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역사에서 태어나고 사랑은 시간에 남는다 ― 김석인 시인의 시 「테헤란로의 추억」이 들려주는 기억의 미학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길은 역사에서 태어나고 사랑은 시간에 남는다 ― 김석인 시인의 시 「테헤란로의 추억」이 들려주는 기억의 미학 2026.07.11
□ 김석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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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의 추억
시인 夕江 김석인
강남의 긴 거리
유리 빌딩 사이로
바람이 흐른다
사람들은 바쁘게 지나가고
나는 문득
이 길의 이름을 떠올린다
멀리 사막의 나라
페르시아
낙타의 종소리
비단을 싣고 오던
실크로드의 먼 길
그 아득한 길처럼
한때 우리는
이 거리를 함께 걸었다
말없이 손을 잡고
저녁 불빛 속을 지나던
젊은 날의 두 그림자
오늘도 테헤란로에 서면
길의 이름은
역사에서 오지만
길의 추억은
사랑에서 남는다
■
길은 역사에서 태어나고 사랑은 시간에 남는다
― 김석인 시인의 시 「테헤란로의 추억」이 들려주는 기억의 미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는 길을 말하는 듯하지만, 끝내 길을 걸었던 사람을 말한다. 김석인 시인의 「테헤란로의 추억」은 도시를 노래한 시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길 위에 남겨진 사랑의 흔적을 보듬는 서정시이다.
도시는 대개 속도의 공간이다. 빌딩은 높아질수록 하늘을 가리고, 사람은 많아질수록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시인은 그 익명의 흐름 속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모두가 앞을 향해 걸을 때 홀로 뒤를 돌아보는 시선, 바로 그 지점에서 시는 시작된다. 기억은 늘 걸음을 늦추는 사람에게 먼저 찾아온다.
‘테헤란’이라는 지명은 시 속에서 단순한 거리 이름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서울과 페르시아를 잇는 문화의 다리이며,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시간의 통로가 된다. 실크로드를 건너오던 낙타의 종소리를 불러오는 순간, 콘크리트 숲 한복판의 도로는 더 이상 아스팔트가 아니다. 수천 년 문명을 품고 흘러온 인간 역사의 긴 숨결이 된다. 김석인 시인은 하나의 지명을 하나의 문명으로 확장하는 상상력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아름다운 이유는 사랑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절제에 있다.
“말없이 손을 잡고 / 저녁 불빛 속을 지나던 / 젊은 날의 두 그림자.”
시인은 사랑을 설명하지 않는다. 손 하나, 그림자 하나만 남겨 둔다.
외려 말하지 않은 여백이 더 큰 사랑을 완성한다. 좋은 시는 감정을 많이 말하는 작품이 아니라, 독자의 가슴에서 감정이 저절로 자라나게 하는 작품이다.
마지막 연은 이 작품의 중심축이다.
“길의 이름은
역사에서 오지만
길의 추억은
사랑에서 남는다.”
참으로 깊은 통찰이다.
역사는 길의 이름을 만들지만, 사람은 그 길에 생애를 남긴다. 지도는 거리를 기억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함께 걸었던 시간을 기억한다. 길은 도시를 연결하지만, 사랑은 시간을 연결한다. 이 짧은 결말은 공간의 철학을 삶의 철학으로 바꾸어 놓는다.
김석인 시인의 시어는 화려하지 않다. 담담하다. 그 담담함은 오래된 목재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와 닮아 있다. 큰 목소리로 감동을 강요하지 않고, 작은 숨결로 독자의 마음을 오래 흔든다. 절제된 언어가 외려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내는 까닭이다.
이 작품은 숙독하면
테헤란로는 더 이상 서울 강남의 번화한 도로가 아니다. 누구에게는 첫사랑을 만난 길이고, 누구에게는 마지막 이별을 견딘 길이며, 또 다른 누구에게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청춘의 시간이다. 시인은 하나의 거리를 인간의 기억이 머무는 성소로 바꾸어 놓는다.
김석인 시인의 「테헤란로의 추억」은 도시를 풍경으로 읽지 않고 인간의 체온으로 읽어 낸 秀作이다.
그의 시는
길을 걷지 않는다.
시간 위를 걷는다.
□
길은 사람을 잊어도 시는 기억합니다
― 김석인 시인께
시인께서는
길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길 위에 오래 머물던 사람의 심장을 쓰셨습니다.
테헤란로의 불빛 하나를
실크로드의 별빛과 마주 앉히는 동안,
서울의 밤은
천 년을 건너온 낙타 방울 소리로
가만히 숨을 고쳐 쉬었습니다.
사람은 떠나도
발자국은 지워져도,
사랑은 길보다 오래 살아
한 편의 시가 되어
누군가의 가슴에 다시 길을 냅니다.
좋은 시인은
세상을 크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그리움을
인류의 기억으로 번역하는 사람.
김석인 시인,
선생의 시는
오늘도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우리 마음의 오래된 길을
다시 걷게 합니다.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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