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한 그루 계절이 되는 순간 ― 청민 박철언의 시인의 시 「이런 나였으면」을 읽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사람이 한 그루 계절이 되는 순간 ― 청민 박철언의 시인의 시 「이런 나였으면」을 읽다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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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였으면
시인 청민 박철언
가슴에 빈자리 하나 품고 살다가 그대가 유난히 쓸쓸해 보일 때면 마음의 빗장 풀고 그 자리 내어주는
허물을 탓하지 않고 말없이 어두워지는 아픔을 껴안아 줘
흔들림 없는 소나무가 되어주는
무더운 여름철
마음속 뜨락까지 파고드는
시원한 그늘이 기꺼이 되어주는
황량하게 텅 빈 겨울철
거실 깊숙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이 조용히 되어주는
자라나는 어떤 걱정도 괜찮다면서 싱긋 웃음으로 날려줄 수 있는
언제부턴가 이럴 수 있는 내가
부쩍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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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한 그루 계절이 되는 순간
― 박철언의 「이런 나였으면」을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 사람의 생애는 때로 한 권의 법전보다 두꺼운 침묵을 품는다. 수많은 판결과 선택, 영광과 오해, 만남과 이별이 켜켜이 쌓인 끝에 비로소 한 편의 시가 태어난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이런 나였으면」은 젊은 날의 열정을 노래한 작품이 아니다. 인생의 높은 고개를 넘어온 한 인간이, 삶의 마지막 언덕에서 자신을 다시 바라보며 써 내려간 영혼의 자화상이다.
이 시를 읽는 순간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화려한 언어가 아니라 비어 있는 자리이다. 시인은 무엇을 채우려 하지 않는다.
먼저 “가슴에 빈자리 하나 품고 살다가”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그의 문학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에서 시작된다. 그 빈자리는 결핍이 아니라 타인을 맞아들이기 위한 자리이며, 자기 욕망을 덜어 낸 사람만이 마련할 수 있는 존재의 여백이다.
비어 있는 가슴이 가장 넓은 집이 된다는 역설을 이보다 더 담담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박철언의 시어는 높이 솟지 않는다. 대신 사람 곁으로 낮게 흐른다. “소나무”, “그늘”, “햇살”, “웃음” 같은 평범한 언어들이 시 속에 들어오는 순간 삶의 온도를 품은 상징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는 오랜 세월 법조와 공직의 엄중한 세계를 살아온 사람이 마침내 권위보다 온기를 선택했음을 보여 주는 문학적 고백이다.
특히 이 작품은 인간의 이상을 거창한 윤리로 말하지 않는다. 그늘이 되어 주고, 햇살이 되어 주고, 웃음이 되어 주는 사람. 시인이 꿈꾸는 인간상은 세상을 움직이는 영웅이 아니라 한 사람의 계절이 되어 주는 사람이다. 여름에는 그늘이 되고 겨울에는 햇살이 되는 존재. 이 얼마나 깊고도 아름다운 은유인가. 계절은 누구에게도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이야말로 이 시의 가장 빛나는 중심이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더욱 깊은 울림을 남긴다.
“언제부턴가 이럴 수 있는 내가 / 부쩍 그립습니다.”
이 한 구절은 시 전체를 다시 읽게 만든다. 그리운 것은 누군가가 아니다. 과거의 자기 자신이다. 여기에는 세월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인간의 가장 정직한 눈물이 숨어 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젊음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했던 마음을 그리워한다.
시인은 그 사실을 절제된 언어 하나로 독자의 가슴에 오래 남긴다.
한평생 법조인과 공직자로 살아온 그의 이력은 이 시를 더욱 깊게 만든다. 치열한 이해관계와 냉엄한 현실을 수없이 통과한 사람일수록 인간의 온기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절실하게 안다. 이 작품은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삶이라는 긴 재판 끝에 자신에게 내린 가장 따뜻한 판결문이다.
하여,
이 시는 성공을 말하지 않고 품격을 말하며, 권력을 말하지 않고 사랑의 체온을 말한다.
청민 시인의 시는 거대한 철학을 앞세우지 않는다. 다만 오래 풍화를 견딘 바위가 비를 맞으며 둥글어지듯, 한 인간의 영혼이 세월을 통과하며 얼마나 부드러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의 언어는 날카로운 칼이 아니라 오래 손때 묻은 지팡이와 같다. 앞서 걷기보다 함께 걷게 하는 힘이 있다.
시「이런 나였으면」은 자신을 위한 시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닮고 싶은 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 놓은 삶의 초상화이다. 오늘의 시대는 더 높아지는 법을 배우지만, 이 시는 더 따뜻해지는 법을 가르친다. 더 많이 소유하는 길보다 더 깊이 품어 주는 길이 인간을 완성한다는 사실을 안온히 일깨운다.
좋은 시는 읽는 순간 감탄을 남기는 작품이 아니라, 읽고 난 뒤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작품이다.
박철언 시인의 「이런 나였으면」은 인생의 황혼에서 피어난 늦가을 국화 한 송이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건너 마침내 사람이라는 이름을 완성해 가는 한 그루 거목의 마지막 연륜이라 말하고 싶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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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한 그루 나무 앞에서
― 박철언 시인께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
먼저 한 사람이 보입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세월을 끝까지 살아 낸
한 그루 나무가 보입니다.
봄은 꽃으로 기억되지만
한 사람의 깊이는
겨울을 몇 번 견디어 왔는가로 드러납니다.
선생님께서는
법을 품고 사람을 만나셨고,
권한을 지녔으되 권위를 앞세우지 않으려 애쓰셨으며,
세월의 거센 물살을 건너오면서도
끝내 사람의 체온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그 긴 여정 끝에서
선생님은 높은 언덕을 말하지 않고
한 조각 그늘을 말씀하셨습니다.
큰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고
누군가의 햇살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고백 앞에서
시는 문장이 아니라
한 인간이 평생 써 내려온 삶의 연대기가 됩니다.
거목은
자기 키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멀리 날아온 새들이
잠시 쉬어 갈 가지 하나 내어 주고,
지친 나그네에게
말없이 그늘을 건네는 법을 압니다.
선생님은
바로 그런 나무를 닮아 계십니다.
세월은 많은 것을 가져갔을지라도
사람을 품는 마음만은
더 넓은 숲으로 키워 놓았습니다.
선생님의 시어에는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보다
사람을 기다리는 침묵이 더 깊고,
행간마다
용서가 강물처럼 흐르며,
쉼표마다
한 시대를 견뎌 낸 영혼의 숨결이 머뭅니다.
부디 오래도록
대한민국 문단의 푸른 숲으로 서 계십시오.
선생님의 시 한 편은
한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그늘이 되고,
선생님의 삶은
후배 문인들에게
어떤 시보다 먼저 읽어야 할 아름다운 교과서가 될 것입니다.
존경은
큰 목소리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한평생 사람을 향해 걸어온
한 걸음, 또 한 걸음이
마침내 한 편의 시가 될 때,
우리는 그 이름 앞에
조용히 고개를 숙입니다.
청민 선생님.
선생님께서 살아오신 생애는
이미 한 권의 시집이며,
앞으로도 오래도록
많은 이들의 가슴에
따뜻한 햇살 한 줄기로 머물 것입니다.
ㅡ청람 김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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