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창문은 위로 열려 있는가 ― 청록 정명순 수필가의 《아파트 빌딩을 보며》를 읽고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창문은 위로 열려 있는가 ― 청록 정명순 수필가의 《아파트 빌딩을 보며》를 읽고 2026.06.05
창문은 위로 열려 있는가 ― 청록 정명순 수필가의 《아파트 빌딩을 보며》를 읽고

아파트 빌딩을 보며

수필가 청록 정명순

눈 앞엔 한 40층 되는 아파트에 조그마한 창들이 세로로 줄을 잇고 있다.

어디에 닿고 싶은 것인지

줄을 계속 대고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출세를 위해선 권력 뒤에 줄을 매고 끌려다닌다.

그것이 인생인가 싶은데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권력하고 거리가 먼 사람들도 많다 하루 살기에도 바빠서 권력이니 뭐니 하는 것조차도 생각을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무엇이 인생일까?

곱씹어 본다.

옳다 그르다 해답은 없다.

나는 나를 놓고 많은 생각을 한다. 나는 무엇인가 내 인생은 또 뭐길래 이렇게 사는가 좀 찬란하게 살 수는 없는 것인가.

아침부터 인생을 논한다는 것은 너무 무겁다.

아파트 주위를 보면 싱그럽게 놀고 있는 것들이 많다. 나무며 꽃이며 심지어는 들고양이들이 가끔씩은 학교로 들락거리는 것도 보인다. 좋은 시선으로 보면 좋은 것들만 보인다는 말이 맞다.

집안에서도 화장실에 물 내려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릴 때가 있다. 그것은 개울물 소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만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창문틈으로 도로에서 빵빵대는 소리 사람들 소리 땅에서 나는 소리는 다 들린다. 내가 소머즈도 아닌데 공기를 통해 내 귀까지 온다.

듣다가 보면 신기해서 그냥 웃기까지 한다. 그렇다 말보다는 듣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닫는다.

아마 사랑과 배려가 인생을 이끄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배려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는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아침에 아파트 빌딩을 보며

2026, 6. 5. 금요일. 흐림

□ 작가의 생각

한 치의 앞도 볼 수 없는 인생인데 무엇을 염려하고 걱정할까라고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그러나 해답은 언제나 없지만 사람이면 계획과 목표가 있기에 그것을 향해 가는 것이 두뇌를 가진 자들이다. 그러나 사랑과 배려의 바탕에서 삶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창문은 위로 열려 있는가

― 청록 정명순 수필가의 《아파트 빌딩을 보며》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아파트를 바라보며 창문을 본다.

청록 정명순 수필가는 창문을 단순한 창문으로 보지 않는다. 그 창들은 하늘을 향해 길게 이어진 줄이다. 닿고 싶은 무엇을 향해 끊임없이 손을 뻗는 인간의 욕망이다.

하여, 이 수필의 출발은 건물이 아니다.

인간이다.

줄지어 선 창문을 보며 세상 사람들이 매달아 놓은 수많은 보이지 않는 줄을 떠올린다. 권력의 줄, 성공의 줄, 인정의 줄, 욕망의 줄.

수필가는 곧 그 줄을 놓아버린다.

모든 사람이 같은 줄을 잡고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권력을 좇지만, 누군가는 하루를 살아내느라 저녁 해가 지는 줄도 모른다.

여기서 글은 경쟁의 철학에서 존재의 철학으로 방향을 튼다.

“무엇이 인생일까.”

짧은 질문 하나가 아파트보다 높다.

청록의 문장은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 곁에 오래 앉아 있다.

좋은 수필은 답을 가르치는 글이 아니라 질문을 함께 바라보게 하는 글이다.

이 작품이 가진 미덕도 여기에 있다.

작가는 거대한 담론을 펼치지 않는다.

창밖을 본다.

꽃을 본다.

나무를 본다.

들고양이를 본다.

그러자 세상이 달라진다.

좋은 것을 보려는 사람에게는 좋은 것이 먼저 보인다.

이 대목에서 청록의 시선은 마치 오래된 우물가에 앉아 물결을 바라보는 사람 같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바라보는 눈이 바뀌자 세상이 달라진다.

이 수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화장실 물소리다.

대부분의 사람은 소음으로 지나친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을 개울물 소리로 듣는다.

이 순간 수필은 철학이 된다.

행복은 세상을 바꾸는 능력이 아니라 해석하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같은 소리도 누구에게는 소음이고 누구에게는 물소리다.

같은 비도 누구에게는 불편이고 누구에게는 시가 된다.

청록은 삶을 해석하는 사람이다.

그 해석의 중심에는 언제나 따뜻함이 있다.

도로의 경적 소리도,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공기를 타고 흘러오는 세상의 소리도,

그에게는 살아 있다는 증거다.

해서 그는 말보다 듣기를 선택한다.

오늘의 시대는 모두가 말하려고 한다.

청록은 귀를 먼저 연다.

그의 수필이 주는 잔잔한 울림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귀를 여는 사람만이 마음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아파트 이야기처럼 시작했지만 아파트 이야기가 아니다.

창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창문 이야기도 아니다.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사랑과 배려다.

높은 빌딩보다 높고,

복잡한 계획보다 깊고,

화려한 성공보다 오래 남는 것.

그것이 사랑과 배려라는 사실을 작가는 담담하게 말한다.

청록의 문장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대신 아침 창가에 내려앉은 흐린 빛처럼 조용히 스며든다.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잠시 걸음을 멈추라고 말한다.

슬며시 다가와 속삭여 묻는다.

당신의 창문은 어디를 향해 열려 있는가.

권력을 향해 있는가.

욕망을 향해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향해 있는가.

청록 정명순의 《아파트 빌딩을 보며》는 창문에 대한 수필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에 대한 수필이다.

수많은 창이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아파트 숲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 하나는 사랑과 배려를 향해 열려 있는 인간의 마음임을 안온히 일깨워 준다.

새벽 우체국에서 오는 편지

― 청록 정명순 수필가께

청람 김왕식

새벽은

늘 먼저 오는 사람이 있다.

해가 뜨기 전,

새들이 목청을 가다듬기 전,

골목의 가로등이 마지막 졸음을 털기 전,

누군가는 하루의 문을 열고 한 장의 글을 세상으로 띄운다.

청록 정명순 수필가의 수필은 마치 새벽 우체국에서 도착하는 편지 같다.

우표도 붙어 있지 않고 주소도 적혀 있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읽는 사람의 가슴으로 정확히 배달된다.

어떤 날은 아파트 창문 하나를 들고 오고,

어떤 날은 길가의 꽃 한 송이를 데려오고,

어떤 날은 물 내려가는 소리 하나를 품고 온다.

남들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인데, 그의 손에 들어가면 작은 사물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얻는다.

마치 오래된 우물 속에 던져진 달빛처럼.

생각해 보면 수필가란 특별한 직업이다.

세상이 버린 의미를 주워 다시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사람.

남들이 소음이라 부르는 것을 개울물 소리로 번역하고,

남들이 귀찮다 여기는 하루를 감사로 바꾸어 읽어내는 사람.

하여, 그의 글을 읽고 나면 세상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독자의 눈이 조금 달라진다.

창문이 창문으로만 보이지 않고,

비가 비로만 들리지 않고,

나무가 나무로만 서 있지 않는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마음의 각도가 바뀌는 것이다.

아마도 좋은 수필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던 이야기를 다시 발견하게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정명순 수필가는 매일 아침 작은 등불 하나를 켜는 사람 같다.

거대한 횃불도 아니고, 세상을 뒤흔드는 불꽃도 아니다.

다만 잠에서 덜 깬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은은히 놓여 있는 등잔불 하나.

그 불빛이 있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들여다본다.

어쩌면 문학이란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맑게 닦아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명순 수필가는 매일 새벽

이슬에 젖은 수건으로 독자들의 창문을 닦아주는 사람이다.

밤새 먼지가 내려앉은 유리창을 닦아주듯,

근심과 습관으로 흐려진 마음의 창을 조용히 닦아준다.

해서

그의 글이 도착하는 아침이면

나무는 조금 더 푸르게 보이고,

바람은 조금 더 다정하게 불고,

사람들은 조금 더 사람다워진다.

새벽마다 한 편의 수필을 쓴다는 것은 글을 쓰는 일이 아니다.

매일 한 알의 씨앗을 심는 일이다.

어느 씨앗은 금세 싹을 틔우고,

어느 씨앗은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어느 날 문득 한 사람의 가슴속에서 꽃으로 피어난다.

정명순 수필가의 글들이 그러하다.

읽고 지나간 줄 알았는데,

계절이 바뀐 어느 날 불현듯 마음속에서 꽃향기로 되살아난다.

오늘도 누군가는 아침 커피보다 먼저

그의 수필을 기다린다.

창밖에 해가 뜨는지보다

오늘은 어떤 생각의 씨앗이 도착할지 먼저 궁금해하며.

ㅡ청람 김왕식 드림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