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의 안쪽에서 다이아몬드를 보는 사람 ― 박성진 대표의 창의적 기업정신과 공동선의 건축학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돌멩이의 안쪽에서 다이아몬드를 보는 사람 ― 박성진 대표의 창의적 기업정신과 공동선의 건축학 2026.08.01
□ 박성진 엠지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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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의 안쪽에서 다이아몬드를 보는 사람
― 박성진 대표의 창의적 기업정신과 공동선의 건축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도시에는 두 종류의 눈이 있다.
하나는 건물의 외벽만 바라보는 눈이고, 다른 하나는 벽 너머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를 발견하는 눈이다. 전자는 낡은 건물을 낡았다고 말한다. 후자는 그 낡음 속에 숨어 있는 새로운 시간을 읽는다.
박성진 대표는 후자의 눈을 가진 기업인이다.
그는 사람들이 버렸다고 말하는 자리에서 아직 버려지지 않은 가능성을 찾는다. 남들이 쓰레기 더미라고 고개를 돌리는 곳에서 다이아몬드의 미세한 반짝임을 발견하고, 길섶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속에서 보석의 잠든 혈관을 짚어낸다.
매가 높은 하늘에서 작은 움직임 하나를 놓치지 않듯, 그는 건물의 외형보다 그 안에 감춰진 쓰임을 먼저 바라본다. 낡은 상가를 보며 폐허를 계산하지 않는다. 그곳에 머물 사람의 필요를 읽는다. 비어 있는 사무실을 보며 공실률만 세지 않는다. 그 공간이 호텔이 되고, 메디텔이 되고, 실버호텔이 되어 다시 사람의 체온을 품을 수 있는지를 살핀다.
보통의 사람은 건물을 현재형으로 바라본다.
박성진 대표는 건물을 미래완료형으로 읽는다.
아직 객실이 되지 않은 방에서 여행자의 하룻밤을 보고, 아무도 찾지 않는 복도에서 환자의 회복과 노년의 안식을 그려낸다. 먼지가 내려앉은 창문에서 불빛이 켜질 저녁을 미리 바라보고, 멈춰 선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시 오르내릴 수많은 발걸음의 소리를 듣는다.
그에게 용도변경은 건축물대장의 몇 글자를 바꾸는 행정절차가 아니다.
삶의 자리를 잃은 건물에게 새로운 직업을 찾아주는 일이다. 시대와 불화하던 공간을 오늘의 필요와 화해시키는 작업이며, 쓸모를 다한 줄 알았던 자산에게 두 번째 생애를 허락하는 창조적 결단이다.
상가건물이 호텔로 바뀌고, 호텔이 의료 · 휴양 · 돌봄을 품은 메디텔로 진화하는 과정은 단순한 부동산 개발을 넘어선다. 그것은 공간의 신분을 상승시키는 일이 아니라, 공간의 사명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박성진 대표의 창의성은 없는 것을 허공에서 만들어내는 재주가 아니다. 이미 그곳에 있었으나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가치를 먼저 알아보는 능력이다.
보석은 갑자기 태어나지 않는다.
누군가 그것을 알아보기 전까지 돌멩이의 신분으로 살아갈 뿐이다.
사람도 그렇고, 건물도 그렇다.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알아보는 눈을 만나지 못했을 수 있다.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직 맞는 자리를 찾지 못했을 수 있다. 버려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름을 기다리고 있었을 수 있다.
박성진 대표는 바로 그 기다림의 문을 여는 사람이다.
그의 길이 처음부터 평탄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은 언제나 이미 만들어진 길보다 길이 없는 벌판을 먼저 걷는다. 선례가 부족한 사업에는 의심이 따라오고, 복잡한 인허가 앞에는 수많은 벽이 일어선다. 금융과 시공, 설계와 운영을 한 줄로 연결하는 과정에는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숨어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불굴의 근육이며, 막힌 길 앞에서 길의 방향을 바꾸되 목표만은 놓치지 않는 집념이다.
박성진 대표는 실패를 종착역으로 읽지 않는다. 실패를 다음 성공으로 갈아타는 환승역으로 받아들인다. 거절은 멈추라는 명령이 아니라 계획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으라는 시장의 붉은 교정기호다.
그의 불굴은 돌처럼 완강한 고집이 아니다. 물처럼 길을 찾는 유연한 끈기다. 바위에 막히면 물길을 바꾸고, 높은 벽을 만나면 사다리를 만들며, 문이 없으면 벽의 구조부터 다시 살핀다.
기업인의 진정한 크기는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었는가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자신이 발견한 가치를 누구와 나누는가에서 드러난다.
박성진 대표가 지향하는 사업의 종착지는 자신의 자산 증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잠든 건물이 다시 살아나면 건물주의 공실 문제가 풀리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며, 주변 상권에 사람의 발걸음이 돌아온다. 여행자에게는 쉼터가 생기고, 환자에게는 회복의 공간이 마련되며, 노년에게는 존엄을 잃지 않고 머물 수 있는 집이 생긴다.
한 채의 건물이 깨어나는 일은 한 사람의 수익을 넘어 한 골목의 표정을 바꾸는 일이 될 수 있다.
불이 꺼졌던 창문에 불빛이 들어오면 인근 식당에도 손님이 찾아온다. 택시가 멈추고, 청소와 관리의 일자리가 생기며, 지역의 문화와 이야기가 방문객에게 전달된다. 건물 하나의 재생이 도시의 작은 혈관 하나를 다시 뛰게 만드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박성진 대표의 사업철학은 공동선과 만난다.
공동선은 자신의 몫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성취가 다른 사람의 삶까지 따뜻하게 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소시민의 생계가 함께 단단해지고, 투자자의 이익이 지역사회의 활력으로 이어지며, 개발의 성과가 약한 이들의 삶에도 햇빛 한 줌을 건네는 것이다.
그는 건물을 높이는 사람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의 가능성을 함께 높이는 기업인을 지향한다.
좋은 기업은 돈을 버는 기계가 아니다. 사회가 미처 풀지 못한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생명체다. 공실을 수익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의 상처를 기능과 아름다움으로 봉합해야 한다. 노후 건물을 철거의 대상으로만 취급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필요를 담는 그릇으로 되살려야 한다.
박성진 대표가 발견하는 다이아몬드는 건물 안에만 있지 않다.
그 다이아몬드는 일할 기회를 얻은 사람의 손에도 있고, 공실의 무게에서 벗어난 소유주의 안도에도 있으며, 안전한 숙소를 찾은 여행자의 밤과 품위 있는 돌봄을 받는 노년의 하루에도 있다.
한 사람만 빛나는 사업은 성공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의 삶을 함께 밝히는 사업은 역사로 남는다.
도시의 사람들은 반짝이는 완성품에만 박수를 보낸다. 박성진 대표는 아직 빛나지 않는 것들의 편에 선다. 흙 묻은 돌, 외면받은 건물, 멈춰 선 사업, 아무도 가능성을 말하지 않는 자리 곁에 오래 머문다.
그는 안다.
다이아몬드도 처음부터 보석상 진열장에 놓여 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깊은 어둠과 압력을 견딘 뒤에야 빛의 이름을 얻는다는 사실을.
박성진 대표의 삶도 그런 광물의 시간을 닮아 있다.
압력에 부서지지 않고 더 단단해지는 사람. 실패의 어둠 속에서 눈을 감지 않고 새로운 출구를 찾는 사람. 자신이 찾아낸 빛을 혼자 소유하지 않고, 그 빛으로 이웃의 어두운 골목까지 비추려는 사람.
그에게 기업은 돈을 쌓는 높은 탑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는 다리이며, 버려진 자산과 새로운 시대를 연결하는 통로다. 이익과 윤리가 서로 등을 돌리지 않도록 같은 식탁에 앉히는 일이며, 개인의 성공이 공동체의 희망으로 번역되게 하는 사회적 문법이다.
세상에는 돌을 돌로만 보는 사람이 많다.
박성진 대표는 돌의 내부를 본다.
침묵 속에 갇혀 있는 빛을 본다.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미래를 본다.
그의 매서운 눈은 이익을 발견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 이익이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지까지 살핀다. 그의 손에서 부동산은 투기의 숫자를 벗고, 사람과 도시를 함께 일으키는 생활의 자산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가 찾아내는 가장 귀한 다이아몬드는 어쩌면 건물의 가치가 아닐지도 모른다.
절망 속에서도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 성공을 혼자 차지하지 않고 이웃과 나누려는 기업인의 양심, 자신이 일으킨 빛으로 더 낮은 곳을 비추려는 선한 마음일 것이다.
박성진 대표는 버려진 것에서 보석을 찾는 사람이다.
더 깊이 말하면,
버려졌다고 여겨진 것들에게
다시 빛날 권리를 돌려주는 사람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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