꼈을 숨막힘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 시는 단순한 절망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곳에도 우편집배인은 기어오른다”

이 구절에서 오래 멈추었다.

‘걸어온다’가 아니라 ‘기어오른다’는 표현은 가난의 경사를 보여준다. 삶은 이미 평지가 아니다. 그 험한 비탈을 넘어 끝내 편지는 도착한다. 그것도 “물 건너 떠나간 자식의 연필로 쓴 편지”가.

참으로 먹먹한 장면이다.

연필로 쓴 편지라는 말 속에는 식민지 시대 가난한 청춘의 맨손 같은 삶이 담겨 있다. 만년필도, 화려한 언어도 없다. 바로 그렇기에 더 진실하다. 그것은 단순한 안부가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보고이며, 어머니를 향한 마지막 체온 같은 것이다.

“아무렴

여기에도 편지는 닿는다”

이 짧은 문장은 놀랍도록 깊다.

아무것도 희망이 없어 보이는 시대에도 끝내 인간은 서로에게 닿고자 한다. 편지는 단순한 우편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하는 마지막 연결이다.

하여,

이 시는 단순한 빈민시가 아니다.

식민지 조선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끝내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존재의 기록이다.

마지막 연의 “공장의 매연, 매연”이라는 반복은 시대의 질식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마을은 “공동묘지 같이 회색”이 되어버렸다.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흐려진 식민지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 있으되 이미 죽은 듯 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런 시대였기에 문학은 더욱 절실해졌다.

《등화》동인들은 일본어라는 식민 언어 속에서도 끝내 자기 내면의 조선적 슬픔과 시대의 비애를 숨겨 넣었다. 그것은 어쩌면 검열을 피해가기 위한 우회였는지도 모른다. 언어의 표면이 무엇이든, 그 안에 흐르는 영혼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김석규 시인의 시가 오늘 다시 우리에게 깊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시는 거창한 저항의 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한 장의 편지가 도착하는 장면만으로도 인간의 존엄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가장 가난한 자리에서도 끝내 서로를 잊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 그 작고 연약한 마음들이 시대의 어둠을 건너왔다.

지금, 거의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아들 김청 선생의 손에 의해 다시 세상 밖으로 불려 나온 《등화》의 시편들은 우리에게 조용히 말한다.

역사는 거대한 권력의 기록만으로 남지 않는다고.

이름 없이 사라질 뻔한 청춘들의 떨리는 문장 속에도 한 시대의 진실은 살아 있다고.

김석규 시인의 《편지》는 그저 과거의 작품이 아니다.

이는 어둠 속에서도 끝내 사람에게 닿으려 했던 인간의 마지막 숨결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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