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침묵으로 철학을 완성한다 ― 素江 정근옥 시인의 「나무는 도덕경을 읽는다」를 읽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나무는 침묵으로 철학을 완성한다 ― 素江 정근옥 시인의 「나무는 도덕경을 읽는다」를 읽다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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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도덕경을 읽는다
시인 素江 정근옥
포기할 수 없는 삶이 다가오더라도
나무는 한겨울에도 눈을 틔우고,
돌아설 수밖에 없는 길이 다가와도
나무는 욕망의 비탈길을 향해
곧은 길을 버리고 돌아가지 않는다
한순간 비바람 몰아치는 밤이 와도
나무는 밤새 나뭇가지를 흔들며,
어둠을 같이 밀어내던 친구의 손을 잡고
수도승처럼 앉아 땅속 뿌리 불끈 움직이며
별빛보다 깨끗하게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한다
□ 정근옥 시인
문학비평가, 문학박사, 국제펜한본부감사. 중앙대문인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자문위원(부이사장), 한국문협회원, 서울교원문학회장, 상계고교장(역), ‘시와함께’주간, 대한교육신문논설위원, 중앙대교직동문회장,
《시집》
‘새들의 집’,
‘수도원 밖의 새들’,
‘인연송’,
‘어머니의 강’ 외 다수
《평론집》
‘조지훈 시 연구’ 외 다수
《에세이 집》
‘행복의 솔밭에서 별을 가꾸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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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침묵으로 철학을 완성한다
― 素江 정근옥 시인의 「나무는 도덕경을 읽는다」를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좋은 시는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기보다, 오래 바라보게 한다. 한 편의 시를 덮은 뒤에도 마음속에서 잎사귀 하나가 계속 흔들린다면, 이미 그 시는 언어의 일을 끝내고 생명의 일을 시작한 것이다.
素江 정근옥 시인의 「나무는 도덕경을 읽는다」는 바로 그러한 작품이다. 이 시는 나무를 소재로 삼았으나 식물학을 말하지 않는다. 《도덕경》을 제목으로 내세웠으나 철학을 강의하지도 않는다.
대신 한 그루 나무를 세상 한가운데 세워 놓고, 인간이 오래 잊고 살았던 존재의 품격을 천천히 비추어 보인다.
제목부터 남다르다.
나무는 도덕경을 읽는다. 《도덕경》을 읽는다는 것은 책장을 넘긴다는 뜻이 아니다. 바람을 스승으로 삼고, 침묵을 언어로 삼으며, 비움을 가장 큰 충만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방식이다.
素江 시인은 《도덕경》의 철학을 설명하지 않고 한 그루 나무에게 맡긴다. 그 순간 철학은 사상이 아니라 풍경이 되고, 풍경은 다시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시 속의 나무는 끝내 자신의 고통을 앞세우지 않는다. “한겨울에도 눈을 틔우고”라는 구절은 절망을 부정하는 선언이 아니라, 생명이 자기 자신과 맺는 오래된 약속처럼 읽힌다.
겨울은 생명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가장 차가운 계절일수록 가장 깊은 생명의 준비를 품고 있음을 나무는 몸으로 증언한다. 이 장면에서 시인은 계절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시간을 노래한다.
특히 “곧은 길을 버리고 돌아가지 않는다”는 표현은 역설의 미학을 보여 준다. 일반적인 삶의 논리는 직선을 성공이라 믿는다.
반면, 나무는 욕망의 비탈을 향해 무리하게 오르지 않는다. 자신의 속도와 결을 잃지 않는다. 이는 경쟁을 미덕으로 삼는 시대를 향한 깊은 성찰이며, 《도덕경》이 말하는 無爲自然의 정신이 오늘의 언어로 다시 피어난 장면이다.
시인 정근옥 시의 미학은 거대한 修辭를 앞세우지 않는다. 오랜 세월 교단과 문학 현장을 함께 걸어온 시인의 삶이 언어를 절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어는 과장된 빛을 내지 않는다. 오래 손에 쥐고 다듬은 강돌처럼 은은한 결을 지닌다. 그 절제는 시를 가볍게 만들지 않고, 외려 더 깊은 울림으로 독자의 내면을 적신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마지막 연이다. “별빛보다 깨끗하게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한다.” 살아 있는 것만 사랑하는 존재는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 이미 떠난 생명까지 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존재는 숲이 된다. 나무는 홀로 서 있지만 혼자가 아니다. 땅속에서는 뿌리가 서로를 붙들고, 하늘에서는 가지가 같은 바람을 나눈다.
시인 정근옥은 그 생명의 연대를 수도승의 기도로 형상화한다. 이 장면에서 나무는 식물이 아니라 하나의 성직자가 된다.
문학박사이자 비평가인 素江 정근옥 시인의 학문적 깊이는 작품을 무겁게 만들지 않는다.
외려 《도덕경》의 철학은 시 속에서 자연스럽게 잎맥이 되고, 사유는 꽃보다 늦게 피어나는 향기가 된다. 그의 시는 지식을 드러내지 않고 삶으로 번역한다. 그것이 오랜 詩作과 비평을 함께 걸어온 시인의 힘이다.
오늘의 시대는 속도를 숭배한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를 외친다. 그 속에서 인간은 종종 자신의 뿌리를 잃는다. 「나무는 도덕경을 읽는다」는 그런 시대를 향해 한 그루 나무를 내어 보인다. 흔들려도 뿌리를 잃지 않는 존재, 함께 어둠을 밀어내는 존재, 살아 있는 이와 죽은 이를 함께 품는 존재. 시인은 그런 나무를 통해 인간이 끝내 회복해야 할 마음의 형상을 그려 낸다.
이 시는 나무를 읽는 작품이 아니라 인간을 다시 읽게 하는 작품이다. 《도덕경》의 철학은 책 속에서 완성되지 않았다. 한 그루 나무의 침묵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정근옥 시인은 그 침묵을 시로 번역했고, 독자는 그 시를 읽으며 자신의 마음속에 잊고 있던 숲 한 편을 다시 만나게 된다.
좋은 시는 오래 기억되는 문장이 아니라 오래 살아가는 생명이다. 정근옥 시인의 「나무는 도덕경을 읽는다」는 바람이 지나간 뒤에도 숲의 향기를 남기는 작품이며, 《도덕경》의 지혜와 한국 서정시의 생명 의식이 한 편의 시 안에서 아름답게 만나는 귀한 결실이라 평가할 수 있다.□
ㅡ청람
□
정근옥 시인께
한 사람이 오래 나무를 바라보면
마침내 나무의 언어를 배우게 됩니다.
선생님은
평생 시를 쓰신 것이 아니라
한 그루 숲이 되어
세월을 걸어오셨습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잎사귀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주셨고,
꽃이 피는 계절보다
사람의 인품이 먼저 피어야 한다는 것을
시보다 긴 삶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시를 읽다 보면
언어는 소리를 버리고
향기가 됩니다.
한 줄의 시어는
계곡을 흐르는 물처럼 맑고,
한 편의 작품은
깊은 산중 고목이 품어 온
나이테의 기도처럼 고요합니다.
선생님은
《도덕경》을 읽기 전에
먼저 자연을 읽으셨고,
자연을 읽기 전에
먼저 사람의 눈물을 읽으셨습니다.
그 눈물은
시가 되었고,
그 시는
수많은 영혼의 마른 강바닥에
푸른 물길 하나를 열었습니다.
문학은
재능만으로 오래 살아남지 못합니다.
학문이 깊어야
사유가 넓어지고,
인격이 맑아야
언어에도 빛이 깃듭니다.
선생님은
평생 그 세 길을
한 걸음도 흐트러짐 없이 걸어오셨습니다.
시인으로서의 품격,
학자로서의 깊이,
교육자로서의 따뜻함이
한 그루 아름드리나무의 둥치처럼
한 생애 안에서 아름답게 만났습니다.
선생님의 시는
독자의 눈을 붙드는 작품이 아니라
독자의 영혼을 오래 머물게 하는 숲입니다.
그 숲에서는
바람도 소리를 낮추고,
햇살마저
한 권의 시집을 넘기듯
나뭇잎을 조심스레 어루만집니다.
부디 오래도록
대한민국 문단의 푸른 거목으로 서 계십시오.
선생님께서 심어 오신
한 편 한 편의 시는
앞으로도 수많은 젊은 시인의 가슴에
씨앗이 되어 싹틀 것입니다.
존경은
가까이 있을수록 더 깊어집니다.
평소 깊은 문학과 학문,
곧은 인품을 존경해 온 마음을 담아
선생님의 앞날에
늘 맑은 바람과
푸른 숲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2026, 7, 14
ㅡ 청람 김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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