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침묵은 가장 오래 우는 언어이다 ― 주광일 시인의 시 「여름 엽서 28」 을 읽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침묵은 가장 오래 우는 언어이다 ― 주광일 시인의 시 「여름 엽서 28」 을 읽다 2026.07.14
침묵은 가장 오래 우는 언어이다 ― 주광일 시인의 시  「여름 엽서 28」 을 읽다

여름 엽서 28

시인 주광일

노년에 어두어진 귀

때문이었던가.

늘 아무 말도 없이

친구들을 즐겁게하던

그대의 부음을 듣고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서로 아무 말이 없어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던

서울대공원 둘레길.

친구여, 장마철 한 가운데

모처럼 빛나는 아침

말없이 떠난 그대를

나는 말없이 추모한다.

늘 착한 꿈꾸다 떠난

내 친구, 서성식.

2026.7.12

침묵은 가장 오래 우는 언어이다

― 주광일 시인의 시 「여름 엽서 28」 을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말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말보다 침묵을 더 믿게 된다. 삶의 무게를 오래 견딘 사람은 슬픔조차 함부로 소리 내지 않는다. 눈물이 가장 깊어질수록 강물은 잔잔해지는 법이다.

주광일 시인의 「여름 엽서 28」 은 바로 그 잔잔함 속에서 가장 큰 울음을 들려주는 작품이다.

이 시를 읽는 순간 먼저 다가오는 것은 친구의 죽음이 아니다. 말을 잃어버린 한 인간의 품격이다. 시인은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고 적는다. 그 한 문장은 애도의 표현이 아니라, 언어가 감당하지 못하는 슬픔 앞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예의가 된다. 침묵은 여기서 공백이 아니라 가장 무거운 문장이 된다.

주광일 시인은 한평생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법은 사실을 가르고, 판결은 옳고 그름을 구분한다. 그런 냉엄한 세계를 오래 살아온 사람일수록 언어의 무게를 안다. 쉽게 말하지 않는 습관은 직업이 남긴 흔적이기도 하고, 인격이 다져 낸 결이기도 하다. 그 절제는 이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인은 친구를 잃은 비통함을 한 번도 크게 외치지 않는다. 슬픔은 끝내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행간으로 스며든다.

“서울대공원 둘레길”이라는 공간은 이 작품에서 단순한 산책길이 아니다. 그 길은 두 사람의 우정이 오랜 세월 발걸음으로 새겨 놓은 기억의 연대기이다. “서로 아무 말이 없어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던”이라는 구절은 인간관계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보여 준다. 말이 사라질 때 비로소 마음이 대화를 시작한다. 주광일 시인은 우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한 줄의 풍경으로 우정의 깊이를 증명한다.

이 작품의 미학은 감정을 드러내는 데 있지 않다. 감정을 끝까지 붙들어 두는 데 있다. 장마철 한가운데 찾아온 “빛나는 아침”은 역설적이다. 자연은 눈부시게 빛나는데, 한 사람의 세계는 가장 깊은 그늘 속으로 들어간다. 그 명암의 대비는 독자의 마음속에 오래 머문다. 시인은 계절을 빌려 인간의 상실을 그렸고, 풍경을 빌려 생명의 덧없음을 노래했다.

마지막 연은 더욱 절제되어 있다.

“늘 착한 꿈꾸다 떠난

내 친구, 서성식.”

여기에는 과장도, 수식도 없다.

다만 한 사람의 생애를 기리는 가장 순결한 헌사가 있다. ‘착한 꿈’이라는 표현은 한 인간의 삶 전체를 품는 묘비명이 된다. 죽음을 말하면서도 죽음을 앞세우지 않고, 삶의 온기를 먼저 기억하는 시인의 시선은 깊은 인간애에서 비롯된다.

주광일 시인의 시는 화려한 은유를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 연마된 인품이 언어를 대신한다. 그의 시어는 칼끝처럼 예리하지 않다. 외려 오랜 세월 손에 쥐어 윤이 난 목재의 결처럼 따뜻하고 단단하다. 법조인의 엄정함과 시인의 연민이 한 사람 안에서 조화를 이루었기에 가능한 문체이다.

이 작품은 친구를 위한 추모시인 동시에 노년의 인간학이다. 인생의 황혼은 무엇을 더 소유하는 시간이 아니라 무엇을 더 깊이 기억하는 시간임을 보여 준다. 살아남은 사람의 슬픔은 눈물보다 기억에서 오래 머문다. 주광일 시인은 그 기억을 한 장의 여름 엽서에 담아 하늘로 띄운다.

좋은 추모시는 죽음을 슬퍼하는 작품이 아니다. 남겨진 삶을 더욱 아름답게 살아가게 만드는 작품이다. 시 「여름 엽서 28」 은 한 친구를 보내는 哀歌를 넘어, 한평생 정의를 지키며 살아온 두 법조인의 우정이 마침내 침묵이라는 가장 높은 언어로 완성된 인간 서정의 기록이다.

이 시를 熟讀한 독자는 친구의 이름 하나보다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말없이 함께 걸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한 인간이 평생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임을.□

침묵의 숲을 닮으신 시인

― 주광일 선생님께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

먼저 한 사람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한 그루 오래된 숲이 떠오릅니다.

숲은

제 키를 말하지 않고,

강은

제 깊이를 자랑하지 않듯,

선생님께서는

한평생 정의를 품고 살아오셨으나

정의를 입으로 말하기보다

삶으로 증명해 오셨습니다.

법은 사람을 심판할 수 있어도

시는 사람을 품어야 한다는 사실을,

선생님은

긴 세월 법정에서

공정으로 지키셨고,

문학에서는

연민으로 꽃피우셨습니다.

친구를 보내는 슬픔조차

소리 높여 울지 않으셨습니다.

침묵 하나를

한 편의 시로 피워 올리셨고,

한 줄의 그리움으로

한 생애의 우정을 완성하셨습니다.

참된 슬픔은

눈물의 양으로 헤아리지 않습니다.

말을 아끼는 사람의

가슴속에서 더 오래 타오르는

등불 하나로 남습니다.

선생님의 시어는

칼날처럼 빛나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비와 바람을 견딘 나이테처럼,

읽을수록 깊어지고

머물수록 따뜻해지는

사람의 결을 품고 있습니다.

정의가 엄격함이라면

문학은 용서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두 길을 함께 걸으시며,

법조인의 손에는 원칙을,

시인의 가슴에는 사랑을

끝내 놓지 않으셨습니다.

부디 오래도록

대한민국 문단의 맑은 숲으로 남아 주십시오.

선생님께서 남기시는 시 한 편은

한 사람의 슬픔을 위로하는 바람이 되고,

선생님께서 걸어오신 삶은

후배들에게

침묵으로 가르치는 한 권의 교과서가 될 것입니다.

큰 나무는

멀리서도 숲의 방향을 알려 줍니다.

선생님은

한평생 그런 나무로 살아오셨습니다.

오늘도 어느 여름 길목에서

바람은 잎새를 흔들고,

그 잎새 사이를 지나온

선생님의 시는

말보다 오래 남는 사람의 향기로

우리 곁을 조용히 밝혀 줄 것입니다.

ㅡ 청람 김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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