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는 왜 이를 드러내고 웃는가 — 정명순 시인의 《옥수수》를 읽으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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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시인 청록 정명순
키다리라고 불러
그 몸에 길쭉한 집 하나 짓는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이
헐렁하다
햇살이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고
모래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듯
이빨이 하나씩 아래서부터 차오른다
햇살이 더듬더듬 더듬는 곳마다
이빨이 돋고
헐렁하던 옷이 맞아지고
너와 나 사이에 더 많은 사랑이 환한 어둠을 건너야만
온전한 너를 짜낼 수 있기에
더 두꺼운 옷을 껴입는다
바람이 불자
더듬이가 익어 갈색 모자를 쓰면
푸른 들판 올로 익어
갈색 띠를 두른다
오늘 하루라도 네 이마에 내 이마를 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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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는 왜 이를 드러내고 웃는가
— 정명순 시인의 《옥수수》를 읽으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들판에 서 있는 옥수수를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꽃처럼 피는 식물도 있고, 향기로 기억되는 식물도 있다.
옥수수는 다르다.
한여름 내내 햇빛을 씹어 먹더니
가을이 오자 환하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누가 저 많은 이빨을 심어 놓았을까.
청록 시인의 《옥수수》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되는 시다.
이 시는 옥수수를 바라보는 시가 아니다.
옥수수라는 생명 속에 숨어 있는 시간의 치아를 발견하는 시다.
시인은 옥수수를 식물로 보지 않는다.
햇빛이 거주하는 집으로 보고,
사랑이 성장하는 몸으로 보고,
계절이 천천히 자신의 얼굴을 완성해 가는 존재로 본다.
“키다리라고 불러 / 그 몸에 길쭉한 집 하나 짓는다”
첫 행부터 독자는 옥수수가 아닌 낯선 존재와 마주한다.
옥수수는 심어진 것이 아니라 지어진다.
줄기는 기둥이 되고, 잎은 벽이 되고, 껍질은 문이 된다.
생명은 씨앗에서 시작되지만 시는 집에서 시작된다.
이 전환이 흥미롭다.
시인의 시선은 언제나 사물의 겉모습보다 그 안에 숨어 있는 삶의 구조를 향한다.
시의 백미는 단연
“햇살이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고”
라는 대목이다.
보통 시간은 햇살을 움직인다.
이 시에서는 햇살이 시간을 움직인다.
햇살이 모래시계를 뒤집는 순간, 시간은 추상이 아니라 만질 수 있는 물질이 된다.
그 물질이 아래로 흘러내리며 옥수수 알이 된다.
이어서 등장하는
“이빨이 하나씩 아래서부터 차오른다”
는 표현은 놀랍다.
옥수수 알을 낟알이라 부르지 않고 이빨이라 부른다.
이 순간 옥수수는 먹거리가 아니라 웃음의 얼굴이 된다.
알알이 박힌 낟알들은 햇빛이 만들어 낸 미소다.
청록 시인 시의 특징은 사물을 아름답게 꾸미지 않는 데 있다.
외려 가장 낯선 이름을 붙여 사물의 본질을 새롭게 드러낸다.
이 시의 중심축은 후반부에 이르러 더욱 깊어진다.
“너와 나 사이에 더 많은 사랑이 환한 어둠을 건너야만 / 온전한 너를 짜낼 수 있기에”
여기서 옥수수는 이미 인간의 존재론으로 확장된다.
성장은 빛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밤이 필요하고, 기다림이 필요하고, 보이지 않는 침묵이 필요하다.
시인은 그것을 “환한 어둠”이라 부른다.
빛과 어둠이 대립하지 않는다.
서로를 완성한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가까움만으로 깊어지지 않는다.
함께 견딘 시간의 어둠이 있어야 비로소 한 사람의 참모습이 익는다.
시 속에서 껍질은 단순한 껍데기가 아니다.
존재를 보호하는 옷이다.
처음에는 헐렁했던 옷이 점차 몸에 맞아간다.
이는 성장의 가장 아름다운 비유다.
성장이란 더 많이 가지는 일이 아니라 자기 생에 맞는 옷을 입어가는 과정이다.
마침내 수염이 갈색으로 익고 들판이 갈색 띠를 두를 때, 옥수수는 생애의 절정에 도달한다.
시는 마지막 한 행으로 모든 해석을 넘어선다.
“오늘 하루라도 네 이마에 내 이마를 대본다”
이 순간 시인은 관찰자가 아니다.
생명과 생명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자리로 들어간다.
옥수수의 이마와 인간의 이마가 맞닿는 순간, 들판은 풍경이 아니라 관계가 된다.
정명순 시인의 시 《옥수수》는 열매의 시가 아니다.
햇빛이 시간을 빚어 사랑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시다.
옥수수 한 자루가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한 계절이 서 있고, 한 생애가 서 있고, 한 사람을 향해 천천히 익어가는 사랑이 서 있다.
정명순 시인은 그 사랑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옥수수 한 자루를 세워 놓는다.
독자는 불현듯 그 앞에서 ‘가을 들판이 누렇게 물든 것이 아니라,
햇빛이 끝내 웃음을 배운 것임’을 발견한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