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시대의 겨울에도 태극기를 놓지 않은 시인 ― 주광일 시인론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대의 겨울에도 태극기를 놓지 않은 시인 ― 주광일 시인론 2026.05.26
시대의 겨울에도 태극기를 놓지 않은 시인 ― 주광일 시인론

시대의 겨울에도 태극기를 놓지 않은 시인

― 주광일 시인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 인간의 생애를 오래 바라보다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무엇을 끝내 놓지 않았는가가 더 선명하게 보일 때가 있다.

주광일 시인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시를 쓰는 사람이기 이전에, 자기 시대를 끝까지 외면하지 않은 양심의 인간이다. 그리고 그 양심은 단지 관념 속에 머물지 않았다. 그의 생애 전체를 통과하며 행동으로 증명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애국을 말한다. 그러나 대개 입술에서 끝난다.

주광일 시인의 애국은 다르다. 그는 조국을 사상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몸으로 사랑했다. 삶으로 견뎠고, 침묵 속에서도 실천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유난히 허세가 없다. 오래 추운 들판을 걸어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묵직한 체온이 배어 있다.

어린 시절, 주광일 시인은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그림자를 직접 겪은 세대이며, 한국전쟁의 참혹함 또한 온몸으로 지나온 사람이다. 폐허가 된 조국의 산하, 피난민의 흐느낌, 배고픔 속에서도 서로의 체온으로 겨울을 견디던 민초들의 삶을 그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므로 그의 조국 사랑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다. 그것은 잿더미 속에서 다시 나라를 일으켜 세우던 시대의 눈물과 맞닿아 있다.

전쟁을 치른 세대는 안다.

나라를 잃는다는 것이 단순히 국토의 상실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언어, 이름과 역사까지 흔들리는 일임을. 주광일 시인이 태극기를 가슴처럼 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태극기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피난길에서 품었던 마지막 희망이며, 폐허 속에서도 버리지 않았던 민족의 숨결이다.

그는 검사로서 한평생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의 법 정신은 차가운 법조문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는 늘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자세로 살아왔다.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내려는 정신.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양심. 그것이 그의 삶을 지탱해온 중심축이었다.

오늘의 시대는 편리함은 넘치지만, 양심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진실보다 이익을 좇고, 신념보다 유행을 따르며, 공동체보다 자기 욕망을 먼저 앞세운다. 그러나 주광일 시인은 그런 시대 속에서도 끝내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마치 겨울 들판에 홀로 남아 있는 오래된 소나무처럼, 그는 시대의 눈보라를 묵묵히 견디며 자기 신념을 지켜왔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그의 실천적 삶이다.

그는 아내와 함께 사계절을 가리지 않고 광화문을 지킨다. 혹한의 칼바람 속에서도, 살갗이 타들어가는 폭염 속에서도 태극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한 집회 참여가 아니다. 자기 시대 앞에 끝내 침묵하지 않겠다는 한 노시인의 마지막 증언 같은 것이다.

젊은 세대는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왜 노인이 저토록 추운 거리로 나가는지. 왜 늙은 몸으로 끝내 광장에 서 있는지. 그러나 그것은 정치 이전의 문제다. 자신이 살아낸 조국의 역사가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며 느끼는 절박함이며,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대를 남기고 싶다는 마지막 책임감이다.

그래서 주광일 시인의 시는 요란하지 않다.

외려 담담하다. 그 담담함 속에는 시대의 아픔이 응축되어 있다. 그의 문장은 결코 과장되지 않지만, 오래 살아낸 사람의 깊은 숨결이 스며 있다. 특히 그의 시에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있다. 나라 잃은 민족의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역사적 체온이 있다.

그는 청백리 같은 시인이다.

화려한 수사를 앞세우지 않고, 문단의 유행을 좇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삶 자체를 하나의 시처럼 살아내려 애쓴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깨끗하다. 욕망의 기름기가 적고, 삶의 먼지를 오래 견딘 사람만의 맑음이 있다.

문학은 인간을 드러내는 예술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을 써도 삶이 무너지면 오래 남지 못한다. 그러나 주광일 시인은 삶과 시가 서로 등을 돌리지 않는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한 시대를 건너온 노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태극기를 쥔 손, 광화문의 바람, 그리고 조국을 향한 말없는 기도가 함께 보인다.

오늘처럼 가치가 흔들리는 시대에 주광일 시인의 존재는 더욱 귀하다.

그는 단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다. 시대의 마지막 양심 중 한 사람이며, 조국을 아직도 가슴으로 앓고 있는 늙은 시인이다.

하여,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불현듯 생각이 든다.

끝내 나라를 사랑한 사람의 문장은

별빛처럼 늦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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