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감추어진 못 하나가 한 생애를 증언한다 ― 이희국 시인의 「당신이 다녀가고」를 읽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감추어진 못 하나가 한 생애를 증언한다 ― 이희국 시인의 「당신이 다녀가고」를 읽다 2026.07.21
감추어진 못 하나가 한 생애를 증언한다 ― 이희국 시인의 「당신이 다녀가고」를 읽다

당신이 다녀가고

시인 이희국

벌겋게 녹슨 못을 빼려다

못대가리가 부서져 뺄 수가 없자

반쯤 튀어나온 못을 두드려

아예 보이지 않게 박는다

그 위에 감쪽같이 스티커를 붙인다

나만 안다.

『간이역에서』 (글나무, 2024)

□ 이희국 시인

이희국 시인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 도시의 빠른 시간 속에서 성장했으나, 그의 시선은 늘 사람의 내면과 생명의 미세한 떨림을 향해 있었다. 그는 《시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고, 이후 오랜 세월 시와 삶을 분리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일구어 왔다.

그의 삶에는 두 개의 길이 나란히 놓여 있다. 하나는 약사로서 사람의 몸을 돌보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시인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길이다. 그는 약사로 일하며 수많은 환자의 아픔과 마주해 왔다. 병은 단지 육체의 이상이 아니며, 한 사람의 시간과 가족과 두려움까지 함께 흔드는 사건이라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보아 왔다.

약국은 그에게 단순히 약을 조제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회복과 체념이 날마다 스쳐 가는 인간의 작은 정거장이었다. 누군가는 약봉지를 받아 들고 안도의 숨을 쉬었고, 누군가는 병명을 가슴에 품은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이희국 시인은 그 수많은 표정 속에서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존엄을 바라보았다.

그러한 체험은 그의 시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작품에는 병과 치유, 몸과 시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향한 깊은 사유가 흐른다. 병든 몸은 단순한 고통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마주하는 자리이며, 치유는 육체가 회복되는 일에 머물지 않고 상처받은 마음이 다시 삶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확장된다.

그는 화려한 언어로 슬픔을 장식하지 않는다. 담백한 문장과 절제된 서정으로 인간의 아픔을 바라본다. 크게 소리 내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기며, 일상의 작은 사물 하나를 통해 인간 내면의 고독과 생의 비의를 드러낸다. 그의 시에서는 약병 하나, 낡은 의자 하나, 간이역의 풍경 하나도 인간의 삶을 증언하는 존재가 된다.

이희국 시인은 약사에 머물지 않고 가톨릭대학교 약학대학 외래교수로도 재직하며 후학을 가르쳐 왔다. 강단에서 그가 전하는 것은 전문 지식만이 아니다. 약은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며, 생명은 숫자와 처방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윤리적 성찰도 함께 가르쳐 왔다. 사람의 몸을 다루는 일에는 반드시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따라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교육과 문학을 하나로 잇는다.

문단에서도 그는 오랫동안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왔다.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한국문인협회 재정협력위원, 시문학문인회 부회장으로 활동했으며,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월간 《문예사조》 회장으로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고 있다.

그에게 문학 활동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시인과 독자를 연결하고 문단의 미래를 준비하는 책임의 자리였다. 한 사람의 작품이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돕고, 문학 공동체가 서로를 존중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일 역시 그의 문학적 실천이었다.

그의 시집으로는 『자작나무 풍경』, 『다리』, 『세월 속의 무지개』, 『파랑새는 떠났다』, 『간이역에서』 등이 있다. 이 제목들만 살펴보아도 그의 시가 어떤 세계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자작나무와 다리, 무지개와 파랑새, 간이역은 모두 머무름과 떠남, 상처와 회복, 현실과 꿈 사이에 놓인 상징들이다.

특히 2024년에 출간한 영한 시집 『간이역에서』는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간이역은 거대한 도시의 중심이 아니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사람들의 숨결이 남아 있는 곳이며,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에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정거장이다.

이희국 시인은 바로 그곳에서 인간의 삶을 바라본다. 누구나 잠시 머물다 떠나는 존재이며, 만남과 이별 사이에서 저마다의 상처를 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간결한 언어로 보여 준다. 그의 시가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는 까닭은, 거대한 담론보다 한 사람의 흔들리는 마음을 먼저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적 성취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국비평문학협회 작가상과 푸른시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문학 아시아 2025’ 경연 대회에서는 1등 상을 받았다. 이는 그의 시가 한국어의 울타리를 넘어 세계 독자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현재 그의 시 50여 편은 15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독자들이 그의 시를 읽고 마음의 울림을 느끼는 것은, 그의 작품이 인간의 보편적인 고독과 상처, 회복의 열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달라도 아픔의 표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마음, 병든 몸을 견디는 시간, 삶의 끝을 바라보는 두려움, 다시 일어서려는 희망은 어느 나라의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이희국 시인의 시는 바로 그 공통의 인간성을 향해 다가간다.

대만의 노벨문학상 후보였던 고 리쿠이셴 시인이 번역한 시집의 출간도 예정되어 있다. 한 시인의 언어가 또 다른 시인의 언어를 만나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일이다. 이는 단순한 번역을 넘어 두 문학 세계의 만남이며, 한국시가 세계문학과 깊이 호흡하는 뜻깊은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희국 시인의 삶을 바라보면 약사와 교수, 시인과 문학인의 길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약사는 몸을 살피고, 교수는 지성과 양심을 일깨우며, 시인은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 모든 길의 중심에는 인간을 향한 따뜻한 연민과 생명에 대한 경외가 놓여 있다.

그는 약으로 사람의 육신을 돌보고, 지식으로 젊은이의 미래를 밝히며, 시로 인간의 마음을 치유해 왔다. 병과 죽음을 오래 바라보았기에 생명의 소중함을 더 깊이 알았고, 고통받는 사람 곁에 머물렀기에 위로가 무엇인지 자신의 삶으로 배웠다.

그의 시는 아픔을 과장하지 않는다. 상처를 구경거리로 만들지도 않는다. 아픈 존재 곁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 가만히 손을 내민다. 회복은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의 아픔을 알아주는 순간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의 시는 보여 준다.

이희국 시인의 문학은 삶에서 멀리 떨어진 언어의 성채가 아니다. 사람의 체온과 눈물, 병실의 침묵과 약국의 불빛, 간이역을 스쳐 가는 외로운 발걸음에서 태어난 문학이다. 그 시는 한 인간의 상처를 통해 모든 인간의 마음에 닿고, 절망의 끝에서도 회복과 희망의 가능성을 놓지 않는다.

그의 시가 더 넓은 언어를 건너 세계 여러 나라의 독자들에게 읽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국경보다 먼저 존재한 인간의 슬픔이 있고, 언어보다 오래된 생명의 갈망이 있으며, 어떤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을 따뜻한 위로가 있기 때문이다.

이희국 시인은 오늘도 생명을 돌보는 손으로 사람을 만나고, 사유의 언어로 젊은 세대를 가르치며, 절제된 시어로 세상의 상처를 감싸 안고 있다.

그의 시는 한 편의 처방전과도 같다.

병을 단번에 없애 주지는 못하더라도

아픈 사람이 다시 하루를 견딜 수 있도록 돕고,

외로운 마음이 자신만 홀로 남겨진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하며,

삶의 어두운 간이역에서도

다시 다음 열차를 기다리게 하는 따뜻한 처방전이다.

□ 이희국 시인

감추어진 못 하나가 한 생애를 증언한다

― 이희국 시인의 「당신이 다녀가고」 를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희국 시인의 「당신이 다녀가고」 는 불과 몇 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작품이다. 시의 외형만 바라보면, 벽이나 목재에 박힌 녹슨 못 하나를 처리하는 일상의 장면처럼 보인다. 못을 빼려 하고, 못대가리가 부서지고, 끝내 뽑지 못한 못을 더 깊이 박은 뒤 스티커로 가린다. 일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다만 이 시에서 마무리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벽에서는 못이 사라졌으나 화자의 내면에서는 더욱 선명해졌다. 사람들의 눈에는 감쪽같이 감추어졌으나, 화자의 기억 속에서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았다. 시의 마지막 문장인 “나만 안다”는 단순한 독백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에게 설명할 수 없는 상처를 홀로 품고 살아가는 한 존재의 비밀이며, 세월조차 철거하지 못한 기억의 증언이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못’이 있다. 못은 본래 무엇인가를 이어 주기 위해 박히는 사물이다. 떨어진 두 물체를 붙들고, 흔들리는 것을 고정하며, 무언가를 걸어 두기 위해 벽 속으로 자신의 몸을 밀어 넣는다. 이 시에서 못은 관계의 흔적이며, 사랑의 자리이고, 떠난 사람이 남겨 놓은 통증의 뿌리다. 한때는 서로를 붙들어 주었던 것이 시간이 흐르며 녹슬고, 이제는 뽑으려 해도 온전히 빠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벌겋게 녹슨 못”이라는 표현은 매우 강렬하다. 벌건 녹은 단순한 금속의 부식이 아니다. 오래 묵은 피처럼 보이며, 식지 않은 통증처럼 느껴진다. 사랑이 끝났어도 상처는 산화되지 않는다. 세월은 그것을 없애지 못하고 색깔만 바꾼다. 사랑했던 기억은 검게 죽지 않고 벌겋게 녹슨다.

이희국 시인은 이 짧은 이미지 하나로 시간, 이별, 상처, 기억의 복합적인 층위를 압축한다.

화자는 못을 빼려 한다. 잊으려 했다는 뜻이며, 관계가 남긴 자국을 제거하려 했다는 의미다. 허나 못대가리는 부서지고 만다. 상처를 붙잡고 있던 마지막 손잡이마저 사라진 것이다. 기억은 때로 뽑아낼 수 있는 형태로 남지 않는다. 너무 오래 박혀 있으면 삶의 일부가 된다. 무엇이 상처이고 무엇이 나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끝내 화자는 반쯤 튀어나온 못을 다시 두드린다. 밖으로 드러난 아픔을 안으로 밀어 넣는다. 치유한 것이 아니라 은폐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이희국 시인의 사유는 깊은 심리적 진실에 닿는다. 인간은 모든 상처를 극복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어떤 상처는 해결되지 않은 채 봉인된다. 사람은 아픔을 없애는 대신 보이지 않게 다루는 법을 익힌다. 웃음이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일상이라는 벽지를 덧대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상처 위를 지나간다. 타인의 눈에는 멀쩡한 벽이다. 그 안에 녹슨 못 하나가 박혀 있다는 사실은 오직 자신만이 안다.

“그 위에 감쪽같이 스티커를 붙인다”는 구절은 현대인의 삶을 정확하게 비춘다. 우리는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장식하는 데 익숙하다. 슬픔 위에 웃음을 붙이고, 외로움 위에 성공을 붙이며, 결핍 위에 자존심을 붙인다. 스티커는 상처를 치료하지 않는다. 다만 상처가 보이지 않도록 표면을 정돈한다. 삶은 때로 치유가 아니라 위장으로 지속된다. 시인은 이 냉엄한 진실을 과장하지 않는다. 짧고 무심한 언어로 제시할 뿐이다. 그 무심함이 독자의 심장을 더 깊이 찌른다.

이 시의 제목 「당신이 다녀가고」 도 의미심장하다. ‘떠나고’가 아니라 ‘다녀가고’이다. 다녀갔다는 말에는 잠시 머물렀다가 돌아간 시간의 뉘앙스가 있다. 당신에게는 잠깐의 방문이었을지 모르나, 화자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못 하나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짧은 인연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 생애의 구조를 바꾸는 사건이 된다. 사랑의 비극은 체류 기간의 차이에 있지 않다. 남겨진 흔적의 깊이에 있다.

작품의 절정은 마지막의 “나만 안다”이다. 이 짧은 문장은 시 전체를 갑자기 깊은 심연으로 끌고 간다. 아무도 모르는 상처,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기억, 겉으로는 완벽히 감추어진 내면의 균열이 이 한 문장 속에 응축되어 있다. 이는 고독의 언어이며, 침묵의 비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벽에 붙은 스티커만 볼 뿐, 그 아래 박힌 못의 깊이는 보지 못한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쯤 자신만 아는 못을 품고 살아간다.

이희국 시인의 시가 깊은 까닭은 거대한 철학적 관념을 앞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사소한 사물 하나를 존재의 중심에 놓는다. 녹슨 못, 부서진 못대가리, 망치질, 스티커와 같은 일상의 물성이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정신의 기호로 변한다. 이처럼 작은 사물에서 인간 존재의 깊은 비밀을 포착하는 능력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사유와 절제된 언어 감각, 삶의 상처를 오래 응시한 시인만이 도달할 수 있는 시적 경지다.

이희국 시인은 한국 문단의 중추적 위치에서 꾸준히 자신의 시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의 문학은 국내의 평가에 머물지 않는다. 해외 독자와 문학 관계자들이 그의 시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고독과 기억의 구조를 발견하고, 세계의 유수 시인들과 함께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의 시에는 번역을 넘어서는 인간적 진실이 있다. 녹슨 못 하나, 감추어진 스티커 하나만으로도 언어와 국경을 초월하는 공감을 일으킨다.

세계문학은 거창한 세계를 말하는 문학이 아니다. 한 인간의 가장 내밀한 상처를 통해 모든 인간의 마음에 닿는 문학이다.

이희국 시인의 「당신이 다녀가고」는 바로 그 보편성의 자리에 서 있다. 사랑을 겪은 사람, 이별을 견딘 사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감춘 사람이라면 어느 나라의 독자이든 이 시 앞에서 자신의 벽 속에 박힌 못 하나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좋은 시는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은 부분을 독자의 생애가 채우도록 자리를 내어 준다. 이 시에는 당신이 누구인지, 왜 떠났는지, 화자가 얼마나 아팠는지 설명되어 있지 않다. 설명이 없기에 더 많은 삶이 들어올 수 있다. 각자의 상처와 기억이 이 짧은 시 속에 머문다. 시의 행간은 한 사람의 방이 아니라 수많은 독자의 내면을 수용하는 거대한 침묵의 집이 된다.

이희국 시인의 「당신이 다녀가고」 는 상처를 뽑아낸 시가 아니다. 뽑히지 않는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자세를 보여 주는 시다. 벽은 다시 단정해졌고, 스티커는 흔적을 가렸다. 못은 여전히 그 안에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잊었다고 말한다고 잊힌 것도 아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못이 박혀 있다. 세월은 그 위에 수많은 스티커를 붙여 준다. 어느 날 한 편의 시가 그 벽 앞에 선다. 스티커를 떼지 않은 채, 그 아래 무엇이 있는지 가만히 짚어 준다.

이희국 시인의 시가 바로 그러하다.

그는 상처를 들추지 않는다. 다만 상처가 거기 있음을 안다. 독자에게 말하지 않아도, 독자 역시 안다.

“나만 안다”는 마지막 문장은 마침내 “우리 모두 안다”는 세계의 언어가 된다.□

생명을 돌보고 마음을 치유하는 시인

― 이희국 시인께 드리는 글

이희국 시인님,

선생님의 시를 읽을 때마다

말이 적을수록 세계는 더 깊어질 수 있다는

문학의 오랜 진실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시 「당신이 다녀가고」 에는

벌겋게 녹슨 못 하나와

그 위를 감쪽같이 가린 스티커 한 장이 등장할 뿐입니다.

그 작은 사물 속에는 떠나간 사람의 흔적과

뽑아내지 못한 기억,

타인에게는 차마 보이지 못하고

혼자 견디어 온 한 생애의 상처가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누군가는 못을 낡은 사물로 바라보지만

선생님은 그 속에서 인간의 기억을 발견합니다.

누군가는 스티커를 가벼운 장식으로 여기지만

선생님은 그 아래 감추어진 마음의 상처를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을 옮겨 적는 데 머물지 않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균열까지 살피는 눈,

떠난 사람보다 그가 남기고 간 흔적을 오래 바라보는 눈,

한 줄의 침묵 속에서 한 생애의 사연을 읽어 내는 눈,

그것이 선생님께서 지닌 시인의 눈일 것입니다.

선생님의 시는 크게 소리치지 않습니다.

슬픔의 내력을 장황하게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독자 앞에 녹슨 못 하나를 내어 놓습니다.

그 못 앞에 선 독자는

자신이 감추어 두었던 기억 하나를 떠올립니다.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으나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박혀 있는 사람,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못한 채

일상이라는 스티커로 덮어 둔 상처와 마주하게 됩니다.

선생님의 문학이 각별한 까닭은

이러한 시적 통찰이 관념이나 상상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약사로서 사람의 육신을 돌보아 오셨고,

대학 강단에서는 지식과 삶의 지혜를 나누며

수많은 젊은이의 앞길을 밝혀 오셨습니다.

약이 육신의 고통을 덜어 준다면

시는 사람의 마음에 남은 통증을 어루만집니다.

선생님은 약으로 생명을 보살피고

시로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두 개의 귀한 길을 한평생 함께 걸어오셨습니다.

약국의 조제대 앞에서는

한 사람의 아픈 몸을 세심하게 살피시고,

대학의 강단에서는

젊은 영혼이 자신의 삶을 바르게 세울 수 있도록

학문과 경험을 나누셨습니다.

시를 쓰는 책상 앞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미처 표현하지 못한 슬픔과 고독에

언어의 손을 내밀어 오셨습니다.

이 세 길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사람을 살피는 마음이 약사의 손이 되었고,

사람을 일으키는 뜻이 스승의 말이 되었으며,

사람의 깊은 상처를 이해하는 연민이

마침내 한 편의 시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시에 인간의 체온이 살아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의 아픔을 만나고,

그들의 말하지 못한 사정까지 마음으로 헤아려 온 시간이

선생님의 시어 깊숙한 곳에 스며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귀한 것은

선생님의 사랑이 말과 작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과

소외된 계층의 자녀들을 위하여

사람들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오랫동안 선행을 실천해 오셨습니다.

선행은 드러나는 순간

때로 자신의 얼굴을 갖게 됩니다.

선생님의 선행에는 이름표가 없습니다.

박수받을 자리를 찾지 않고,

칭송받을 문장을 앞세우지 않으며,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삶에

따뜻한 디딤돌 하나를 놓아 주셨습니다.

참된 선행은 자신을 알리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어둠을 조금 덜어 주는 일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그의 무릎 아래 작은 힘이 되어 주는 일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바로 그 일을

세상에 크게 드러내지 않은 채 묵묵히 이어 오셨습니다.

그러한 삶을 알고 나면

「당신이 다녀가고」 의 마지막 문장

“나만 안다”는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 문장은 감추어진 상처에 대한 고백인 동시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행하는 사랑의 방식과도 닮았습니다.

상처도 나만 알고,

누군가를 도운 일도 나만 아는 삶.

세상에 보이기 위한 표식보다

한 사람의 삶이 실제로 나아지는 일을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그 짧은 문장 속에서 은은하게 빛납니다.

선생님의 시가 한국을 넘어

해외의 문학인과 독자들에게까지 깊은 평가를 받는 까닭도

이러한 삶과 문학의 일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상처받은 마음의 표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을 잃은 자리,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견디는 아이의 눈빛,

사람들 앞에서는 웃으면서도

혼자만의 아픔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은

어느 나라에서나 같은 울림을 지닙니다.

선생님의 시에는 번역 이전의 인간이 있고,

국경 이전의 슬픔이 있으며,

문화와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적 연민이 있습니다.

세계의 유수한 시인들과 나란히 작품이 소개되고

해외에서 선생님의 시세계가 높이 평가되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세계문학은 거창한 세계를 말하는 문학이 아니라

한 인간의 가장 내밀한 상처를 통해

모든 인간의 마음에 닿는 문학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시는 짧지만 결코 작지 않습니다.

몇 줄의 언어 안에 한 사람의 과거와

인간의 고독, 사랑의 상흔,

그 상처를 감추며 살아가는 삶의 비의를 담아냅니다.

많은 말을 쓰는 사람은 많으나

한 줄을 오래 남기는 시인은 드뭅니다.

화려한 관념을 펼치는 사람은 많으나

녹슨 못 하나로 인간의 심연을 보여 주는 시인은 흔치 않습니다.

선생님은 바로 그 귀한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약사로서 아픈 육신을 보살피고,

교육자로서 젊은 영혼의 내일을 밝혀 주며,

시인으로서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상처를 어루만지고,

한 인간으로서 소외된 아이들의 삶에

말 없는 사랑을 심어 오셨습니다.

선생님의 시와 삶은 서로 다른 두 권의 책이 아닙니다.

삶이 시를 증명하고,

시가 삶의 향기를 드러내는

한 권의 깊고 아름다운 인간학입니다.

이희국 시인님,

세상이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만을 높이 평가할 때

보이지 않는 자리의 사랑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선생님의 삶이 오래도록 증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화려한 말들이 사람의 귀를 차지하는 시대에

더 적은 말로 더 깊은 진실을 보여 주시고,

사람들이 표면만을 바라보는 세상에서

그 아래 감추어진 상처와 눈물을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의 약이 더 많은 생명을 편안하게 하고,

강단의 말씀이 젊은이들의 삶에 올곧은 이정표가 되며,

선생님의 시가 외롭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 곁에

오래 머물기를 소망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하신 사랑도

도움을 받은 아이들의 내일 속에서

수많은 꽃으로 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사람의 몸을 돌보는 약사,

사람의 미래를 밝히는 교육자,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시인,

그 모든 이름보다 먼저

한 인간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품어 온

이희국 선생님의 고귀한 삶과 문학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청람 김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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