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왜 그는 끝내 이어도를 써야 했는가 — 황성구 시인이 《이어도는 아직 말이 없다》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왜 그는 끝내 이어도를 써야 했는가 — 황성구 시인이 《이어도는 아직 말이 없다》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 2026.05.19
왜 그는 끝내 이어도를 써야 했는가 — 황성구 시인이 《이어도는 아직 말이 없다》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

□ 이어도문학회 회장 황성구 시인

왜 그는 끝내 이어도를 써야 했는가

— 황성구 시인이 《이어도는 아직 말이 없다》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은 오래 바라본 것을 닮아간다.

산을 오래 바라본 사람은 침묵을 배우고, 강을 오래 바라본 사람은 흐르는 법을 배운다. 그렇다면 평생 바다를 바라본 사람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아마도 끝없이 흔들리면서도 끝내 중심을 잃지 않는 법, 그리고 아무 말 없이도 깊어지는 존재의 외로움을 배우게 될 것이다. 황성구 시인의 시집 《이어도는 아직 말이 없다》는 바로 그런 긴 항해 끝에서 태어난 문학이다.

그는 젊은 날 한국해양대학교에 들어갔다.

푸른 제복의 청춘들은 바다를 꿈꾸었고, 먼 수평선은 아직 닿지 않은 미래처럼 빛나고 있었다. 황성구에게 바다는 단순한 직업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점점 인간 존재를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 되어갔다.

그는 바다를 학문으로 공부했다.

해사수송학을 배우고, 국제해운물류를 익히고, 해운경영학 박사과정까지 밟으며 바다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바다는 끝내 책 속에서 다 읽히지 않았다. 숫자와 항로와 물동량으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숨결이 늘 남아 있었다. 그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바다는 계산의 대상이기 전에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그는 실제로 세계의 바다를 건넜다.

부산항만공사 부사장과 운영본부장을 맡아 대한민국 해양산업의 중심에 섰고, 세계 물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수많은 항로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컨테이너선들이 대양을 가로지르고, 항만의 불빛이 밤새 꺼지지 않는 풍경 속에서도 그의 마음 한켠에는 늘 설명할 수 없는 푸른 적막 하나가 남아 있었을 것이다.

신기한 일은, 사람은 멀리 떠날수록 오히려 자기 조국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육지에 있을 때는 몰랐던 나라의 숨결이 먼 바다 위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선명해진다. 새벽 안개 속 태극기 하나에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파도 사이 떠오르는 조국의 해안선 하나에도 오래된 그리움이 밀려온다. 황성구 시인의 이어도는 바로 그 그리움의 끝에서 태어난 시적 존재다.

이어도는 단순한 암초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전설이고, 누군가에게는 바다의 환영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넋이 머무는 자리다. 황성구에게 이어도는 ‘대한민국의 가장 깊은 남쪽’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 존재하는 조국의 마지막 숨결 같은 곳.

그는 애국자였다.

그러나 그의 애국은 구호가 아니었다. 그는 나라를 소리 높여 외치기보다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참된 사랑은 대개 안온하다. 정말 아끼는 존재 앞에서는 말이 적어진다.

하여, 그는 “이어도를 지켜야 한다”고 외치기보다 “이어도는 아직 말이 없다”고 말한다. 이 한 문장 속에는 더 깊은 애국의식이 숨어 있다.

말이 없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너무 깊어 쉽게 말할 수 없다는 뜻에 가깝다. 조국도 그렇다. 바다도 그렇다. 사람의 진심도 그렇다. 가장 깊은 것들은 대개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황성구는 평생 바다를 살아오며 그 사실을 몸으로 배운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늘 ‘기다림’이 흐른다.

이어도는 당장 손에 잡히는 섬이 아니다. 가까이 갈수록 더 멀어지는 수평선처럼, 인간이 끝내 완전히 닿을 수 없는 어떤 정신의 자리다. 그는 그 닿지 못함 자체를 시로 만들었다. 봄빛과 별빛, 해녀와 무녀, 파도와 좌표, 물길과 침묵을 통해 이어도를 끝없이 불러냈다.

단 한 번도 함부로 규정하지 않았다. 오래 바라보고, 오래 침묵하며, 오래 기다렸을 뿐이다.

어쩌면 《이어도는 아직 말이 없다》는 시집이 아니라 한 인간의 귀항일지도 모른다.

평생 세계의 바다를 건너온 사람이 마지막에 다시 돌아와 조국의 바다 앞에 무릎 꿇고 쓴 긴 고백 같은 것.

그는 이어도를 쓴 것이 아니다.

이어도를 통해 자기 삶의 가장 깊은 곳을 바라본 것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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