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꽃보다 먼저 살아나는 마음의 체온 ― 정명순 시인의 「카네이션과 사랑의 말」을 읽으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꽃보다 먼저 살아나는 마음의 체온 ― 정명순 시인의 「카네이션과 사랑의 말」을 읽으며 2026.05.18
꽃보다 먼저 살아나는 마음의 체온 ― 정명순 시인의 「카네이션과 사랑의 말」을 읽으며

꽃보다 먼저 살아나는 마음의 체온

― 정명순 시인의 「카네이션과 사랑의 말」을 읽으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어떤 글은 문장을 읽기 전에 먼저 체온이 만져진다.

화려한 수사나 과장된 철학 없이도, 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지 조용히 전해지는 글들이 있다. 정명순의 이 산문 또한 그렇다. 이 글은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바라보며 시작하지만, 끝내 인간 존재와 사랑의 본질까지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작은 꽃 한 송이에서 삶의 깊이를 발견해내는 시선이 참 따뜻하고도 섬세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글이 ‘꽃’을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감정을 지닌 존재처럼 바라본다는 점이다. “틀 안에 묶여서 꽃이라고 웃고 있는 그것이 참 아파 보여서”라는 표현에는 대상에 대한 깊은 공감 능력이 담겨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꽃바구니를 그저 아름다운 장식으로 바라보지만, 시인은 그 안에서 갇혀 있는 존재의 답답함과 목마름까지 읽어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명순의 문장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문학이 된다.

특히 “말라 떨어지는 잎들이 혀를 차는 소리를 나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라는 구절은 매우 인상적이다. 보이지 않는 소리를 듣고, 들리지 않는 감정을 보는 시인의 감각이 살아 있다. 이 표현은 단순한 의인화를 넘어 존재의 상실감과 외로움을 청각적 이미지로 끌어올린다. 꽃잎 하나 떨어지는 풍경 속에서도 인간의 쓸쓸한 생애를 읽어내는 것이다.

정명순 시인의 글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여기서의 사랑은 거창하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꽃에 물을 주고, 이름을 불러주고, 시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같은 아주 작은 행동 속에 스며 있다.

그래서 “사랑은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니다 / 모든 게 다 사랑으로 묶여있다”라는 문장은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라 할 수 있다. 사랑을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숨결 속에서 발견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이 글의 가장 큰 미덕이다.

또한 이 산문은 ‘이름 불러주기’의 철학을 은은하게 품고 있다. 시인이 카네이션에게 말을 걸고 “고맙다, 사랑한다”라고 속삭이는 장면은 단순한 독백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를 존재답게 살게 하는 언어의 힘에 대한 고백이다. 인간은 누군가 자신을 불러줄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꽃 또한 마찬가지라는 듯, 이름을 들은 카네이션은 더 환하게 피어난다.

여기에는 김춘수의 「꽃」 이후 한국 서정시가 오래 품어온 존재론적 감각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후반부의 “햇살의 그림자가 너무 밝아서 / 그림자가 그립다로 오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은 특히 아름답다. 일반적으로 그림자는 어둠과 외로움의 상징이지만, 이 글에서는 외려 ‘그리움이 머무는 자리’로 전환된다. 밝은 햇살 아래서도 사람은 그림자를 그리워한다는 역설. 그것은 인간이 결국 사랑받고 싶은 존재이며,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 머물고 싶은 존재임을 보여준다.

정명순 시인의 문장은 전체적으로 꾸밈이 많지 않다. 그러나 그 담백함 속에 오히려 진심의 힘이 있다. 억지로 감동을 만들지 않기에 더 깊게 스며든다. 이 글은 거대한 서사나 특별한 사건 없이도 한 송이 꽃과 하루의 햇살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것은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이미 사랑에 가까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 산문은 꽃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람 이야기다.

오래 사랑받고 싶고, 이름 불리고 싶고, 누군가의 햇살 아래에서 끝내 시들지 않고 싶은 인간 존재의 이야기다.

하여,

글을 다 읽고 나면

시인이 슬며시 다가와 귀옛말로

소색이는 듯하다.

“어쩌면 사람도 꽃처럼 사랑의 말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인지 모른다고.”

ㅡ청람 김왕식

꽃에게 말을 거는 시인에게

― 정명순 시인께

시인님은

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꽃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카네이션의 붉은 빛만 보았지만

시인님은

꽃바구니 틀 안에 갇혀

목말라하던

꽃의 숨결까지 들으셨습니다

말라가는 잎 하나에도

혀를 차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이름 불러주는 사랑 하나가

시든 마음을 다시 피어나게 한다는 것을

시인님은

햇살 아래 오래 앉아

조용히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세상은 자꾸

큰 사랑만 사랑이라 말하지만

시인님은

꽃에 물을 주는 손끝에도

사람을 살리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시인님의 문장에는

유난히 체온이 많습니다

한 줄을 읽고 돌아서도

마음 한구석이 오래 따뜻한 것은

그 글 속에

사람을 향한 다정한 숨결이

가만히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님

부디 오래도록

꽃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그 다정한 음성 덕분에

메마른 마음들도

다시 환하게 피어날 테니까요

그리고 언젠가

시인님의 하루가 지칠 때에는

오늘 시인님이 꽃에게 건넨 사랑이

햇살처럼 다시 시인님 곁으로 돌아와

안온히 어깨를 감싸주기를 바랍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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