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의 악보 위에 적힌 존재의 느린 독백 ― 원평재 김유조 시인의 《여름밤의 아다지오adagio》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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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의 아다지오adagio
시인 원평재 김유조
폭염의 정염이 달궈놓은 대지 위로
배롱나무 붉은 꽃잎이 피멍처럼 번지는 저녁
무궁화는 차마 다 못한 말을 접어 갈무리한다.
능소화 늘어진 담장 너머 해바라기 고개 숙이고
나팔꽃은 서둘러 생을 오므리는데
맥문동 보랏빛 그림자도 지친 발등을 덮는다.
칡꽃 향기 짙던 산기슭,
억새는 이미 은빛 예고를 하며
뜨거웠던 열기를 가을의 결실로 치환하려 하지만
기상 이변의 대지는 여전히 끓어오르는 난조(亂調)
비바체로 몰아치던 계절의 속도는 어디로 갔나
숨 가쁜 가락은 꺾이고, 절룩이는 박자 위로
여름밤의 아다지오가 낮게 깔린다
교향곡 4악장의 끝자락, 마침내 도달한 애조(哀調)
이 폭염의 끝은 찬란한 결실일까, 서글픈 퇴장일까
느릿한 선율 속에 여름은 비로소 무너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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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의 악보 위에 적힌 존재의 느린 독백
― 김유조 시인의 《여름밤의 아다지오adagio》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유조 시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계절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표정을 읽게 된다.
《여름밤의 아다지오》는 여름을 노래한 작품이 아니다. 폭염이라는 자연현상을 빌려 인간 존재의 피로와 문명의 亂調를 연주한 한 편의 철학적 악보다.
시인은 평생 영문학을 연구했다.
특히 헤밍웨이를 오래 공부한 사람답게 말보다 침묵을 신뢰한다. 헤밍웨이가 빙산의 수면 아래를 중시했다면, 김유조 시인의 시는 꽃과 계절의 표면 아래 숨겨진 존재의 떨림을 보여준다.
첫 연의 배롱나무는 단순한 꽃이 아니다.
“붉은 꽃잎이 피멍처럼 번지는 저녁”
이 구절에서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상처의 색채가 된다. 여름은 찬란한 계절이 아니라 뜨거움에 데인 생명의 흔적으로 바뀐다.
무궁화가 “다 못한 말을 접어 갈무리”하는 장면에서는 늙어가는 인간의 침묵이 겹쳐 보인다. 살아갈수록 말은 늘지 않는다. 외려 접힌다. 삶의 깊이는 언어의 양이 아니라 침묵의 두께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둘째 연은 더욱 인상적이다.
능소화, 해바라기, 나팔꽃, 맥문동.
시인은 꽃들을 식물학적으로 배열하지 않는다.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배치한다.
해바라기는 고개를 숙이고
나팔꽃은 생을 오므리고
맥문동 그림자는 발등을 덮는다.
모든 존재가 조금씩 느려지고 있다.
젊음의 알레그로가 지나간 자리.
중년의 안단테를 지나
노년의 아다지오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시인은 꽃을 말하지만 실은 인간의 시간을 말한다.
셋째 연에 이르면 시의 무게는 한층 깊어진다.
“억새는 이미 은빛 예고를 하며”
이 한 구절은 노년의 예언서 같다.
억새는 가을보다 먼저 늙음을 안다.
인간 역시 그렇다.
거울보다 먼저 마음이 나이를 알아차린다.
그런데 시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기상 이변의 대지는 여전히 끓어오르는 난조(亂調)”
이 구절에서 시는 자연시를 벗어나 문명비평으로 확장된다.
계절이 계절답지 못한 시대.
봄은 짧아지고
여름은 길어지고
인간의 욕망은 끝없이 과열된다.
폭염은 단순한 날씨가 아니다.
속도를 신앙처럼 떠받드는 현대 문명의 체온이다.
김유조 시인은 자연의 병을 통해 인간의 병을 진단한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백미다.
“비바체로 몰아치던 계절의 속도”
“절룩이는 박자”
“여름밤의 아다지오”
시 전체를 지배하는 음악적 구조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젊음은 빠르다.
성공도 빠르다.
욕망도 빠르다.
비바체다.
허나,
인생의 마지막 진실은 언제나 느린 곳에 있다.
아다지오adagio는 단순한 느림이 아니다.
모든 속도를 통과한 뒤에야 도달하는 존재의 호흡이다.
헤밍웨이는 인간을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 존재”라 했다.
김유조 시인은 여기에 한 줄을 더 보태는 듯하다.
인간은 느려짐으로 완성되는 존재라고.
시의 마지막 물음은 아름답고도 쓸쓸하다.
“찬란한 결실일까, 서글픈 퇴장일까”
그 답을 시인은 말하지 않는다.
좋은 시인은 해답을 주지 않는다.
좋은 시인은 질문을 오래 살아 있게 만든다.
김유조 시인의 《여름밤의 아다지오》는 계절의 종말을 노래하는 시가 아니다.
속도의 문명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박자를 되찾게 하는 느린 종소리다.
폭염의 한가운데서도 이 시가 서늘하게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평생 영문학을 연구한 학자의 지성과, 계절의 숨결을 들을 줄 아는 시인의 감성이 한 악보 위에서 만난다.
이 시는 여름을 묘사한 작품이 아니라, 늙어가는 시간의 등을 가만히 어루만지는 한 편의 만년(晩年) 교향곡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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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악보
― 김유조 시인께
한 생을
영어의 숲에서
헤밍웨이의 침묵을 줍고
셰익스피어의 별빛을 옮겨 심던 분
칠판 위에 적힌 문장들은
지워졌으나
젊은 영혼들 가슴속에는
아직도 푸른 등불로 켜져 있습니다
시인께서는
말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언어 속에 숨은
사람의 온도를 가르치셨습니다
폭염의 계절에도
한 편의 아다지오adagio를 펼쳐
지친 세상의 맥박을
다시 고르게 하시는 분
늙은 배롱나무 한 그루
붉은 꽃잎으로 하늘을 쓰듯
시인께서는
주름진 시간의 종이 위에
고요한 사유의 꽃을 피우십니다
세월은
머리 위에 흰 눈을 내렸으나
영혼의 강물은
아직도 첫 물결처럼 맑습니다
오늘도
시인께서 남긴 한 줄의 문장이
어둠을 밟는 사람들 가슴에
작은 별 하나로 떠오릅니다
시란
종이 위에 적는 글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가 악보가 되는 일임을
시인께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