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냄의 미학, 품격이라는 이름의 봄 ― 이영하 시인의 「조팝나무의 입대식」 을 읽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덜어냄의 미학, 품격이라는 이름의 봄 ― 이영하 시인의 「조팝나무의 입대식」 을 읽다 202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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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팝나무의 입대식
시인 이영하
새벽 산책길.
조팝나무들이 하룻밤 사이
모두 같은 머리가 되어 서 있었다.
가지 끝까지 다듬은 모습이
막 입대한 훈련병들처럼
말없이 줄을 맞추고 있었다.
문득 오래전
교육사령부 연병장이 떠올랐다.
학생이던 청년들이 머리카락을 내려놓고
조국이라는 이름 앞에
새로운 첫걸음을 내딛던 날.
누구는 긴장을 삼켰고,
누구는 몰래 눈물을 감추었지만
그들의 눈빛만은 처음보다 더 곧게 서 있었다.
조팝나무도 그랬다.
꽃을 피우기 전에
먼저 불필요한 가지를 내려놓고,
바람보다 먼저
자기를 단정히 세운다.
아름다움은 많이 가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덜어 낼 줄 아는 데 있다는 것을.
머리를 깎던 그날의 훈련병도,
가지를 비우는 조팝나무도
봄보다 먼저 성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단정히 서 있는 조팝나무 앞에서
한 사람의 품격은 무엇을 더했는가보다
무엇을 내려놓았는가로 완성된다는 것을
다시 배운다.
이영하 시인
UNNGO문학상수상, 공군본부 참모차장(중장),주레바논특명전권대사, 공군발전협회 항공우주력연구원 원장, 중앙공무 원교육원 객원교수, 사회공원 다사랑월드 이사장, 재향군인회 공군 부회장, 이치저널포럼회장
□ 이영하 시인 <자작시 해설 >
아파트 산책길 조팝나무가 가지치기를 마친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군 시절이 떠올랐다. 현역 시절 공군교육사령관으로 근무하며 수많은 장병들의 입대식을 지켜보았다. 긴 머리를 자르고 같은 군복을 입은 젊은이들은 어제의 학생이 아니라 오늘의 군인이 되어 있었다. 가지를 덜어 낸 조팝나무도 봄을 위해 자신을 단정히 다듬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나무도 성장은 무엇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는 일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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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어냄의 미학, 품격이라는 이름의 봄
― 이영하 시인의 「조팝나무의 입대식」 을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좋은 시는 낯익은 풍경 하나를 통하여 오래 잊고 있던 삶의 본질을 다시 톺아 보게 한다.
이영하 시인의 「조팝나무의 입대식」은 바로 그러한 힘을 지닌 작품이다.
산책길에서 마주한 가지치기한 조팝나무를 군 입대를 앞둔 훈련병의 모습과 연결한 발상은 자연스럽다.
이 시가 독자의 마음을 오래 붙드는 이유는 단순한 연상에 있지 않다. 자연과 인간의 삶을 하나의 정신으로 연결하며, ‘성장은 무엇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는 일’이라는 깊은 성찰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시의 첫머리는 매우 담백하다.
“조팝나무들이 하룻밤 사이 모두 같은 머리가 되어 서 있었다.”
이 한 문장은 풍경의 묘사를 넘어 하나의 상징을 만들어 낸다. 독자는 곧바로 삭발한 훈련병들의 연병장을 떠올리게 된다. 나무의 가지치기는 군인의 머리 손질로, 자연의 질서는 인간의 질서로 확장된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세계를 하나의 이미지로 포개는 능력은 이 작품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이어지는 시선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공군교육사령관으로 수많은 입대식을 지켜본 시인의 삶이 한 편의 시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여기에는 과장도 없고 감상도 없다.
“누구는 긴장을 삼켰고, 누구는 몰래 눈물을 감추었지만”
이 구절은 군 입대라는 특수한 경험을 모든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의 성장 의식으로 승화시킨다. 개인의 기억이 보편의 감동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이 작품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조팝나무를 바라보는 시인의 철학이다. 나무는 꽃을 피우기 전에 먼저 가지를 덜어 낸다. 생명을 위한 준비는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라는 사실을 자연은 아무 말 없이 보여 준다. 시인은 그 침묵을 인간의 삶으로 번역한다. 삶의 품격 역시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욕심과 자만, 집착을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조팝나무의 입대식」 은 단순한 자연시도, 군 생활을 회상하는 추억시도 아니다. 자연을 통하여 인간을 성찰하고, 군인의 삶을 통하여 존재의 윤리를 묻는 철학적 서정시이다. 조팝나무는 더 이상 식물이 아니며, 훈련병은 더 이상 군인이 아니다. 둘은 모두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는 존재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영하 시인의 문장은 절제되어 있다. 감정을 과도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며,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완성할 여백을 남겨 둔다. 이러한 절제는 작품의 품격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마지막 연은 시 전체를 하나의 사상으로 응축한다.
“한 사람의 품격은 무엇을 더했는가보다 무엇을 내려놓았는가로 완성된다.”
이 문장은 작품의 결론인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우리는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가지며,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일을 성공이라 여겨 왔다. 그러나 시인은 조팝나무 앞에서 전혀 다른 삶의 공식을 발견한다. 비움이 채움보다 어렵고, 절제가 성취보다 깊으며, 내려놓음이야말로 가장 높은 성장이라는 사실이다.
이 작품은 조팝나무라는 작은 자연의 풍경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길어 낸…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운명을 하나의 정신으로 엮어 낸 서정의 성과라 할 수 있다. 화려한 수사에 기대지 않고도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내는 힘은 오랜 삶의 체험과 성찰에서 비롯된다.
시 「조팝나무의 입대식」 은 봄을 노래하는 작품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기 위해 무엇을 비워야 하는지를 묻는 시이며, 성장의 본질을 다시 정의하는 시이다. 꽃은 가지를 덜어 낸 뒤에 피고, 사람은 욕심을 덜어 낸 뒤에 비로소 품격을 얻는다. 이영하 시인은 조팝나무 한 그루를 통해 그 오래된 진실을 담담하면서도 깊은 울림으로 들려준다.
이 시를 숙독하고 나면 독자는 조팝나무를 이전과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가지를 비운 나무는 더 이상 전정된 식물이 아니라, 자신의 봄을 준비하는 한 사람의 뒷모습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문학적 성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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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이영하 시인께 드립니다
시인께서는 자연을 바라보되 풍경만 보지 않으십니다. 한 그루 나무를 바라보면서도 그 안에서 사람의 삶을 읽어 내시고, 한 사람의 삶을 통하여 다시 자연의 이치를 비추어 주십니다.
「조팝나무의 입대식」 을 읽으며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조팝나무의 가지치기를 훈련병의 삭발과 연결한 착상도 참신하지만, 그 이미지를 ‘내려놓음’이라는 삶의 철학으로 승화시킨 통찰은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인께서는 오랜 군인의 삶을 회상하신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성숙해지는 과정을 노래하셨습니다. 조팝나무는 꽃을 피우기 전에 가지를 덜어 내고, 사람은 더 큰 삶을 위해 욕심과 자만을 덜어 내야 한다는 메시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성찰을 안겨 줍니다.
특히
작품 전반에 흐르는 절제된 언어는 더욱 빛납니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오래 남는 여운을 만들고, 교훈을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독자 스스로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은 오랜 사유와 품격에서 비롯된 문학의 결이라 생각합니다.
참된 시는 자연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통하여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시인께서는 조팝나무 한 그루를 통하여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품격의 봄’을 피워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삶의 깊이와 따뜻한 인간애가 깃든 시편으로 많은 독자들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김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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