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자리 ㅡ청람 김왕식
무소유의 자리 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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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자리
청람 김왕식
송광사 불일암
낡은 처마 밑 봉당에
세월의 그림자가 눕는다
비 온 뒤 젖은 공기 속
한 켠에 나무 의자 하나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의자 위에는
세상보다 더 오래된 침묵이 앉아 있고
그 앞에는
책 두 권이 놓여 있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먼지 쌓인 표지 위로
햇살이 한 줄기 내려앉는다
그 빛이야말로
법정의 마음이었으리
노자의 비움은
물처럼 낮은 곳을 흘렀고
장자의 자유는
새처럼 허공을 날았다
그 둘이 한 자리에 머물러
그의 숨을 지탱했다
바람은 여전히
그 처마 끝에서
속삭임처럼 들려온다
“갖지 않음이 곧 가짐이다”
“비움이 곧 충만이다”
그 말 위로 낙엽이 떨어지고
시간은 조용히 절을 올린다
사람들은 떠나고
새소리만 남는다
허공에 스승의 이름이 스미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나무 의자와 두 권의 책
끝내 비워진 한 생애
그 비움 속에서
세상은 다시 충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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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 낸 자리에서 더 크게 살아나는 것들
― 청람 김왕식의 「무소유의 자리」
문학평론가 김기량
청람 김왕식의 「무소유의 자리」 는 법정 스님의 삶을 직접 설명하거나 찬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그가 머물렀던 송광사 불일암의 한 풍경을 통해 한 인간의 정신적 생애를 복원한 시다. 시인은 인물의 목소리를 크게 내세우지 않는다. 낡은 처마와 봉당, 나무 의자, 두 권의 책, 햇살과 바람, 낙엽과 새소리를 차례로 배치하며 이미 떠난 사람의 자리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은 ‘나무 의자’다. 의자는 누군가 앉았던 자리이면서, 이제는 비어 있는 자리다. 비어 있음은 흔히 부재나 상실을 뜻한다. 이 작품에서 빈 의자는 사라짐의 증거가 아니라, 한 생애가 남긴 정신의 형식이 된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그의 체온과 사유와 침묵은 의자 위에 머문다. 시인이 “의자 위에는 / 세상보다 더 오래된 침묵이 앉아 있고”라고 쓴 까닭도 여기에 있다. 침묵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말보다 깊은 가르침이 머무는 방식이다.
불일암의 풍경 역시 단순한 배경에 그치지 않는다. “낡은 처마 밑 봉당”과 “비 온 뒤 젖은 공기”는 화려함에서 멀리 떨어진 공간이다. 오래되고 낮으며 소박하다. 이러한 공간성은 법정 스님의 삶과 맞닿아 있다. 시인은 웅장한 법당이나 장엄한 불상 대신, 처마 밑의 작은 의자 하나를 바라본다. 이는 큰 가르침이 반드시 큰 형식 속에 머무는 것은 아니라는 뜻을 품는다. 삶을 바꾸는 정신은 때로 낡은 나무의 결, 빗물 마른 마당, 햇살 한 줄기 속에 깃든다.
의자 앞에 놓인 노자의 『도덕경道德經』과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는 이 작품의 사상적 중심을 이룬다. 노자의 철학은 낮아짐과 비움, 무위와 물의 정신으로 요약된다. 물은 다투지 않으며 낮은 곳으로 흐른다. 장자의 사유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자유와 초월의 세계를 향한다. 시인은 이를 “노자의 비움은 / 물처럼 낮은 곳을 흘렀고 / 장자의 자유는 / 새처럼 허공을 날았다”고 표현한다. 물과 새는 서로 다른 운동을 보여 준다. 하나는 아래로 흐르고, 하나는 위로 난다. 낮아짐과 날아오름, 비움과 자유가 한자리에서 만난다.
이 대목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단순히 물건을 적게 지니는 생활 태도를 넘어선다. 무소유는 소유의 양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소유에 붙들리지 않는 마음의 상태다. 무엇인가를 갖지 않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 때문에 마음의 자유를 잃지 않는 데 의미가 있다. 시 속의 “갖지 않음이 곧 가짐이다”라는 문장은 이러한 역설을 함축한다. 손에서 놓음으로써 더 넓은 세계를 얻고, 자신을 비움으로써 타인과 자연과 생명을 품게 되는 것이다.
“비움이 곧 충만이다”라는 구절도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빈 그릇은 비어 있기에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다. 빈방은 비어 있기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 빈 마음은 비어 있기에 타인의 아픔과 세상의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시에서 비움은 결핍이 아니다. 존재가 더 넓어지기 위한 내면의 공간이다. 법정 스님의 삶은 무엇을 남겼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았기에 오래 기억된다.
시인은 자연을 단순한 장식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햇살은 먼지 쌓인 책 위에 내려앉고, 바람은 처마 끝에서 말을 건네며, 낙엽은 스승의 말씀 위에 내려온다. 시간마저 “절을 올린다.” 자연과 시간이 한 인간의 삶 앞에 예를 갖추는 장면이다. 이는 법정 스님의 생애가 자연의 질서와 가까웠음을 보여 준다. 그는 자연을 지배하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았고, 그 속에 머물며 생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런 까닭에 사람은 떠났어도 새소리와 바람과 햇살이 그의 정신을 이어 간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사람들은 떠나고 / 새소리만 남는다”는 구절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인간의 이름과 명성은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진다. 자연의 소리는 오래 남는다. 이때 새소리는 법정 스님의 삶이 자연의 언어로 바뀌어 계속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름은 허공에 스미고, 가르침은 풍경 속에 남는다. 한 인간의 정신이 개인의 생애를 벗어나 보편적 울림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마지막 연의 “나무 의자와 두 권의 책 / 끝내 비워진 한 생애”는 작품의 핵심을 압축한다. 남은 것은 매우 적다. 의자 하나와 책 두 권뿐이다. 그 적음이 가난해 보이지 않는다. 그 비워진 생애 안에는 노자의 낮음과 장자의 자유, 법정의 수행과 침묵, 자연을 향한 사랑과 인간을 향한 연민이 들어 있다. 물질적으로는 거의 남기지 않았으나 정신적으로는 매우 큰 세계를 남긴 삶이다.
「무소유의 자리」 는 법정 스님의 삶을 추모하는 시이면서, 오늘의 인간에게 보내는 성찰의 시다. 현대인은 더 많이 소유함으로써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집과 재산, 지위와 이름, 관계와 기억까지 붙잡으려 한다. 많이 가질수록 마음은 넉넉해질 듯하지만, 소유가 늘어날수록 상실에 대한 두려움도 커진다. 이 시는 그러한 시대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삶의 크기는 가진 것의 양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에 따라 깊어질 수 있다고.
청람 김왕식은 이 작품에서 법정 스님의 생애를 길게 서술하지 않는다. 한 장의 정물화처럼 불일암의 자리를 보여 준다. 그 절제된 풍경 안에서 한 시대의 스승이 다시 살아난다. 설명보다 사물에 맡기고, 주장보다 침묵에 기대며, 찬양보다 비어 있는 자리를 바라본다. 이는 대상의 삶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엎드린 시선’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은 무소유를 추상적 교훈으로 다루지 않고, 눈에 보이는 사물의 언어로 바꾸어 냈다는 데 있다. 낡은 처마, 나무 의자, 두 권의 책, 햇살 한 줄기. 이 소박한 사물들이 서로 기대어 한 인간의 정신적 초상을 완성한다.
「무소유의 자리」가 말하는 무소유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삶이 아니다. 자신을 비워 더 많은 생명을 품는 삶이다. 자리를 차지하지 않음으로써 더 오래 머무는 삶이며, 이름을 앞세우지 않음으로써 더 깊이 기억되는 삶이다.
법정 스님은 떠났으나 그의 빈 의자는 여전히 사람을 앉힌다. 두 권의 책은 덮여 있으나 사유는 계속 펼쳐진다. 한 생애는 비워졌으나, 그 비움으로 인해 세상은 이전보다 조금 더 넓고 깊어진다.
그것이 이 시가 끝내 도달하는 무소유의 역설이며, 비어 있는 자리에서 피어나는 가장 충만한 정신의 꽃이다.
ㅡ 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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