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계절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의 인사법이다 ― 주광일 시인의 《봄 엽서 66》을 읽고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봄은 계절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의 인사법이다 ― 주광일 시인의 《봄 엽서 66》을 읽고 202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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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엽서 66
시인 주광일
올해 봄날이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년에는 내년의 봄이 오겠지요. 내년 이맘때도 내 그림자가 여전히 이 땅 위에서 맴돌수 있다면, 한살 더 먹은 내가 떠나가는 내년의 봄날을 애틋하게 배웅할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불행 중 다행일까요. 그 생각만 해도, 나는 떠나가는 올해 봄날을 대범하게 보낼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26.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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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계절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의 인사법이다
― 주광일 시인의 《봄 엽서 66》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은 오래도록 마음으로 섬기고 있는 스승이다.
시 이전에 사람의 향기가 먼저 도착하는 분이며, 문장보다 인품이 앞서는 드문 시인이다.
한평생 법조인의 길을 걸어오며 시비를 가르는 엄정함 속에서도 끝내 인간에 대한 연민과 청백의 정신을 잃지 않았던 분,
하여,
그의 시에는 과장된 수사가 없다. 삶을 오래 통과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담백한 체온과 절제의 품격이 잔잔히 스며 있다.
주광일 시인의 《봄 엽서 66》은 짧다.
그 짧음 속에는 한 인간이 세월과 마주 서서 건네는 조용한 생의 인사가 담겨 있다. 어떤 글은 꽃을 말하지만 실은 시간을 말하고, 어떤 문장은 계절을 보내는 듯하지만 사실은 자기 생애의 그림자를 어루만지고 있다. 이 작품이 바로 그렇다.
무엇보다 이 글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봄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개의 봄 시편들이 피어남과 환희를 노래할 때, 주광일 시인은 떠나가는 봄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본다. 그것도 붙들지 않는다. 억지로 슬퍼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주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년 이맘때도 내 그림자가 여전히 이 땅 위에서 맴돌 수 있다면…”
참으로 깊고도 맑은 문장이다.
보통 사람은 살아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림자’가 남아 있기를 바란다. 여기서 그림자는 단순한 육체의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세상 위에 남긴 미세한 체온이며, 존재의 마지막 잔광 같은 것이다. 살아 있다는 표현 대신 ‘그림자가 맴돈다’고 말하는 순간, 문장은 단순한 계절의 감상을 넘어 존재의 철학으로 깊어진다.
주광일 시인의 문장은 소란하지 않다.
늦은 오후 창가에 스미는 햇살처럼 조용히 독자의 마음 위에 내려앉는다.
해서,
더 오래 아프다. 젊은 날의 봄은 피어나는 것에 관심이 많다. 꽃의 화려함과 사랑의 뜨거움을 바라본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고개를 넘어선 사람에게 봄은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이제 봄은 ‘다시 오는 계절’이 아니라 ‘다시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는 시간’이 된다.
이 작품의 진짜 울림은 바로 그 지점에서 피어난다.
“한 살 더 먹은 내가 떠나가는 내년의 봄날을 애틋하게 배웅할 수 있겠지요.”
이 문장에는 늙음을 두려워하는 조급함이 없다.
외려 한 살 더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축복처럼 받아들이는 깊은 감사와 겸허가 있다. 인간은 흔히 젊음을 잃는 것을 슬퍼하지만, 이 글은 다르게 말한다. 늙어간다는 것은 잃어가는 일이 아니라, 한 계절 더 배웅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받는 일이라고.
그래서 주광일 시인의 봄은 화려하지 않다.
그의 봄은 축제의 봄이 아니라 병실 창문 곁의 봄이며, 늦은 저녁 골목 끝에 조용히 남아 있는 봄이다.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사람의 봄이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 생각만 해도, 나는 떠나가는 올해 봄날을 대범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대범하게’라는 표현은 참으로 절묘하다.
사실 인간은 계절 하나 보내는 일조차 대범하지 못하다. 꽃잎 하나 떨어지는 것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저녁 햇빛 하나에도 지나온 생애가 밀려온다. 그런데도 시인은 애써 담담하려 한다. 그것은 강인함이라기보다, 오래 살아낸 사람만이 겨우 익혀가는 슬픔의 품격 같은 것이다.
이 글은 단순한 봄 이야기가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태롭고도 눈부신 기적인가를 조용히 들려주는 존재의 독백이다. 그리고 그 독백은 지나치게 울지 않는다. 담담하다. 바로 그 담담함 때문에 더 오래 가슴에 남는다.
좋은 글은 독자의 마음속 시간을 건드린다.
주광일 시인의 《봄 엽서 66》은 그런 글이다. 읽고 나면 사람은 문득 창밖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안온히 자기 그림자를 내려다보게 된다.
아직 이 땅 위에 그림자 하나 남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크고도 눈물겨운 축복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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