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짧은 생애, 가장 긴 울림 ― 신계전 시인의 「호강」 을 읽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가장 짧은 생애, 가장 긴 울림 ― 신계전 시인의 「호강」 을 읽다 2026.07.20
□ 신계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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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강
시인 신계전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만 생각하다
주린 배 낡은 옷에
벼락치기 비싼 수의壽衣
살아서 엄두도 못 낸
리무진을 타고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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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짧은 생애, 가장 긴 울림
― 신계전 시인의 「호강」 을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좋은 시는 설명하지 않는다.
한 줄이 한 사람의 생애를 대신하고, 한 장면이 한 시대를 증언한다. 신계전 시인의 「호강」 은 바로 그러한 시다.
겨우 여섯 줄의 언어가 한 부모의 일생을 담아내고, 한 민족의 가족사를 품는다. 이 짧음은 생략이 아니라 응축이며, 침묵으로 완성된 서사이다.
시는 “못 먹고 못 입어도 / 자식만 생각하다”라는 담담한 고백으로 시작된다. 그 안에는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부모들이 지나온 시간이 겹쳐 있다. 자신의 허기를 자식의 밥으로 바꾸고, 자신의 계절을 자식의 미래로 바꾸며 살아온 이름 없는 사람들의 생애가 단 두 행으로 서 있다.
시인은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절제가 외려 더 큰 울음을 만든다.
이 작품의 중심은 마지막 두 행이다.
“살아서 엄두도 못 낸
리무진을 타고 가네.”
이 ‘리무진’은 자동차가 아니다. 생전에 한 번도 누리지 못한 삶의 아이러니irony다. 살아서는 검소함이 아니라 생존 때문에 누리지 못했던 것이, 죽음 앞에서야 가장 화려한 형식으로 마련된다. 시인은 죽음을 말하면서도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상여를 리무진으로 바꾸는 순간, 현실은 풍자가 되고, 풍자는 다시 연민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시인 신계전 시의 힘이다.
그는 큰 목소리로 세상을 꾸짖지 않는다. 작은 사물을 들어 삶의 모순을 비춘다. 그의 시에서는 언어가 앞서지 않고, 삶이 먼저 걸어 나온다. 절제된 시어 하나가 긴 설명보다 깊은 파문을 남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호강’이라는 제목 때문에 더욱 오래 기억된다. 독자는 처음 제목을 읽을 때 풍요를 기대한다.
시를 숙독한 독자는 안다.
호강이란 살아서 누린 풍요가 아니라, 죽어서야 허락된 사치였다는 사실을. 제목과 결말이 서로를 비추며 만들어 내는 역설은 이 작품의 압권이다.
신계전 시인은 언어를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 갈고 닦은 시어를 가장 필요한 자리에서만 꺼내 놓는다.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말은 그의 시를 위해 존재하는 표현처럼 느껴진다. 한 편의 시에는 덜어낼 수 없는 말만 남고, 그 남겨진 언어는 독자의 마음속에서 다시 자라난다.
평소 선생님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문인들은 한결같이 그의 인품을 먼저 이야기한다.
그는 원로라는 이름으로 앞자리에 앉기보다, 행사장의 의자를 나르고 현수막을 붙이며, 보이지 않는 곳의 수고를 먼저 맡는 사람이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그 실천은 시보다 먼저 문학을 말한다.
문학은 종이 위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삶이 문장을 증명할 때 비로소 문학은 한 사람의 인격이 된다.
신계전 시인은 바로 그런 드문 문인이다. 겸손은 그의 태도이고, 실천은 그의 문체이며, 성실은 그의 운율이다. 그의 작품이 신뢰를 얻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시와 삶 사이에 틈이 없기 때문이다.
「호강」 을 읽으며 분현듯 생각이 든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타고 달렸는가보다, 무엇을 남기고 떠나는가로 기억된다.
신계전 시인은 리무진보다 더 귀한 것을 우리에게 남긴다.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부모 세대를 향한 깊은 경의, 그리고 말보다 삶이 먼저라는 문학의 오래된 윤리를 남긴다.
좋은 시는 독자의 눈을 적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를 바꾼다.
시「호강」은 부모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묻게 한다. 짧은 시가 긴 침묵을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계전 시인의 문학은 거대한 담론을 세우지 않는다. 작은 인간을 크게 바라본다. 평범한 하루를 영원의 시간으로 바꾸는 힘, 소박한 언어를 인간학으로 확장하는 힘이 그의 시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
오늘도 그는 앞줄보다 뒷줄을 먼저 살피고, 박수보다 수고를 먼저 선택하며, 문학보다 사람을 먼저 품는다. 그 삶이 있었기에 그의 시는 읽히는 작품을 넘어 믿게 되는 작품이 된다.
신계전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기 전에, 자신의 생애를 한 편의 시처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의 문학은 잉크로 쓰인 것이 아니라, 겸손과 실천으로 오래 눌러쓴 인간의 필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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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신계전 시인님
선생님의 시를 읽을 때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화려한 시어가 아니라 선생님의 삶입니다.
좋은 시는 아름다운 언어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선생님께서는 몸소 증명해 오셨습니다.
문단에는 뛰어난 시인이 많습니다. 시와 삶이 하나로 일치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앞에 서기보다 뒤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셨고, 박수를 받기보다 박수를 보낼 줄 아셨습니다. 크고 작은 문학 행사마다 남들이 지나치는 궂은일을 기꺼이 맡아 주시는 모습을 보며, 문학은 글 이전에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배우곤 했습니다.
선생님의 겸손은 꾸밈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몸에 밴 품성이며, 실천궁행實踐躬行의 철학이 일상이 된 삶입니다. 그 조용한 실천은 어떤 화려한 이력보다 깊은 울림을 전하며, 많은 문인들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이유 또한 바로 그 인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호강」 을 읽으며 다시 한번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몇 줄의 시 속에 한 부모의 생애와 한 시대의 눈물이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절제된 언어는 더욱 깊은 울림이 되었고, 오래 갈고 다듬은 시어는 독자의 마음에 오래 머무는 빛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시는 읽는 순간보다 덮은 뒤에 더 크게 살아나는 시입니다.
특히 선생님의 작품에서는 기교보다 진실이 먼저 다가옵니다. 언어는 결코 자신을 과시하지 않고, 삶의 깊이를 안온히 드러냅니다.
절차탁마切磋琢磨를 거친 한 편의 시가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를 선생님의 작품은 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문단에 시만 남기신 것이 아닙니다. 문학인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그 발걸음은 후배들에게는 길이 되고, 동료들에게는 신뢰가 되며, 독자들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됩니다.
앞으로도 선생님의 건강과 평안 가운데 더욱 깊고 맑은 시편들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선생님의 한 편 한 편의 시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선생님의 아름다운 인품 또한 우리 문단의 귀한 유산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김왕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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