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빛으로 서 있는 충성 ― 이영하 시인의 「신호등은 잠들지 않는다」 읽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빛으로 서 있는 충성 ― 이영하 시인의 「신호등은 잠들지 않는다」 읽다 2026.07.24
빛으로 서 있는 충성 ― 이영하 시인의 「신호등은 잠들지 않는다」 읽다

신호등은 잠들지 않는다

시인 이영하

새벽은 아직

사람들의 발걸음을 깨우기 전인데

교차로에는 먼저 눈을 뜬

신호등 하나 서 있었다.

붉은빛으로 멈춤을 지키고,

노란빛으로 잠시 더 생각하라 말하며,

푸른빛으로 세상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누가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가.

누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도

자기 자리를 비운 적이 없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사관생도 시절 가슴에 새겼던

충성이라는 두 글자가

조용히 되살아났다.

충성이란

큰 목소리로 맹세하는 일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끝까지 자기 임무를 지켜 내는 일.

오늘도 신호등은 말없이 빛을 바꾸며

수많은 생명의 길을 안전하게 이어 준다.

세상이 오래 평화로운 것은

이름 없이 제 자리를 지키는

수많은 신호등 같은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빛으로 서 있는 충성

― 이영하 시인의 「신호등은 잠들지 않는다」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영하 시인의 「신호등은 잠들지 않는다」 는 도시의 가장 익숙한 사물을 통해 인간의 가장 오래된 덕목 하나를 다시 불러낸다. 그 덕목은 충성이다. 이 작품에서 충성은 구호가 아니며, 제복에 달린 휘장도 아니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새벽의 교차로에서 자기 임무를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빛의 자세다.

시인은 세상이 아직 잠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시간을 선택한다. “새벽은 아직 / 사람들의 발걸음을 깨우기 전”이다. 인간의 움직임이 시작되기 전, 도시에는 먼저 깨어 있는 존재가 있다. 신호등이다. 이 첫 장면은 작품 전체의 정서를 결정한다. 사람들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잠에서 일어나지만, 신호등은 잠든 적이 없다. 그것은 깨어난 존재가 아니라, 깨어 있음 자체로 서 있는 존재다.

신호등은 도시의 눈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타인의 생명을 대신 살피는 공공의 눈이다. 자신은 어디에도 가지 않으면서 수많은 사람의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도시 전체의 흐름을 통제한다. 이 역설이 작품의 중심 미학을 이룬다. 가만히 서 있는 것이 가장 큰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침묵하는 것이 수많은 생명의 방향을 결정한다.

붉은빛과 노란빛, 푸른빛은 단순한 교통 신호가 아니다. 시인의 언어 안에서 그것들은 삶의 세 가지 윤리로 변한다.

붉은빛은 멈춤의 윤리다. 인간은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을 발전이라 생각하지만, 때로 한 번의 멈춤이 수많은 생명을 지킨다. 욕망 앞에서 멈추고, 분노 앞에서 멈추며, 성급한 판단 앞에서 발을 거두는 일은 퇴보가 아니다. 그것은 파국을 막는 가장 성숙한 속도다.

노란빛은 사유의 윤리다. 당장 달려가지 말고 한 번 더 생각하라는 경고다. 삶의 많은 실패는 무지보다 성급함에서 태어난다. 노란빛은 속도를 조금 늦추어 인간의 판단이 마음을 따라잡도록 기다린다. 그것은 결정을 유예하는 빛이며, 경솔함과 신중함 사이에 놓인 짧은 사색의 다리다.

푸른빛은 허락의 윤리다. 멈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앞으로 나아갈 자격이 주어진다. 푸른빛은 무조건적인 질주를 허용하지 않는다. 질서와 기다림을 통과한 뒤에야 길을 연다. 이처럼 세 빛은 서로 다른 색이면서 하나의 책임을 완성한다. 멈춤과 사유와 전진이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 비로소 평화로운 이동이 가능해진다.

시인은 신호등의 헌신을 말하면서 가장 먼저 ‘무명성’을 주목한다.

“누가 /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가. / 누가 /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이 물음은 신호등을 향하지만 실상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닿는다. 새벽을 여는 환경미화원, 깊은 밤 병상을 지키는 간호사, 국경과 영공과 바다를 지키는 군인, 시민이 잠든 시간에 도시의 안전을 살피는 이들. 세상은 이들의 수고를 자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평온한 하루가 시작되면 그 평온을 가능하게 한 이들의 밤은 잊힌다.

신호등은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박수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누구의 시선도 없는 순간에도 같은 정확성으로 빛을 바꾼다. 이 지점에서 신호등은 사물이기를 멈추고 하나의 도덕적 인격이 된다. 그것은 직책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책임은 누가 보고 있을 때 수행하는 연기가 아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에도 무너지지 않는 내면의 질서다.

작품의 중간에서 “사관생도 시절 가슴에 새겼던 / 충성이라는 두 글자”가 등장한다. 이 대목에서 도시의 풍경은 시인의 생애와 연결된다. 공군사관학교에서 배운 충성은 새벽 교차로의 신호등을 통해 다시 현재화된다. 과거의 군인 정신이 현재의 생활 사물 안에서 되살아나는 것이다.

이영하 시인에게 충성은 특정한 조직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 아니다. 맡은 자리에서 자신의 책임을 끝까지 수행하는 존재의 성실성이다. 이 해석은 작품을 군사적 덕목에 가두지 않고 보편적 인간 윤리로 확장한다. 부모의 충성은 가족을 지키는 일이며, 교사의 충성은 학생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고, 공직자의 충성은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향해야 한다. 시인의 충성은 언어를 통해 시대의 양심을 지키는 일이다.

“큰 목소리로 맹세하는 일이 아니라”라는 구절은 이 시의 중요한 반전이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선언이 있다. 거대한 구호와 화려한 맹세가 넘친다. 실제 삶은 말보다 작은 곳에서 시험된다. 책임은 연단 위에서 증명되지 않는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 자기 자리에서 단 한 번도 불을 끄지 않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이 작품의 언어는 화려한 수사를 절제한다. 신호등처럼 정확하고 단정하다. 문장은 짧고 색채는 분명하며, 의미는 곧게 뻗는다. 이러한 절제는 시인의 생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공군 장성, 외교관, 연구자와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시인에게 언어는 감정의 장식이 아니라 책임의 전달 수단이다. 그의 시는 높이 비상하되 항로를 잃지 않는다. 감동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과장이라는 난기류에 휘말리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연은 작품의 시야를 한 개의 교차로에서 사회 전체로 넓힌다.

“세상이 오래 평화로운 것은 / 이름 없이 제 자리를 지키는 / 수많은 신호등 같은 사람들이 /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결구는 신호등을 하나의 사회적 원형으로 확장한다. 문명은 눈에 띄는 영웅 몇 사람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수많은 무명의 책임이 서로 맞물릴 때 사회는 무너지지 않는다. 교량의 볼트 하나, 항공기의 작은 계기 하나, 병원의 야간 근무자 한 사람, 학교의 문을 여는 관리인 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공동체의 골격을 떠받친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만을 뜻하지 않는다. 각자가 제 역할을 다할 때 생기는 질서의 온도다. 신호등 하나가 고장 나면 교차로 전체가 혼란에 빠진다. 사람 한 명이 자신의 책임을 버리면 그 파장은 예상보다 멀리 번진다. 이 시가 말하는 충성은 바로 공동체의 흐름을 끊지 않는 책임의 지속이다.

「신호등은 잠들지 않는다」 에는 이영하 시인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공군사관생도 시절의 다짐, 군인의 책임감, 외교관의 공적 사명, 교육자와 연구자의 성실성이 새벽의 신호등 하나에 포개진다. 거대한 이력이 작은 사물 앞에서 몸을 낮추는 순간, 시는 비로소 깊어진다.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낮은 교차로의 신호등에게서 다시 충성을 배우는 장면은 그 자체로 겸허한 미학이다.

시인은 신호등을 바라보며 자신의 과거를 자랑하지 않는다. 외려 한낱 기계 앞에서 자신의 삶을 되비추어 본다. 나는 저 신호등처럼 자리를 지켰는가.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도 책임을 다했는가. 빛을 바꾸어 타인의 길을 안전하게 이어 주었는가. 이 질문은 작품 밖으로 나와 독자의 가슴에도 놓인다.

좋은 시는 대상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상이 우리를 심문하도록 만든다. 이 작품을 읽고 난 뒤 신호등은 더 이상 거리의 기계가 아니다. 붉은빛 앞에서는 멈추어야 할 욕망을 생각하게 되고, 노란빛 앞에서는 서둘러 내린 판단을 돌아보게 되며, 푸른빛 앞에서는 내가 열어 주어야 할 타인의 길을 생각하게 된다.

신호등은 밤새 한 번도 눕지 않는다. 비가 와도 젖은 빛으로 서 있고, 눈이 와도 얼어붙은 교차로 위에서 질서를 지킨다. 태풍이 도시의 간판을 흔드는 밤에도 제 색을 놓치지 않는다. 그것은 철과 전선으로 만든 기계이면서, 인간이 잃어버리고 있는 책임의 오래된 등대다.

이영하 시인은 그 등대 앞에서 충성을 다시 정의한다. 충성은 맹목이 아니라 방향이며, 복종이 아니라 책임이고, 요란한 선서가 아니라 지속되는 실천이다. 진정한 충성은 권력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생명과 공동체의 안전을 끝까지 바라보는 일이다.

「신호등은 잠들지 않는다」 는 작은 도시 풍경에서 출발하여 공적 인간의 윤리로 도착한다. 사물의 외피를 벗겨 그 안에 숨은 정신을 찾아내는 시인의 눈이 빛난다. 신호등의 세 빛은 마침내 시인의 세 가지 삶의 원칙으로 읽힌다.

멈추어야 할 때 멈추는 절제,

생각해야 할 때 생각하는 신중함,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는 용기.

이 세 덕목을 정확히 지키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의 교차로를 안전하게 만드는 인간 신호등이다.

이 시를 읽는 동안 우리는 알게 된다. 평화는 저절로 오는 아침이 아니다. 누군가 밤새 자기 자리를 지켜 낸 뒤에야 도착하는 빛이다. 세상이 아직 무너지지 않는 까닭은 이름 없는 자리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불을 끄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영하 시인의 신호등은 잠들지 않는다.

그것은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만 깨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의 책임이 잠들지 않도록,

우리 시대의 충성이 길을 잃지 않도록,

밤새 세 가지 빛으로 인간의 양심을 교대 근무시키고 있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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