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을 낚아 올리는 마지막 소녀 ― 김선영 시인의 《달빛 해일》을 읽으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 김선영 시인의 시집 《달빛 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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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해일
시인 김선영
달빛이 너무 꽝꽝하여
집 무너질까 염려되네
순은純銀의 달빛을
튼실한 세상의 어깨로 메고 가
근심 가진 사람들께 나누어 부어 주네
달빛은 순은 백 냥, 순은 천 냥이요
꽝꽝하니
집집마다 넉넉하리 그득하리
달빛 파도에 둥둥 떠서
출렁이는 집들 사이로 걸어
겨우 몸을 가누고 헤엄쳐 왔네
나의 집도 반쯤 달물에 잠겨 있었네
나는 달에 젖은 머리
물방울 털고 말리네
달의 엷은 비린내
허공에 붐비네
삶에서 떨어져 나간
무수한 슬픔과 기쁨들의
상한 비늘, 달빛이 닦고 있네
오늘밤 저 달에 오르리
저 달을 데려다가
마을 지붕 위
커다랗게 웃던
그 자리
찾아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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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을 낚아 올리는 마지막 소녀
― 김선영 시인의 《달빛 해일》을 읽으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학의 세계에는 나이를 잊게 만드는 시인들이 있다.
세월은 머리카락을 희게 만들 수는 있어도 마음속에 살고 있는 한 소녀까지 늙게 만들지는 못한다.
김선영 시인의 《달빛 해일》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달을 따라 뛰어가던 개성의 소녀’였다.
개성에서 태어나 서울사범과 경희대학교를 거쳐 문학박사가 되기까지, 그의 삶은 한국 현대시의 역사와 함께 걸어왔다.
고등학생 시절 이미 동아일보 학생문예와 전국 문예공모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서정주 · 박목월 · 조지훈이라는 당대 거목들의 눈에 들어 문단에 나왔다.
놀라운 것은 그 긴 세월 동안 시인이 잃지 않은 것이 있다는 점이다.
바로 ‘동화의 눈’이다.
《달빛 해일》은 현실의 시가 아니다.
꿈의 시이며 환상의 시다.
그 환상은 현실에서 가장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은 현실을 품고 있다.
“달빛이 너무 꽝꽝하여 / 집 무너질까 염려되네”
첫 행부터 독자는 현실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세계로 들어간다.
보통 달빛은 부드럽고 가볍다.
김선영의 달빛은 무게가 있다.
심지어 집이 무너질 만큼 “꽝꽝”하다.
이 표현은 어린아이가 눈이 많이 오는 날 “눈이 쏟아진다”고 말하듯 천진하다.
그 천진함이야말로 김선영 시의 본령이다.
그는 평생 사물의 무게를 재지 않았다.
대신 상상의 무게를 재었다.
해서, 달빛은 순은 백 냥이 되고 순은 천 냥이 된다.
달빛은 화폐가 되고 재산이 되고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사랑이 된다.
시인은 달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달을 나누어 준다.
여기서 김선영의 시심이 드러난다.
그의 시에는 경쟁이 없다.
소유가 없다.
오직 나눔만 있다.
달빛조차 혼자 갖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 하는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평생 교육자로 살았고, 시인으로 살아온 그의 정신의 깊은 뿌리일 것이다.
중반부에 이르면 시는 더욱 아름다운 환상 속으로 들어간다.
“달빛 파도에 둥둥 떠서”
달빛이 해일이 되어 마을을 덮친다.
집들은 물결 위에 떠다니고 시인은 그 사이를 헤엄쳐 건너온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해일은 재난이 아니다.
축복이다.
달빛은 파괴하지 않는다.
외려 세상의 슬픔을 씻는다.
“삶에서 떨어져 나간 / 무수한 슬픔과 기쁨들의 / 상한 비늘”
이 대목은 시 전체의 중심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기쁨과 슬픔을 남긴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비늘처럼 벗겨지고 상처처럼 남는다.
김선영은 그 상한 비늘을 달빛이 닦아준다고 말한다.
얼마나 따뜻한 상상력인가.
시인은 심판자가 아니다.
치유자다.
상처를 들추지 않고 조용히 씻어주는 사람이다.
하여, 그의 시에는 칼보다 붕대가 많다.
비판보다 위로가 많다.
마지막 연은 더욱 눈부시다.
“오늘밤 저 달에 오르리”
이 구절에서 시인은 다시 어린 소녀가 된다.
달에 올라가겠다는 발상은 동화 속 아이의 상상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아름답다.
달을 데려다가
“마을 지붕 위 / 커다랗게 웃던 / 그 자리”
찾아주겠다는 것이다.
이 시는 달을 노래한 작품이 아니다.
사라진 웃음을 찾아주는 시다.
잃어버린 순수를 찾아가는 시다.
그리움을 환하게 밝혀주는 시다.
김선영 시인은 한국 현대시의 원로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원로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달빛에 젖은 머리를 털며 웃고 있는 한 소녀가 보인다.
문학의 역사는 오래된 시인을 존경하지만, 독자들은 끝내 늙지 않는 시인을 사랑한다.
김선영은 그런 시인이다.
그의 시집 제목 가운데 《그리움의 식물성》이 있듯, 그의 시는 늘 자라고 있다.
《달을 배웅하며》가 있듯 달과 오래 친구로 지내고 있다.
《달빛 해일》에서는 마침내 달빛을 바다처럼 풀어놓고 사람들의 슬픔을 씻어주고 있다.
시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김선영 시인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달빛 한 바가지를 이웃집 마당에 몰래 부어놓고 오는 일’이라고.
그의 시를 읽고 나면 세상이 조금 더 환해진다.
달이 밝아서가 아니다.
시인의 마음이 아직도 맑은 소녀의 눈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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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의 나이테
― 김선영 시인께
청람
달은
하늘에만 뜨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보니
한 사람의 가슴속에서도
은빛 물결로 출렁이고 있었다
개성의 바람 한 자락
치맛자락에 묶어 두고
평생
파랑새의 깃털을 주워
시의 둥지를 틀어온 사람
그의 창가에는
나이보다 먼저
달빛이 늙고
달빛보다 늦게
소녀가 잠든다
한 편의 시를 쓸 때마다
하늘의 우물에서
별 하나씩 낚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어둠의 등에 붙은
슬픔의 비늘을
조용히 벗겨준다
하여
그의 시에는
칼보다 이슬이 많고
불꽃보다 풀꽃이 많고
목소리보다
먼 곳에서 돌아오는 메아리가 많다
달빛이 너무 많아
마을이 잠기는 밤이면
시인은 홀로
은빛 해일을 건너가
사람들 가슴속
꺼진 창문 하나씩 밝혀 놓는다
세월은
그의 머리칼에
하얀 겨울을 쌓아 두었지만
시의 뿌리에서는
지금도 연둣빛 새순이 올라온다
누구는
시인을 원로라 부르지만
달은 안다
그 이름보다 먼저
한 마리 파랑새였음을
오늘도
저문 하늘 한쪽에서
달이 둥실 떠오르면
가장 먼저
그 달의 손을 잡고
동화 속으로 걸어가는 사람
그러다 불현듯
온 세상이 잠든 새벽이면
달빛도 모르게
꽃잎 한 장으로 피어나는
늙지 않는 소녀 하나
그 이름
김
선
영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