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칼의 시대를 건너온 사람은 왜 끝내 바람의 언어를 배우게 되는가 — 박철언의 「바람이 사방에서 부는 날엔」을 읽으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칼의 시대를 건너온 사람은 왜 끝내 바람의 언어를 배우게 되는가 — 박철언의 「바람이 사방에서 부는 날엔」을 읽으며 2026.05.20
칼의 시대를 건너온 사람은 왜 끝내 바람의 언어를 배우게 되는가 — 박철언의 「바람이 사방에서 부는 날엔」을 읽으며

바람이 사방에서 부는 날엔

시인 青民 박철언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날은

그대의 안부를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안에서 밖으로 부는 바림

밖에서 안으로 부는 바람

마음도 바람 따라 불어가니

바람이 되어 무작정 길을 나선다

그대의 어디쯤 닿을지 몰라도

수면 위를 물새처럼 스치다가도

꽃잎에 머물러 꽃의 눈빛도 채집하고

숲속 나뭇잎을 살랑살랑 흔들다가도

나무의 푸른 심장을 읽어오는 바림

그 바람 그대에게 닿기만 하면

멈춘 계절에 다시 화색이 돌고

간헐천처럼 세차게 솟구치면서

막힌 물길이 그리움으로 터질 텐데

바람이 사방에서 부는 날엔

두드리거나 부르지 않아도

이국

의 호수와 설경에서 부는 바림

간절한 서로에게 닿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칼의 시대를 건너온 사람은 왜 끝내 바람의 언어를 배우게 되는가

— 박철언의 「바람이 사방에서 부는 날엔」을 읽으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 시대를 통과한 사람의 침묵은 대개 무겁다.

특히 국가의 중심 가까이에서 살아온 사람일수록 그렇다.

법과 권력, 외교와 안보, 냉전의 긴 그림자 속을 걸어온 인간의 언어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오랫동안 현실이라는 쇳덩이를 들어 올리며 살아온 사람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박철언 시인의 「바람이 사방에서 부는 날엔」을 읽고 있으면 문득 이상한 장면 하나를 보게 된다.

한때 거센 시대의 물살을 헤쳐온 사람이, 이제는 꽃잎 위에 잠시 내려앉는 바람의 숨결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시는 그저 서정시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한 인간의 생애가 끝내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보여주는 늦은 영혼의 기록에 가깝다.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날은

그대의 안부를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이 첫 구절은 이미 오래된 인간의 고백이다.

젊은 날의 인간은 대개 기다리는 법보다 밀고 나가는 법을 먼저 배운다. 그러나 생의 먼 강을 건너온 사람들은 어느 순간 깨닫는다. 세상에서 가장 멀리 닿는 것은 힘이 아니라 안부라는 사실을.

박철언 시인의 삶은 오랫동안 국가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 놓여 있었다.

정치는 사람의 얼굴보다 구조를 먼저 보게 만들고, 법은 감정보다 질서를 먼저 세우게 만든다. 그는 수없이 많은 결단의 현장 속에서 살아왔다. 보이지 않는 전선 위를 걸었고, 시대의 얼음장 같은 긴장을 견디며 국가의 길목을 지켜왔다.

시는 참 이상하다.

그 모든 긴장의 끝에서 사람을 다시 꽃잎 앞으로 데려다 놓는다.

“꽃잎에 머물러 꽃의 눈빛도 채집하고

숲속 나뭇잎을 살랑살랑 흔들다가도

나무의 푸른 심장을 읽어오는 바람”

이 대목은 참 놀랍다.

정치의 세계를 오래 산 사람은 대개 나무를 ‘숲의 구조’로 본다.

청민 시인은 이제 나무의 심장을 본다. 그것도 ‘푸른 심장’을. 살아 있다는 것은 자기 안에 아직 푸른 떨림 하나 남겨두고 있다는 뜻임을 그는 늦게 배운 듯하다.

특히 이 시에서 바람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시인의 또 다른 자아다.

안에서 밖으로 불고, 밖에서 안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결국 인간 내면의 양방향 고독이다. 세상을 향해 살아왔지만 끝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고야 마는 존재의 순환. 박철언 시인의 시는 바로 그 귀환의 언어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생각이 든다.

칼을 오래 쥐고 있던 사람일수록 나중에는 더 여린 것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해서, 그의 시 속 바람은 소리치지 않는다.

두드리지도 않는다.

억지로 문을 열지 않는다.

다만 닿기를 바란다.

이 얼마나 먼 길을 돌아온 언어인가.

“막힌 물길이 그리움으로 터질 텐데”

이 한 줄에는 그의 생애 전체가 스며 있다.

평생 막힌 길들을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 시대의 균열과 단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얼어붙은 거리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목격했던 사람이었다.

이제, 그는 세상을 다시 흐르게 하는 것은 명령이 아니라 그리움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국의 호수와 설경”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 풍경은 단순한 여행의 정취가 아니다. 외려 긴 생애 끝에서 도달한 영혼의 풍경에 가깝다. 모든 소란이 눈처럼 내려앉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인간은 자기 안의 고요를 보게 된다.

박철언의 시에는 늦게 피는 사람의 향기가 있다.

젊은 날의 언어가 불꽃이었다면, 지금의 언어는 잔설 위를 건너오는 바람 같다. 조용하지만 오래 남고, 차갑지만 이상하게 따뜻하다.

하여, 「바람이 사방에서 부는 날엔」은 단순한 그리움의 시가 아니다.

이 시는 한 인간이 시대의 중심에서 존재의 중심으로 이동해가는 순간의 기록이다.

한때 그는 나라의 경계를 지키던 사람이었다.

이제 청민 시인은 우리에게 살며시 다가와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경계는 국경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임을,

그리고 끝내 그 마음을 옮기는 것은

칼과 권력이 아니고

사방에서 조용히 불어오는 한 줄 바람”이라고

귀띔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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