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갈매나무의 숨결로 오래 서 있는 시 — 김선영 시인의 《그림 속 나무》를 읽으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비에 젖은 갈매나무의 숨결로 오래 서 있는 시 — 김선영 시인의 《그림 속 나무》를 읽으며 202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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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나무
시인 김선영
가지에 앉은 뻐꾸기 울음
연두로 칠해 보자
곧추 선 나무의 허리
나무의 연두를
흔들어 보자
꽃잎 몇 떨어진다
나무 한 그루
달을 따라 간다
번개가 쳐도
놀라지 않는
그림 속 나무
평생 잎이 지지 않을
푸른 나뭇가지엔
평생 날아가지 않을
뻐꾸기 한 마리
소리 없이 노래하고 있다
그림 속 나무엔
아무도
쉬어가지 않는다

□
김선영 시인
1930년 개성 출생.
1957년 1회에서 1962년 3회 추천 완료까지 미당 서정주 선생 추천으로 <현대문학> 등단.
경희대 ㆍ세종대ㆍ 성신여대대학원 문학박사. 세종대학교 교수 역임.
한국시인협회 자문위원,
한국 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청미 동인.
시집
<풀꽃왕관>, <달을 배웅하며> <작파하다>, <쓸쓸한 것들을 향하여>,
<사모곡>, <라일락나무에 사시는 하느님>, <밤에 쓴 말> , <환상의 문지기>, <풀꽃제사>, <허무의 신발가게>, <사가> 등.
시선집
<그리움의 식물성>,
<누구네 이중섭 그림>, <달빛해일>, <달을 빚는 남자>,
수필집 <순결한 예술가의 초상>, <사랑은 마주 울리는 메아리입니다>
현대시학작품상,
한국문학상 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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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은 갈매나무의 숨결로 오래 서 있는 시
— 김선영 시인의 《그림 속 나무》를 읽으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세상에는 살아 움직이는데도 죽어 있는 것들이 있고, 움직이지 않는데도 오래 살아 숨 쉬는 것들이 있다.
김선영 시인의 《그림 속 나무》는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는 시다. 그림 속에 갇혀 있으나 외려 시간의 풍화를 견디며 살아남는 존재. 시인은 그 정지된 나무를 통해 인간 존재의 외로움과 예술의 운명을 동시에 비춰낸다.
첫 행의 “가지에 앉은 뻐꾸기 울음 / 연두로 칠해 보자”는 구절은 매우 낯설고도 아름답다. 울음은 원래 소리인데, 시인은 그것을 색채로 바꾼다.
더구나 연두다. 연두는 완성된 색이 아니다. 막 피어나는 생명의 빛이며 아직 상처 입지 않은 시간의 색이다. 여기서 뻐꾸기의 울음은 단순한 새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젊은 생명에 대한 그리움이며, 사라져가는 순수에 대한 마지막 채색이다.
이어 “곧추 선 나무의 허리 / 나무의 연두를 / 흔들어 보자 / 꽃잎 몇 떨어진다”에 이르면 시는 정적인 그림에서 서서히 움직임을 얻는다.
그 움직임은 생동이라기보다 상실의 진동에 가깝다. 흔들리는 순간 꽃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간 역시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조금씩 잃어가는 과정임을 이 장면은 조용히 암시한다. 시인은 삶의 비애를 과장하지 않는다. 다만 꽃잎 몇 장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존재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나무 한 그루 / 달을 따라 간다”는 대목에서는 김선영 시 특유의 몽환성과 정신적 고독이 깊게 드러난다. 나무는 뿌리를 가진 존재다. 움직일 수 없는 운명을 지녔다. 그런데 그 나무가 달을 따라간다. 이는 현실을 넘어가고 싶은 영혼의 이동이며, 끝내 닿지 못할 아름다움을 향한 침묵의 추적이다.
김선영 시인의 많은 작품들이 그러하듯, 이 시에서도 달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다. 인간 내면 깊은 곳의 영원성과 허무를 동시에 비추는 상징이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후반부다.
“번개가 쳐도
놀라지 않는
그림 속 나무”
여기서 그림 속 나무는 이미 세상의 충격과 비극을 초월한 존재처럼 보인다. 실제의 나무는 번개에 찢기고 바람에 쓰러지지만, 그림 속 나무는 상처 입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영원성이 오히려 슬프다.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지만, 그림은 흔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시인은 예술의 본질을 보여준다. 예술은 영원성을 얻는 대신 체온을 잃는 일인지도 모른다.
“평생 잎이 지지 않을 / 푸른 나뭇가지엔 / 평생 날아가지 않을 / 뻐꾸기 한 마리”라는 구절은 소름 돋을 만큼 적막하다. 잎이 지지 않는다는 것은 죽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계절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날아가지 않는 새 또한 자유를 잃은 존재다. 결국 그림 속 세계는 완전하지만 생명이 없다. 시인은 아름다움 속에 갇힌 존재의 비극을 이처럼 고요하게 드러낸다.
마지막 행.
“그림 속 나무엔
아무도
쉬어가지 않는다”
이 결말은 처연하다. 나무는 원래 누군가 기대고 쉬어가는 존재다. 그늘을 내어주고 새를 품고 바람을 쉬게 한다. 그러나 그림 속 나무는 아무도 쉬어가지 않는다. 너무 아름다워 현실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순결한 예술의 운명이란 바로 이런 것인지 모른다. 많은 사람이 감탄은 하지만 끝내 삶으로 들어와 함께 숨 쉬지는 못하는 것.
김선영 시인의 시 세계는 늘 맑고 고요하다. 그러나 그 고요는 단순한 정적이 아니다. 오래 비를 맞은 갈매나무가 풍기는 청아한 향기처럼, 깊은 세월과 외로움을 통과한 뒤에야 얻어지는 정신의 맑음이다. 그의 시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함부로 감정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침묵의 결을 따라 천천히 독자의 영혼 안으로 스며든다.
《그림 속 나무》는 단순히 한 폭의 정물화를 노래한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늙어가면서도 끝내 순결을 잃지 않으려 했던 한 시인의 자화상이며, 영원을 꿈꾸면서도 인간의 체온을 그리워했던 예술의 슬픈 초상이다. 그래서 이 시를 읽고 나면 마음 한편에 오래 비 그친 숲의 냄새 같은 적막이 남는다.
마치 소낙비 지나간 뒤 갈매나무 잎 끝에서 맑은 물방울 하나 천천히 떨어지는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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