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안개에도 무늬가 있다 ― 청민 박철언 시인의 《관계 진단》을 읽고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개에도 무늬가 있다 ― 청민 박철언 시인의 《관계 진단》을 읽고 2026.05.31
안개에도 무늬가 있다 ― 청민 박철언 시인의 《관계 진단》을 읽고

관계 진단

시인 청민 박철언

긴 미몽의 숲인 듯

가운데 낀 검은 실루엣으로

맑아지지 않는 그대

어디까지 나였고

어디부터 그대였나

어렴풋한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갇힌 우리

가운데 자리한 줄 알았는데

그대의 금 밖에 있었을까

내 안 가득 채운 그리움도

금 밖으로 밀어내야 하나

언제부턴가 시작된 안개

밝고 투명하던 관계의 표정이

자꾸 사라지려 한다

다른 극이지만 서로 당기는 자석으로

같은 극이라서 서로 밀치는 엇갈림으로

그런 게 인생이라는 체념

몇 번을 더 해야 하나

라일락꽃향이 불러세운 이름

여 · 전 · 히

둘인 것 같지만 혼자인 나와 너

혼자인 것 같지만 둘인 우리

어서 미몽의 숲을 벗어나

처음처럼 마냥 설레는 우리가 되었으면

안개에도 무늬가 있다

―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 《관계 진단》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은

평생 수많은 관계를 지나간다.

이상한 일이다.

가장 오래 기억되는 관계는 환하게 빛나던 순간보다 어딘가 흐릿해지기 시작하던 순간들인 경우가 많다.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믿었는데 문득 낯설어지는 순간, 분명 곁에 있는데도 손끝이 닿지 않는 듯한 순간, 말보다 침묵이 많아지는 순간이 오래 남는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관계 진단》은 바로 그 흐릿함의 결을 읽어내는 시다.

이 작품을 읽으며 먼저 떠오른 것은 안개가 아니라 수묵화였다.

먹빛은 번지고 있는데 형상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상태.

지워짐과 남겨짐 사이.

보임과 감춤 사이.

시인은 바로 그 경계 위에 한 사람을 세워둔다.

“긴 미몽의 숲인 듯

가운데 낀 검은 실루엣으로

맑아지지 않는 그대”

여기서 ‘그대’는 이미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그대는 기억이 되고, 그리움이 되고,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 된다.

시인은 상대를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하는 순간 관계는 평면이 되기 때문이다.

대신 실루엣으로 남겨둔다.

윤곽만 있고 얼굴은 없다.

존재는 있으나 확신은 없다.

그 모호함이야말로 이 시를 지탱하는 첫 번째 힘이다.

이 시가 특별한 이유는 관계를 감정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관계시는 사랑하거나 원망한다.

사랑도 원망도 하기 전에 먼저 사유한다.

“어디까지 나였고

어디부터 그대였나”

이 질문은 단순한 연인의 질문이 아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마주하며 평생 품게 되는 존재론적 질문이다.

사람은 혼자 태어나지만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부모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사랑을 만나며 조금씩 자신의 경계를 넓혀간다.

어느 순간 자신 안에 타인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있음을 발견한다.

그때 비로소 묻는다.

지금 내 안에서 숨 쉬는 것은 나인가, 그대인가.

청민 박철언 시인은 그 오래된 질문을 놀라울 만큼 담백하게 꺼내 보인다.

법학자로 살아온 그의 이력은 시 곳곳에서 은은하게 드러난다.

특히

“그대의 금 밖에 있었을까”

라는 대목이 그렇다.

금.

선을 긋는 일.

허용과 제한을 구분하는 일.

그것은 법의 언어다.

시인은 그 언어를 관계의 안으로 가져온다.

관계에도 금이 있을까.

마음에도 출입금지 구역이 있을까.

시인은 답하지 않는다.

다만 묻는다.

그 질문 속에서 독자는 자신만의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좋은 시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오래 남기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의 백미는 단연

“여 · 전 · 히”

라는 세 음절이다.

이 세 음절 앞에서 한참 머물렀다.

보통의 문장이라면 “여전히”라고 적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한 단어를 세 번 멈추어 읽게 만든다.

여 · 전 · 히.

그 순간 단어는 의미를 넘어 시간으로 변한다.

“여”에는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마음이 있다.

“전”에는 함께 걸어온 계절들이 있다.

“히”에는 끝내 지워지지 않는 숨결이 있다.

원래 하나였던 단어를 떼어놓자 그 사이에 세월이 들어온다.

침묵이 들어오고,

그리움이 들어오고,

차마 말하지 못한 사연들이 들어온다.

이것은 단순한 띄어쓰기가 아니다.

관계가 품고 있는 거리의 시학이다.

붙어 있으면서도 떨어져 있고,

떨어져 있으면서도 완전히 떠나지 못한 상태.

시인은 그 미세한 틈을 세 음절의 간격으로 형상화한다.

참으로 노련한 시적 장치다.

시의 마지막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화려하지 않다.

“어서 미몽의 숲을 벗어나

처음처럼 마냥 설레는 우리가 되었으면”

여기서 처음은 과거가 아니다.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미련도 아니다.

관계가 처음 품고 있었던 순수한 온도에 대한 그리움이다.

인생은 앞으로만 흐른다.

마음은 때때로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 처음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상대를 이해하려 했던 마음.

상대를 기다릴 줄 알았던 마음.

상대를 향해 설렘을 품었던 마음.

시인은 바로 그 원형을 향해 손을 내민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관계 진단》은 관계를 분석한 시가 아니다.

관계를 통해 인간 존재의 깊이를 탐색한 시다.

법학자의 이성이 바탕을 이루고,

철학자의 성찰이 흐르며,

시인의 감성이 그 위를 지나간다.

하여,

이 작품은 사랑의 시로 읽혀도 좋고, 우정의 시로 읽혀도 좋으며, 한 인간이 살아오며 마주한 모든 인연에 대한 시로 읽혀도 좋다.

안개는 사물을 지우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던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기 위해 찾아온다.

이 시 또한 그렇다.

관계를 선명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희미하게 남겨둔다.

그리고 그 희미함 속에서 독자는 불현듯 발견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끝내 이어주는 것은 이해도 논리도 아니라,

라일락 향기처럼 오래 머무는 마음의 잔향殘香,

“여 · 전 · 히” 살아 있는 그리움이라는 사실을.

ㅡ청람

《관계 진단》을 읽고

ㅡ청민 박철언 시인께

청민 시인님.

시 《관계 진단》을 배독했습니다.

한 번 읽고 덮을 수 있는 시가 아니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다른 문장이 다가왔고, 다른 침묵이 들렸습니다. 어떤 시는 눈으로 읽고 끝나지만, 어떤 시는 읽은 뒤에도 마음 한구석에 오래 머뭅니다. 이 시가 그랬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관계를 이야기하면서도 인간 존재를 향해 걸어가는 시였습니다.

평생 법학자로, 공직자로, 정치가로 살아오신 시인님께서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관계를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을 다루는 학문이고, 정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를 조정하는 일이며, 공직은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길입니다.

그 긴 세월을 지나온 한 사람이 노년의 문턱에서 다시 관계를 바라본다면, 그것은 그저 감상이 아니라 인생의 결산에 가까운 성찰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시에는 젊은 날의 뜨거운 감정보다 오래 숙성된 사유의 향기가 배어 있습니다.

특히

“어디까지 나였고

어디부터 그대였나”

이 구절에서는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이 질문을 풀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과 친구, 연인과 동료,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을 만나지만, 그 과정은 결국 자기 자신을 만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시인님은 그 오래된 질문을 거창한 철학의 언어가 아니라 담백한 시어로 건네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시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를 읽으며 불현듯 안개를 생각했습니다.

안개는 대개 멀리 있는 것을 가립니다.

때로는 너무 가까운 것도 보이지 않게 만듭니다.

관계 또한 그렇습니다.

멀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여,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시인님께서는 바로 그 지점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셨습니다.

이 시에서 안개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조건처럼 읽혔습니다.

또한 시 곳곳에 스며 있는 절제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많은 시들이 감정을 앞세우지만, 시인님의 시는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해서

더 오래 갑니다.

말이 적은 강물이 오히려 깊은 것처럼, 이 시 역시 절제된 언어 속에서 깊이를 만들어냅니다.

아마도 그것은 법학과 철학을 오래 품고 살아온 삶의 이력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님의 시를 읽으며 한 가지를 느꼈습니다.

문학은 젊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외려 삶을 오래 통과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고, 세월이 쌓여야 비로소 들리는 침묵이 있습니다.

《관계 진단》은 바로 그런 침묵의 언어로 쓰인 시라고 생각합니다.

라일락 향기가 불러세운 이름 하나에서 시작된 시가 결국 인간 존재의 외로움과 동행의 의미까지 확장되는 과정을 보며, 시인님의 사유가 얼마나 깊은 곳까지 닿아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시인님.

인생의 후반부에 문학에 몰두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법으로 세상을 읽어오셨다면, 이제는 시로 인간을 읽고 계신 듯합니다.

그리고 그 읽음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관계 진단》은 관계를 진단한 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를 오래 바라본 한 사색가의 조용한 기록처럼 다가왔습니다.

앞으로도 시인님께서 써 내려가실 시편들이 사람의 마음속 안개를 걷어내는 따뜻한 바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미몽의 숲을 지나온 한 사람의 성찰이 더 많은 이들의 가슴에 오래 머물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시를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를 읽는 내내 라일락 향기 한 줄기가 오래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김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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