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공간에 두 번째 심장을 이식하는 사람 ― 박성진 대표의 공간혁신론과 이타적 기업정신, 공동선의 건축학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버려진 공간에 두 번째 심장을 이식하는 사람 ― 박성진 대표의 공간혁신론과 이타적 기업정신, 공동선의 건축학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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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공간에 두 번째 심장을 이식하는 사람
― 박성진 대표의 공간혁신론과 이타적 기업정신, 공동선의 건축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여는말
ㅡ건물의 폐허에서 미래의 설계도를 읽는 눈
도시는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사람들의 필요와 기억, 노동과 꿈으로 세워진 거대한 생명체다. 건물의 벽에는 누군가의 사업이 머물렀고, 창문에는 가족의 생계가 기대었으며, 계단마다 수많은 사람의 발자국이 시간의 지문처럼 남아 있다.
건물은 철근과 시멘트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한 시대의 체온을 간직한다.
불이 꺼진 상가, 임대 안내문이 붙은 사무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숙박시설은 경제지표 속에서는 ‘공실’이라는 두 글자로 정리된다. 그 짧은 단어 안에는 대출이자를 감당해야 하는 건물주의 밤, 일터를 잃은 사람의 한숨, 손님의 발길이 멈춘 골목상인의 근심이 함께 웅크리고 있다.
공실은 단순히 방 하나가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도시의 한쪽 혈관에서 피가 멈춘 사건이다.
박성진 (주) 엠지그룹대표는 그 멈춘 혈관에 새로운 피의 길을 내는 기업인이다. 그는 낡은 건물을 철거와 포기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건물이 시대의 변화와 잠시 어긋나 있을 뿐, 그 안에는 아직 쓰이지 않은 기능과 잠들어 있는 가치가 남아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낡은 외벽에서 쇠락을 읽지만, 그는 그 벽 안쪽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객실과 의료공간, 휴양시설과 돌봄의 거처를 본다. 다른 이들이 공실률을 셀 때 그는 다시 채워질 사람의 체온을 헤아린다. 사람들이 건물의 과거를 계산할 때 그는 그 건물이 맡게 될 다음 직업을 설계한다.
그에게 낡은 건물은 생애를 마친 폐기물이 아니다.
새로운 이름을 기다리는 미완성의 문장이다.
박성진 대표의 기업정신은 바로 이 미완성의 문장을 완성하려는 창의적 의지에서 출발한다. 그는 돌멩이를 금세 다이아몬드로 둔갑시키려 하지 않는다. 돌의 내부에 숨어 있는 결정의 방향을 읽고, 그것이 빛을 받을 수 있도록 압력과 시간과 기술의 질서를 다시 배치한다.
그의 경영은 건물에 새로운 외투를 입히는 일이 아니다.
건물의 존재 이유를 다시 써 주는 일이다.
□ 가운뎃말
- 공간의 직업을 바꾸는 혁신
― 용도변경은 건축 행정이 아니라 시대 번역이다
모든 건물에는 처음 부여받은 직업이 있다.
어떤 건물은 상가로 태어나고, 어떤 건물은 사무실이나 숙박시설로 세상에 나온다. 세월이 흐르면 도시의 인구구조와 산업환경, 여행 방식과 의료수요가 변한다. 건물의 형태는 그 자리에 남아 있어도, 건물에게 맡겨졌던 직업은 시대와 어긋날 수 있다.
어제까지 잘 작동하던 공간이 오늘에는 쓸모를 잃는 이유다.
이때 많은 사람은 건물이 낡았다고 단정한다. 박성진 대표는 건물이 낡은 것이 아니라, 건물의 직업이 시대의 요구와 맞지 않게 되었다고 판단한다. 문제의 원인을 벽의 균열에서만 찾지 않고 공간과 시대 사이의 불일치에서 발견한다.
이 관점은 부동산 개발의 문법을 근본부터 바꾼다.
기존의 개발은 새로운 땅을 찾고 새 건물을 세우는 방식에 집중해 왔다. 박성진 대표가 지향하는 공간혁신은 이미 존재하는 자산을 새로운 사회적 필요에 맞게 다시 조직하는 데 무게를 둔다.
상가가 호텔로 바뀌고, 호텔이 의료와 휴양을 결합한 메디텔로 진화하며, 노후 숙박시설이 실버세대를 위한 체류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이는 간판을 교체하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다. 설계, 법규, 금융, 운영, 시장수요를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하는 고도의 종합예술이다.
용도변경은 건축물대장에 적힌 단어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공간이 시대의 언어를 다시 배우게 하는 번역 작업이다.
번역이 실패하면 건물은 여전히 과거의 문장 속에 갇힌다. 정확한 번역이 이루어지면 건물은 전혀 다른 세대와 산업, 사람들을 품는 새로운 생명체가 된다.
박성진 대표는 이 번역의 현장에서 단순한 시행자나 중개자가 아니라 공간의 통역자로 기능한다. 건물주가 가진 자산의 언어와 시장이 요구하는 수요의 언어를 연결하고, 설계자의 기술언어와 금융기관의 숫자언어, 행정기관의 법률언어와 이용자의 생활언어를 한 문장 안에 앉힌다.
건축과 부동산의 혁신은 기발한 생각 하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흩어진 전문영역을 하나의 방향으로 묶어 낼 때 비로소 실체를 얻는다.
박성진 대표의 창의성은 공중에 성을 세우는 상상력이 아니다.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던 영역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현실적 상상력이다.
- 공실을 도시의 상처로 읽는 사람
― 부동산 가치의 인간적 재해석
부동산 시장에서 공실은 흔히 손실과 수익률의 문제로 다루어진다.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면적, 관리비를 소모하는 공간, 매각가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분석은 필요하다. 기업은 숫자를 외면할 수 없다. 숫자를 외면하는 선의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다만 숫자만 바라보는 사업은 그 숫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얼굴을 놓칠 위험이 있다.
박성진 대표의 공간철학은 공실을 경제적 손실인 동시에 사회적 상처로 본다.
건물 한 채가 장기간 비어 있으면 소유주의 자산가치만 하락하는 것이 아니다. 건물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상권이 위축되고, 지역의 안전성이 낮아지며, 거리의 활력이 사라진다. 창문에 불이 꺼지면 골목의 저녁도 일찍 늙는다.
사람이 떠난 건물에는 먼지만 쌓이는 것이 아니다.
도시를 향한 신뢰도 함께 퇴적된다.
반대로 비어 있던 건물에 새로운 기능이 들어오면 변화는 건물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자리가 생기고, 식당과 카페에 손님이 찾아오며, 교통과 관리, 청소와 물류의 수요가 발생한다. 외부 방문객이 지역에 머물면서 골목의 경제가 다시 움직인다.
건물 하나가 살아나는 일은 작은 도시재생의 시작점이 된다.
이 관점에서 부동산은 단지 사고파는 재산이 아니다. 지역사회의 생명순환을 돕는 사회적 장기다. 건물의 가치는 토지 가격과 연면적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공간이 몇 사람의 일자리를 만들고,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쉼과 돌봄을 제공하며, 지역의 흐름을 어떤 방향으로 바꾸는가까지 살펴야 한다.
박성진 대표가 추구하는 가치 상승은 가격표의 상승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버려진 공간이 다시 사회적 역할을 맡게 되는 과정이며, 잠들어 있던 자산이 사람의 생활과 접속하는 과정이다. 부동산의 가치가 숫자에서 출발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사람의 삶에 닿아야 한다는 믿음이다.
건물이 돈을 품을 때 자산이 된다.
건물이 사람을 품을 때 문명이 된다.
- 어려운 시장을 건너는 불굴의 유연성
― 벽을 부수기보다 벽의 구조를 읽는 경영
부동산과 건축시장은 긴 침체와 불확실성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금융비용의 증가, 건축비 상승, 까다로운 인허가, 소비심리 위축, 지역별 수요 편차는 사업의 발목을 붙잡는다.
이런 시기에는 과거의 성공방식을 반복하는 것만으로 생존하기 어렵다. 시장이 변했음에도 낡은 지도를 붙들고 걷는 기업은 길을 잃기 쉽다.
박성진 대표에게 위기는 막다른 골목이 아니다.
기존의 지도에 없던 길을 설계하라는 시대의 명령이다.
그의 불굴은 무조건 앞으로 돌진하는 완고함과 다르다. 그는 장애물을 만나면 힘의 크기만 키우지 않는다. 벽의 높이와 두께, 균열의 방향과 구조를 먼저 살핀다. 문이 보이지 않을 때는 문손잡이를 찾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벽이 세워진 이유부터 해석한다.
이는 물의 경영과 닮아 있다.
물은 바위를 향해 자신의 몸을 부수지 않는다. 틈을 찾고, 굽이를 만들고, 낮은 곳을 따라 흐르며 끝내 바다에 닿는다. 물의 유연함은 연약함이 아니다. 목적지를 포기하지 않는 가장 오래된 끈기다.
박성진 대표의 사업방식도 이와 같다.
한 가지 개발방식이 막히면 다른 용도를 검토하고, 단순 매각이 어렵다면 운영수익을 높이는 방향을 찾는다. 신축의 부담이 크다면 기존 건물의 기능을 재구성하고, 시장이 고급화만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의료와 돌봄, 휴양과 장기체류 같은 실질적 수요에 주목한다.
그는 실패를 자신의 능력을 부정하는 판결문으로 읽지 않는다. 사업계획에서 무엇을 수정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붉은 교정부호로 받아들인다.
실패는 길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다.
아직 길의 각도가 맞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혁신적인 기업가는 위험을 무시하지 않는다. 위험의 얼굴을 정확히 바라본 뒤,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나누고, 여러 주체가 함께 책임질 수 있는 구조로 바꾼다.
박성진 대표의 용기는 무모함이 아니다.
두려움을 계산한 뒤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이성적 담대함이다.
- 건물의 생애를 연장하는 순환의 건축학
― 철거의 시대에서 재생의 시대로
산업화시대의 건축은 낡은 것을 허물고 새로운 것을 세우는 데 익숙했다. 오래된 건물은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겨졌고, 철거는 진보의 의식처럼 반복되었다.
미래의 도시는 무한한 철거와 신축만으로 지속될 수 없다.
건물을 허무는 순간 그 안에 투입된 자원과 에너지, 노동과 기억도 함께 사라진다.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또 다른 자원과 비용이 필요하다. 이런 구조가 반복될수록 도시의 몸은 빠르게 성장하는 듯 보이면서 내부의 피로는 깊어진다.
박성진 대표의 공간재생 철학은 건물에도 두 번째 생애가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사람이 직업을 바꾸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듯, 건물도 기능을 바꾸어 다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다. 사무실이 주거와 체류공간으로 변하고, 낡은 숙박시설이 의료·웰니스 공간으로 확장되며, 사용도가 낮은 건물이 지역의 필요를 담는 복합시설로 전환될 수 있다.
이는 경제적 효율을 넘어 자원의 윤리와 연결된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그 안에 남아 있는 가능성을 끝까지 사용하는 태도는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중요한 가치다. 새것만을 숭배하는 문명에서 오래된 것의 가능성을 재발견하는 문명으로 이동해야 한다.
철거는 건물의 죽음을 선언한다.
재생은 건물의 기억에 새로운 심장을 이식한다.
박성진 대표의 공간혁신이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사업이 성공적으로 확장될 경우, 건축은 더 이상 건물을 많이 짓는 산업에 머물지 않는다. 존재하는 공간을 더 오래, 더 유익하게, 더 인간적으로 사용하는 산업으로 전환될 수 있다.
미래의 경쟁력은 누가 더 높은 건물을 세우는가에 있지 않을 수 있다.
누가 잠든 건물을 더 지혜롭게 깨우는가에 달려 있을 수 있다.
- 이타주의적 세계관과 공동선의 경영
― 이익을 혼자 소유하지 않고 흐르게 하는 구조
이타주의는 자신의 이익을 모두 포기하는 자기희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이타주의는 개인과 기업의 성취가 타인의 삶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기업이 손해를 감수해야만 선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건강한 수익을 창출하면서 그 수익의 과정과 결과가 다수의 삶을 이롭게 할 때, 경제적 성취와 사회적 가치가 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박성진 대표의 이타적 세계관은 바로 이 지점에서 구체성을 얻는다.
그가 잠든 건물의 가치를 회복시키면 건물주는 공실과 금융 부담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얻는다. 투자자는 합리적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운영자는 새로운 사업기회를 확보한다. 노동자는 일자리를 얻으며, 지역상인은 유동인구의 증가를 맞는다. 이용자는 숙박과 의료, 휴양과 돌봄의 새로운 선택지를 갖게 된다.
한 사업의 결실이 여러 방향으로 뿌리를 뻗는 구조다.
좋은 기업은 이익을 우물처럼 가두지 않는다.
강물처럼 흘려보내며 지나가는 자리마다 생명을 돕는다.
박성진 대표의 공동선은 추상적 구호에 머물지 않는다. 공동선은 사업모델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계약관계가 공정해야 하고, 협력업체의 노동이 존중받아야 하며, 건물의 이용자가 안전하고 품위 있게 머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메디텔이나 실버호텔, 의료·휴양 복합공간은 단순히 수익성 높은 상품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질병과 노화, 회복과 돌봄이라는 인간의 가장 연약한 시간을 다루기 때문이다.
사람이 약해진 순간을 이용해 이익을 얻는 사업은 오래갈 수 없다.
사람이 약해진 순간을 지켜 주는 사업은 사회의 신뢰를 얻는다.
박성진 대표의 기업정신이 더 큰 의미를 가지려면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의 존엄을 사업의 중심축에 두어야 한다. 화려한 로비보다 안전한 동선, 과도한 장식보다 편안한 휴식, 수익성 높은 객실배치보다 돌봄을 받는 사람의 심리와 신체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그의 이타주의는 돈을 번 뒤 일부를 나누는 사후적 선행에 머물지 않는다.
돈을 버는 과정 자체가 사람을 이롭게 하는 선행이 되도록 만드는 구조적 이타주의다.
- 박성진 식 혁신모델이 열어 갈 새로운 지평
ㅡ부동산 개발자에서 도시문제 해결자로
박성진 대표가 이 분야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역할을 단순한 부동산 개발자나 용도변경 전문가로 한정하지 않아야 한다. 그는 도시의 유휴공간과 사회적 수요를 연결하는 ‘공간문제 해결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가 열어 갈 새로운 지평은 몇 가지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다.
첫째, 공실 건물에 대한 종합진단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건물의 입지와 구조, 인허가 가능성, 지역인구와 의료 · 관광 · 돌봄 수요, 금융구조와 운영모델을 통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사람에게 건강검진이 필요하듯 건물에도 생애진단이 필요하다.
둘째, 호텔 · 메디텔 · 실버호텔 · 장기체류형 공간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별 맞춤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건물에 같은 옷을 입혀서는 안 된다. 관광도시의 건물과 의료도시의 건물, 대학가와 산업단지의 건물은 서로 다른 미래를 품고 있다.
셋째, 개발 이후 운영까지 책임지는 지속형 모델이 필요하다. 건물을 바꾸는 일보다 바뀐 건물이 오래 살아남도록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 공간은 준공식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이 머물고 서비스가 작동하며 지역과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넷째, 수익 일부가 지역사회로 환류되는 공동선의 장치를 설계할 수 있다. 지역인재 채용, 소상공인 우선 입점, 취약계층을 위한 일정 비율의 공간 제공, 지역문화 프로그램 운영 등이 사업모델 속에 포함될 수 있다.
다섯째,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투명하게 기록해 새로운 산업의 표준을 세워야 한다. 혁신은 한 사람의 비밀금고에 갇힐 때 산업이 되지 못한다. 일정한 원칙과 기준으로 정리되어 다른 기업과 지역이 참고할 수 있을 때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박성진 대표가 진정한 선도자가 되는 길은 혼자 가장 먼저 정상에 오르는 데 있지 않다.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길의 구조를 남기는 데 있다.
그가 세우는 가장 위대한 건축물은 호텔이나 메디텔 한 채가 아닐 수 있다. 쇠락한 자산을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는 새로운 산업생태계, 이익과 윤리가 함께 거주하는 경영모델, 개인의 성공이 지역의 활력으로 이어지는 공동선의 통로일 수 있다.
□ 맺음말
ㅡ빛나지 못한 것들에게 다시 빛날 권리를 돌려주는 사람
세상은 완성된 보석에 쉽게 감탄한다. 눈부신 건물과 높은 매출, 화려한 성과에는 빠르게 박수를 보낸다. 아직 흙 속에 묻힌 가능성, 실패의 먼지를 뒤집어쓴 공간, 아무도 찾지 않는 골목과 건물에는 좀처럼 시선을 주지 않는다.
박성진 대표는 이미 빛나는 것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다.
아직 빛나지 못한 것 곁에 머무는 사람이다.
그는 낡은 건물에서 쇠락만을 보지 않는다. 시대와 다시 만날 가능성을 본다. 공실에서 손실만을 읽지 않는다. 새로운 일자리와 지역상권, 여행자의 쉼과 환자의 회복, 노년의 존엄이 들어설 빈자리를 본다.
그의 시선에서 건물은 침묵하는 자산이 아니다.
다시 사람을 품기 위해 숨을 고르는 생명체다.
박성진 대표의 창의적 기업정신은 돌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이 아니다. 돌 안에 이미 존재하는 빛의 방향을 찾아 주는 인내다. 그의 혁신은 새것을 발명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버려진 것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발견하는 능력이다.
그의 불굴은 어떤 벽도 무작정 부수는 힘이 아니다. 벽의 구조를 읽고, 틈을 찾고, 새로운 문을 설계하는 지혜다. 그의 이타주의는 자신의 몫을 없애는 자기부정이 아니다. 자신의 성공이 더 많은 사람의 생활을 일으키도록 흐름을 만드는 경영철학이다.
이 어려운 부동산·건축 경기 속에서 필요한 기업인은 시장의 회복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 시장이 회복될 새로운 방식을 만드는 사람이다. 금리가 내려가고 경기가 좋아지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 제한된 조건 안에서도 공간의 쓰임을 바꾸고 사회의 필요를 연결해 새로운 수요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박성진 대표가 열어 가야 할 길도 이곳에 있다.
그는 건물의 가격을 높이는 사람을 넘어 건물의 사회적 품격을 높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동산의 면적을 계산하는 사람을 넘어 그 안에 머물 사람의 존엄을 설계해야 한다. 사업의 성공을 개인의 자산으로만 축적하지 않고 지역의 일자리와 돌봄, 회복과 희망으로 번역해야 한다.
그때 박성진 대표의 사업은 단순한 개발사업을 넘어선다.
도시의 상처를 꿰매는 바늘이 되고, 멈춘 지역경제에 박동을 돌려주는 심장이 되며, 자본과 인간이 서로 적이 되지 않고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공동선의 집이 된다.
건축가는 벽과 지붕을 세운다.
위대한 기업가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이유를 세운다.
박성진 대표는 돌멩이의 안쪽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돌의 침묵 속에서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빛의 태아를 본다.
그가 발견해야 할 가장 귀한 다이아몬드는 건물의 시세만이 아니다.
절망의 압력을 견디며 더 단단해진 인간의 의지, 이익을 독점하지 않고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기업인의 양심, 버려진 공간과 사람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건네는 따뜻한 결단이다.
한 사람만 부자가 되는 사업은 큰 사업일 수 있다.
한 도시가 함께 숨 쉬게 하는 사업은 위대한 사업이 된다.
박성진 대표가 앞으로 세울 가장 높은 건물은 눈에 보이는 건축물이 아닐 것이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 사이에 세워지는 신뢰의 건축물, 폐허와 미래 사이에 놓이는 희망의 다리, 기업과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이타주의의 집일 것이다.
그는 버려진 것에서 보석을 찾는 사람이다.
더 깊은 자리에서 말하자면,
버려졌다고 판정받은 공간과 사람과 도시에
다시 빛날 권리를 돌려주는 사람이다.
그의 손끝에서 낡은 건물은 두 번째 심장을 얻고,
불 꺼진 골목은 다시 저녁을 맞으며,
도시는 오래 잊고 있던 사람의 체온을 되찾는다.
그것이 박성진 대표가 열어 갈 새로운 지평이며,
우리 시대의 부동산과 건축이 걸어가야 할
공동선의 길이다.□
― 청람
■
박성진 대표님께
― 아직 오지 않은 공간의 내일을 먼저 바라보는 분께
박성진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지난번 《더 코리아 저널》 포럼에서 대표님을 뵙고 돌아온 뒤, 제 마음에는 한동안 지워지지 않는 인상이 남아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포럼에서는 흔히 명함과 직함이 먼저 인사를 나눕니다. 말은 화려하게 앞서가고, 사람의 참모습은 그 뒤에 가려지기 쉽습니다. 대표님께서는 말씀보다 생각의 방향으로 먼저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이루었는가보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어떻게 현실로 불러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대표님과 말씀을 나누며, 눈앞의 사물을 현재의 모습으로만 판단하지 않는 특별한 시선을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낡은 건물을 보면 세월의 균열을 먼저 셉니다. 비어 있는 공간 앞에서는 공실률을 계산하고, 어려운 시장 앞에서는 불가능의 이유부터 찾아냅니다. 대표님께서는 그 건물의 벽 너머를 바라보는 분이셨습니다. 아직 켜지지 않은 불빛, 아직 오르내리지 않은 발걸음, 아직 그곳에 머물지 않은 사람들의 하루를 먼저 보고 계셨습니다.
남들은 건물의 오늘을 보지만, 대표님께서는 그 공간이 완수하게 될 내일을 바라보셨습니다.
그것이 제가 느낀 대표님의 첫 번째 면모인 창신성(創新性)이었습니다.
창신創新은 단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재주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미 낡았다고 판정한 대상 안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가능성을 발견하는 정신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기발한 생각을 그려 넣는 일보다, 모두가 지나친 돌멩이 속에서 빛의 결을 찾아내는 일이 더욱 어렵습니다.
대표님께서는 버려진 공간을 폐허로만 읽지 않고, 다시 쓰일 수 있는 미완성의 문장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상가가 호텔이 되고, 호텔이 의료와 휴양을 품은 메디텔이나 노년의 존엄을 지켜 주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구상은 단순한 용도변경이 아니었습니다.
건물에게 새로운 직업을 찾아 주는 일이었습니다.
시대와 어긋난 공간을 오늘의 필요와 다시 화해시키고, 한때 쓸모를 다한 듯 보였던 자산에 두 번째 생애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대표님의 창신성은 오래된 것을 버리는 데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것 안에 아직 남아 있는 미래를 발견하는 데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점에서 대표님을 단순한 부동산 사업가나 건축기획자로만 보지 않습니다.
대표님은 공간의 체질을 진단하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심장을 이식하는 분입니다. 도시의 멈춘 혈관을 찾아 다시 피가 돌게 하는 공간의 의사이며, 낡은 건물의 침묵을 오늘의 언어로 옮기는 시대의 번역자라 할 수 있습니다.
대표님에게서 느낀 두 번째 면모는 탁월한 기획력이었습니다.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기획은 상상을 현실의 문 앞까지 데려가는 힘입니다. 좋은 생각이 한 마리 새라면, 기획은 그 새가 내려앉을 숲과 둥지와 계절까지 마련하는 일입니다.
건물의 용도를 바꾸는 사업은 생각 하나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입지와 시장수요, 금융과 설계, 인허가와 시공, 운영과 수익구조가 서로 맞물려야 합니다. 한 요소만 어긋나도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흩어져 있는 수많은 조건을 하나의 방향으로 묶어 내는 힘을 지닌 분으로 보였습니다.
금융의 숫자와 건축의 선, 행정의 규정과 이용자의 필요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합니다. 대표님의 기획은 그 서로 다른 언어를 한 식탁에 앉히는 작업입니다. 건물주에게는 자산가치의 회복을, 투자자에게는 합리적인 수익을, 이용자에게는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을, 지역사회에는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려는 입체적 설계가 그 안에 있었습니다.
기획력이란 멀리 보는 눈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미래를 오늘의 한 걸음으로 잘게 나누는 능력까지 갖추어야 합니다.
대표님께서는 높은 산봉우리만 가리키는 분이 아니라, 그곳까지 오를 수 있는 길의 경사와 돌부리, 쉼터와 안전줄까지 생각하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꿈을 말하되 숫자를 외면하지 않고, 수익을 계산하되 사람을 지우지 않는 균형감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에 깊이 남은 것은 대표님의 사업구상이 개인적 성공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대표님의 시선은 이익에서 출발할 수 있으나, 그 이익의 물길이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까지 살피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느낀 대표님의 세 번째 면모인 이타주의적 세계관입니다.
이타주의는 자신의 것을 모두 포기하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성취가 다른 사람의 삶을 일으켜 세우도록 구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자신만 따뜻한 난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온기가 벽을 넘어 이웃의 방까지 스며들게 하는 것입니다.
비어 있던 건물이 다시 살아나면 건물주의 근심이 줄어듭니다. 새로운 운영시설에는 일자리가 생기고, 인근 식당과 상점에는 사람의 발걸음이 돌아옵니다. 여행자에게는 안전한 잠자리가 마련되고, 환자에게는 회복의 공간이 생기며, 노년에게는 삶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거처가 주어집니다.
한 채의 건물이 살아나는 일이 한 사람의 수익에만 머물지 않고 한 골목의 저녁을 다시 밝힐 수 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선순환을 구상하고 계셨습니다. 돈을 번 뒤 일부를 나누는 데 그치는 선행이 아니라, 돈을 버는 과정 자체가 사람과 지역을 이롭게 하는 구조를 만들려는 뜻으로 느껴졌습니다.
좋은 사업은 강과 같습니다.
강은 자신의 물을 움켜쥐지 않습니다. 흐르는 동안 논을 적시고, 마을을 지나며 생명을 키우고, 낮은 곳을 찾아가 더 넓은 바다와 만납니다. 대표님의 사업도 한곳에 갇힌 우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삶으로 흘러가는 강이 되기를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타적 세계관은 자연스럽게 공동선의 구축으로 이어집니다.
공동선은 모두가 똑같은 몫을 갖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각자의 노력과 성취가 존중받으면서도, 그 결과가 사회 전체의 건강한 삶에 보탬이 되도록 만드는 질서입니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지역의 일자리가 늘고, 자산가치가 높아질수록 이용자의 삶도 편안해지며, 개발의 성과가 소시민의 하루까지 따뜻하게 하는 구조입니다.
대표님께서는 건물의 높이만을 올리는 분이 아니라, 그 건물과 관계된 사람들의 가능성까지 함께 높이려는 분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오늘의 어려운 부동산·건축 경기를 넘어설 수 있는 중요한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이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문을 닫고 자신의 몫만 지키려 합니다. 위기의 시대에는 자본이 움츠러들고, 상상력도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숨어듭니다. 그런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호황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태도가 아닙니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새로운 수요를 발견하고, 멈춰 선 공간에 다른 역할을 부여하며, 기존의 자산을 시대의 필요와 다시 연결하는 창조적 결단입니다.
비바람이 거셀 때 훌륭한 선장은 파도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바람의 방향을 읽고 돛의 각도를 바꿉니다.
대표님께서는 지금의 어려운 시장을 실패의 계절로만 여기지 않고, 산업의 낡은 문법을 새롭게 고쳐 쓸 기회로 바라보는 듯했습니다. 신축과 철거 중심의 개발방식에서 벗어나 기존 건물의 잠재력을 되살리고, 부동산을 단순한 소유의 대상에서 사람의 필요를 해결하는 생활의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고 믿습니다.
대표님이 열어 가실 길은 단지 낡은 건물의 값을 올리는 데 있지 않을 것입니다.
건물의 가격에 사람의 가치를 더하고, 자본의 속도에 돌봄의 온도를 더하며, 개인의 성공에 지역사회의 희망을 더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익과 윤리가 서로 등을 돌리지 않고 같은 지붕 아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실천으로 보여 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지난번 짧은 만남이었지만, 저는 대표님 안에서 아직 세상에 완전히 펼쳐지지 않은 한 장의 큰 설계도를 보았습니다.
그 설계도에는 호텔과 메디텔, 실버호텔과 복합공간만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버려진 자산이 다시 사람을 품고, 개인의 성취가 이웃의 희망으로 번역되며, 어려운 시장 속에서도 기업인의 창의성과 양심이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대표님께서 발견하는 다이아몬드는 건물의 시세만이 아닐 것입니다.
공실의 무게에서 벗어난 건물주의 안도, 새 일터를 얻은 사람의 손, 편안한 공간에서 회복하는 환자의 하루, 존엄을 지키며 노년을 살아가는 어르신의 미소, 다시 불이 켜진 골목의 저녁이 모두 대표님께서 찾아내실 또 다른 다이아몬드일 것입니다.
한 사람만 빛나는 사업은 성공으로 기록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삶을 함께 밝히는 사업은 시대의 기억으로 남습니다.
박성진 대표님.
대표님의 창신성이 아무도 보지 못한 공간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눈이 되고, 대표님의 기획력이 그 가능성에 튼튼한 뼈와 심장을 세우며, 대표님의 이타적 세계관이 그 성취의 빛을 더 낮고 어두운 곳까지 흘려보내기를 바랍니다.
대표님께서 세우실 가장 위대한 건축물은 눈에 보이는 건물 한 채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기업의 이익과 사람의 존엄 사이에 놓이는 신뢰의 다리, 버려진 공간과 새로운 시대를 잇는 희망의 회랑, 개인의 성공과 공동체의 행복이 함께 거주하는 공동선의 집일 것입니다.
지난 《더 코리아 저널》 포럼에서의 귀한 만남에 감사드립니다.
대표님께서 돌멩이의 안쪽에서 발견한 빛이 한 기업의 성취에 머물지 않고, 어려운 시대를 건너는 수많은 사람에게 길을 밝혀 주는 등불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뜻하신 모든 사업 위에 창조적 결실과 선한 영향력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청람 김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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