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나비의 자리에 별이 내려앉을 때 ― 정근옥 시인의 「사바의 꽃밭에서」에 나타난 인연과 소멸의 미학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사라진 나비의 자리에 별이 내려앉을 때 ― 정근옥 시인의 「사바의 꽃밭에서」에 나타난 인연과 소멸의 미학 2026.07.29
□ 정근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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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의 꽃밭에서
시인 정 근 옥
세월이 흐를수록
꽃밭에 나비의 그림자가 사라진다
눈물나도록 그리운 사람은
저녁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은
독을 품은 흰 꽃을 흔들며 다가온다
밤하늘 꽃밭에 반짝이는 별들은
누구의 애달픈 영혼들일까
오랜 세월이 지나도 향기 짙은 꽃밭,
나비 같은 이들은 하나둘 별이 되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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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나비의 자리에 별이 내려앉을 때
― 정근옥 시인의 「사바의 꽃밭에서」 에 나타난 인연과 소멸의 미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근옥 시인의 시는 깊다.
이는 평생 교육자로 살아온 그의 사유깊은 철학에서 기인한다.
이번 시 「사바의 꽃밭에서」 역시, 꽃을 노래하면서도 단순히 꽃의 화려함에 기대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꽃밭은 봄의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잃으며 살아가는 사바세계의 축소된 지도다. 꽃은 피어 있으나 나비는 사라지고, 그리운 사람은 안개 속으로 멀어지며,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은 독을 품은 꽃처럼 다가온다.
삶은 아름다운 것만 피어나는 정원이 아니다. 향기와 독, 만남과 이별, 그리움과 상처가 같은 흙에서 뿌리를 섞는 복합적인 생의 화단이다.
시의 첫 행, “세월이 흐를수록”은 이 작품 전체를 움직이는 시간의 문이다.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물이 아니다. 꽃밭에서 나비의 그림자를 조금씩 지우는 거대한 지우개다. 젊은 날에는 꽃보다 나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꽃밭을 찾아오는 사람과 사랑, 설렘과 만남이 세계의 중심처럼 보인다. 세월이 깊어질수록 시선은 머무는 것보다 떠난 것에 닿는다. 꽃은 남아 있는데 그 꽃을 찾아오던 나비가 보이지 않는다. 이 부재가 시의 첫 슬픔이다.
“나비의 그림자가 사라진다”는 표현은 매우 섬세하다. 나비 자체가 아니라 그림자가 사라진다고 썼다. 존재가 떠난 뒤에도 한동안 남아 있던 기억과 흔적마저 시간 속에서 흐려지는 순간을 보여 준다. 사람은 떠난 이를 단번에 잊지 않는다. 목소리와 표정, 걸음걸이와 체온은 기억 속에서 오래 그림자를 만든다.
어느 날 그 그림자의 가장자리마저 희미해졌음을 느낄 때, 상실은 다시 한 번 찾아온다. 죽음은 사람이 떠나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기억 속 흔적이 조금씩 닳아 가는 긴 이별이다.
“눈물나도록 그리운 사람은 / 저녁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라는 구절은 이 시의 정서적 중심이다. 저녁은 하루가 빛을 거두는 시간이며, 안개는 존재의 윤곽을 흐리는 자연의 장막이다. 그리운 사람은 어둠 속으로 곧장 사라지지 않는다. 저녁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보일 듯 말 듯한 거리에 머물며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으나 끝내 잡히지 않는다.
이 모호한 거리가 그리움의 본질이다. 완전히 사라졌다면 체념할 수 있으련만, 기억은 자꾸만 그 사람을 가까운 곳에 세운다. 그리움은 부재한 사람을 마음의 창가에 매일 출석시키는 슬픈 성실성이다.
이어지는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은 / 독을 품은 흰 꽃을 흔들며 다가온다”는 삶의 역설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멀어지고, 피하고 싶은 사람은 가까워진다. 인연은 인간의 바람대로 배치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흰 꽃’은 특별한 긴장을 만든다. 흰색은 순결과 평화, 무구함을 상징하는 빛깔이다. 그 꽃 안에 독이 들어 있다. 겉은 깨끗해 보이나 안쪽에 상처를 품은 관계, 선한 표정을 하고 다가오지만 삶을 병들게 하는 사람을 뜻한다.
독을 품은 꽃이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며 다가온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유혹과 위선, 불길한 인연은 대개 자신의 독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름다운 얼굴과 다정한 몸짓으로 다가온다.
시인은 이를 격렬한 비난으로 쓰지 않고 한 송이 흰 꽃에 독을 숨겨 놓는다. 이 절제가 작품의 품격을 높인다. 상처를 준 사람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으면서 관계의 위험성을 한 장면으로 압축한다.
시의 시선은 땅의 꽃밭에서 밤하늘의 꽃밭으로 옮겨 간다.
“밤하늘 꽃밭에 반짝이는 별들은 / 누구의 애달픈 영혼들일까”라는 구절에서 별은 천체가 아니라 떠난 사람들의 영혼이 피운 빛의 꽃이 된다. 지상의 꽃밭에서 사라진 나비들이 밤하늘의 별로 옮겨 앉은 듯하다.
이 이동을 통하여 죽음은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존재방식의 변화로 읽힌다.
살아 있을 때 한 사람은 꽃과 꽃 사이를 오가는 나비였으나, 생을 다한 뒤에는 먼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이 된다. 나비는 가까이 날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고, 별은 멀리 있으나 오래 빛난다.
정근옥 시인은 이 두 이미지를 통해 생과 사의 거리를 아름답게 연결한다. 가까이 있던 사람이 멀어졌으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존재에서 마음으로 바라보는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마지막의 “오랜 세월이 지나도 향기 짙은 꽃밭”은 기억의 힘을 보여 준다. 시간은 나비의 그림자를 지우면서도 어떤 향기는 지우지 못한다. 사람의 얼굴은 흐려질 수 있고 목소리의 음색도 희미해질 수 있다.
그가 남긴 따뜻함과 품성, 함께했던 날들의 정서는 향기로 남는다. 기억은 형태를 잃은 뒤 향기로 존재한다. 보이지 않아도 한 사람의 생을 갑자기 가득 채우는 것이 향기다.
“나비 같은 이들은 하나둘 별이 되어 머문다”는 마지막 문장은 소멸의 슬픔을 영원의 이미지로 바꾸어 놓는다. 앞부분에서 나비의 그림자는 사라졌지만, 마지막에서는 나비 같은 이들이 별이 되어 머문다. 사라짐과 머묾이 하나의 시 안에서 맞물린다. 육신의 시간에서는 떠났으나 영혼과 기억의 시간에서는 머문다. 이 역설이 작품을 단순한 애도시에서 존재론적 명상으로 끌어올린다.
제목의 ‘사바’는 불교에서 고통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인간세계를 뜻한다. 이 시의 꽃밭이 마냥 아름답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바의 꽃에는 향기만 있지 않다. 독도 있고, 꽃을 떠나는 나비도 있으며,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다시 꽃을 심고, 떠난 사람의 향기를 기억하며, 밤하늘에서 그들의 자리를 찾는다.
정근옥 시인의 시적 성취는 슬픔을 큰 목소리로 발설하지 않는 데 있다. 그는 상실을 울음으로 쏟아내지 않고 꽃과 나비, 안개와 별에게 나누어 맡긴다. 꽃은 관계를 말하고, 나비는 사랑했던 사람을 말하며, 안개는 이별의 거리를 말하고, 별은 죽음 이후에도 남는 영혼의 지속을 말한다. 자연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해석하는 네 개의 문자가 된다.
이 시는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그 여운은 떠난 이를 붙잡으려는 절규에서 오지 않는다. 떠난 사람을 밤하늘의 별로 옮겨 앉히는 따뜻한 상상력에서 온다.
죽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죽음보다 오래가는 향기를 믿는 마음,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사바의 꽃밭을 끝내 저주하지 않는 태도가 작품의 깊은 바탕이다.
정근옥 시인에게 삶은 나비가 영원히 머무는 낙원이 아니다. 소중한 사람은 먼저 떠나고, 피하고 싶은 인연은 독을 감춘 채 다가오는 모순의 뜰이다. 그 뜰을 살아 내는 인간에게 남는 것은 향기를 알아보는 마음이다. 어떤 꽃이 독을 품었는지 분별하고, 어떤 사람이 떠난 뒤에도 자신의 생에 향기로 남는지 헤아리는 일이다.
「사바의 꽃밭에서」 는 사라진 사람을 향한 애도의 시이면서 살아남은 사람의 마음을 씻는 시다. 떠난 이를 슬픔 속에 가두지 않고 별의 자리로 보내며, 남은 이에게는 꽃밭을 계속 걸어갈 작은 빛을 건넨다.
나비는 사라졌으나
꽃밭은 아직 향기롭다.
그리운 사람은 안개 너머로 떠났으나
그가 남긴 온기는 별빛의 체온으로 내려온다.
이 시에서 별은 죽은 사람의 무덤이 아니다.
사랑이 더는 사라질 곳이 없어
하늘에 마련한 마지막 주소다.
정근옥 시인의 「사바의 꽃밭에서」 는 그 주소를 올려다보며, 상실이 끝내 사랑을 이길 수 없음을 낮고 깊은 목소리로 증언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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