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에도 국경이 있다면, 매미는 그것을 넘어간다 ― 주광일 시인의 「여름 엽서 41 ― 이종효 요한에게」 에 나타난 상실과 기억의 미학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울음에도 국경이 있다면, 매미는 그것을 넘어간다 ― 주광일 시인의 「여름 엽서 41 ― 이종효 요한에게」 에 나타난 상실과 기억의 미학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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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엽서 41
ㅡ 이종효 요한에게
시인 주광일
나 먼저 세상 떠난 매제를 생각하며 잠 못 이루는 밤입니다. 미국 땅 디트로이트에서 착하게 착하게만 살던 매제의 부음이 전해진 날, 서울의 매미는 하루 종일 구슬프게 울어댔습니다. 3년 전 부터 투병 중임을 알면서도 문병 한번 못 해버린 나를, 매미는 줄기차게 꾸짖고 있었습니다.
지금쯤 디트로이트의 매미도 엉엉 울고 있는지 자못 궁금해지는 불면의 열대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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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에도 국경이 있다면, 매미는 그것을 넘어간다
― 주광일의 「여름 엽서 41
― 이종효 요한에게」 에 나타난 상실과 기억의 미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들어가는 말
― 한 사람의 부재가 여름 전체를 울게 할 때
사람 하나가 세상을 떠났는데 계절이 먼저 상복을 입는다.
검은 천을 두른 것도 아니다. 하늘이 빛을 거두어 간 것도 아니다. 태양은 여전히 뜨겁고, 나무는 짙은 초록을 밀어 올리며, 도시는 평소처럼 자동차와 사람을 흘려보낸다. 그럼에도 어느 한 사람에게 그날의 여름은 이전의 여름과 완전히 다른 계절이 된다.
주광일 시인의 「여름 엽서 41 ― 이종효 요한에게」 가 놓인 자리가 바로 그곳이다.
이 작품은 거창한 추도시가 아니다. 죽음의 철학을 장황하게 펼쳐 보이지도 않는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세상을 떠난 매제를 생각하며 잠 이루지 못하는 한 사람의 밤을 짧게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짧음 속에 한 생애의 미안함이 들어 있다.
서울과 디트로이트 사이의 먼 거리, 병중에 찾아가지 못했던 회한,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 한여름 내내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몇 개의 문장 속에서 서로 몸을 섞는다.
이때 매미는 단순한 여름의 배경음이 아니다.
한 사람이 끝내 입 밖으로 다 토해내지 못한 울음을 대신 울어주는 존재이며, 살아남은 자의 가슴에 남아 있는 죄책감을 끊임없이 두드리는 작은 목탁이다.
시인의 여름은 그렇게 더 이상 기후의 계절이 아니다.
기억의 계절이다.
Ⅱ. “착하게 착하게만 살던”
― 한 인간에게 바치는 가장 낮고 높은 묘비명
작품의 중심에는 매우 소박한 한 문장이 놓여 있다.
“미국 땅 디트로이트에서 착하게 착하게만 살던 매제.”
여기에서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착하게’라는 말의 반복이다.
문학적으로 화려한 표현도 아니며 낯선 어휘도 아니다. 어린아이가 처음 배우는 말처럼 단순하다.
그 단순함이 외려 깊다.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남는 평가는 의외로 복잡하지 않다. 어떤 직위를 지녔는지, 얼마나 많은 재산을 모았는지, 얼마나 큰 이름을 얻었는지는 죽음 앞에서 빠르게 퇴색한다.
끝내 남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떤 온도로 살았는가 하는 일이다.
주광일 시인이 매제에게 붙여 준 가장 큰 훈장은 화려한 수식어가 아니다.
착하게 살았다.
그것도 한 번으로 모자라 “착하게 착하게만”이라고 되풀이한다.
이 반복은 의미의 강조를 넘어 감정의 떨림에 가깝다. 한번 부르고도 마음이 다 전해지지 않아 같은 말을 다시 부르는 형국이다.
그 두 번의 ‘착하게’ 사이에는 함께 보낸 세월과 기억, 매제의 얼굴과 말투, 가족 안에서의 자리, 먼 이국에서 살아낸 삶의 시간이 숨어 있다.
좋은 문학은 설명을 줄이고 여백을 넓힌다.
주광일 시인은 매제의 생애를 일일이 기록하지 않는다. ‘착하게 착하게’라는 네 음절의 반복 속에 한 인간의 평생을 눕혀 놓는다.
무덤 앞 비석에 긴 문장을 새길 필요가 있을까.
한 사람의 생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참 착한 사람이었다”
라고 남는다면, 그것만큼 귀한 생의 결산도 흔치 않다.
Ⅲ. 문병 가지 못한 한 걸음
― 사랑에는 시간을 잃으면 다시 건널 수 없는 다리가 있다
이 작품의 가장 아픈 대목은 죽음 자체보다 살아남은 사람의 후회에서 발생한다.
“3년 전부터 투병 중임을 알면서도 문병 한번 못 해버린 나를”
시인은 자신을 변명하지 않는다.
서울과 디트로이트 사이가 얼마나 먼지, 사정이 어떠했는지, 일상이 얼마나 바빴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못 해버린 나”를 내놓는다.
그 표현에는 자책이 있다.
‘못 했다’와 ‘못 해버렸다’는 다르다.
‘못 했다’에는 상황이 묻어 있을 수 있다. ‘못 해버렸다’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어진 시간에 대한 회한이 배어 있다.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없지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순간에는 때가 있다.
찾아가야 할 때 가지 못한 한 걸음은 훗날 천 리를 걸어도 되돌릴 수 없다.
잡아야 할 손이 따뜻할 때 잡지 못하면, 무덤 앞에서 아무리 두 손을 모아도 그 체온을 되찾을 수 없다.
살아 있는 동안 건네지 못한 안부는 죽음 이후 가장 무거운 편지가 된다.
주광일 시의 힘은 이 보편적 인간의 슬픔을 과장하지 않는 데 있다.
누구에게나 있다.
전화를 한번 더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던 사람.
찾아갈 수 있었는데 다음으로 미뤘던 사람.
사랑한다고 말하려다가 쑥스러워 삼켜버린 사람.
미안하다는 말을 내일로 넘겨버린 사람.
죽음은 어느 날 그 ‘내일’을 잘라버린다.
그때 남는 것은 거대한 철학이 아니라 아주 작은 후회다.
문병 한 번.
전화 한 통.
손 한번 잡아드릴 일.
주광일 시인은 바로 그 사소해 보이는 인간적 행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죽음이라는 빈자리 앞에서 보여준다.
Ⅳ. 서울의 매미와 디트로이트의 매미
― 그리움은 태평양을 거리로 계산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가장 탁월한 시적 장치는 매미이다.
“서울의 매미는 하루 종일 구슬프게 울어댔습니다.”
통상 매미는 여름을 알리는 생명의 소리다.
뜨거운 햇빛, 녹음, 어린 날의 방학, 나무 그늘과 연결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매미는 생명의 환희가 아니라 죽음을 애도한다.
계절의 상징이 뒤집힌다.
햇빛은 눈부신데 마음은 어둡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오가는데 한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름을 계속 살아가는데, 시인의 마음속 시간만 멈추어 있다.
이 불균형에서 비애가 생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작품 마지막의 문장이다.
“지금쯤 디트로이트의 매미도 엉엉 울고 있는지 자못 궁금해지는 불면의 열대야입니다.”
서울의 매미가 순식간에 디트로이트로 이동한다.
현실의 지도 위에서는 두 도시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다.
문학의 지도에서는 다르다.
그리움 한 줄이면 닿는다.
사랑의 거리는 킬로미터로 측정되지 않는다.
죽음이 육체의 거리를 무한대로 벌려 놓는 순간, 기억은 그 거리를 단숨에 접는다.
서울에서 울던 매미가 디트로이트의 밤까지 날아가는 까닭이다.
이 장면에서 매미는 국적 없는 애도의 사자가 된다.
여권도 필요 없고 비행기도 필요 없다.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이 날개다.
그리움에는 세관이 없다.
떠난 사람을 생각하는 순간 서울과 디트로이트 사이의 대양은 한 장의 엽서만큼 얇아진다.
Ⅴ. “엉엉 울고”
― 사람이 삼킨 울음을 작은 생명이 대신 토해내다
특별히 주목할 표현은 “엉엉 울고”이다.
매미가 ‘운다’고 하지 않았다.
‘엉엉 운다’고 했다.
‘엉엉’은 어린아이의 울음에 가까운 말이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온몸으로 우는 소리다.
여기에서 매미와 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정작 시인은 울음을 길게 묘사하지 않는다.
매미가 대신 운다.
사람이 삼킨 통곡을 작은 곤충이 나무 위에서 토해낸다.
이 시적 전이가 매우 아름답다.
슬픔이 너무 깊어지면 사람은 오히려 말을 잃는다.
눈물조차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때 바람이 울고, 비가 울고, 나무가 운다.
주광일의 작품에서는 매미가 그 역할을 맡는다.
서울의 한 나무에 붙어 울고 있는 작은 생명체가 한 인간의 상실을 대신하여 울음의 볼륨을 높인다.
매미는 외부 풍경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이다.
매미 울음이 커질수록 말하지 못한 미안함도 커진다.
매미가 하루 종일 우는 까닭은 여름이 뜨거워서만이 아니다.
기억이 뜨겁기 때문이다.
Ⅵ. 불면의 열대야
― 더위보다 뜨거운 것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다
이 작품은 “불면의 열대야”로 끝난다.
일반적으로 열대야의 불면은 기온 때문에 발생한다.
이 작품에서는 다르다.
잠을 몰아낸 것은 더위가 아니라 기억이다.
몸은 서울의 방 안에 누워 있으나 마음은 오래전으로 걸어간다.
투병 소식을 들었던 날.
한번 찾아가야지 생각했던 어느 날.
전화라도 했어야 했던 저녁.
그 많은 ‘했어야 했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는데 후회는 현재형이다.
바로 여기에 이 작품의 시간 미학이 있다.
죽은 사람은 시간 밖으로 떠났으나 살아남은 사람은 계속 시간 안에 남는다.
매년 여름은 돌아오고 매미는 다시 운다.
그때마다 어느 한 해의 8월 6일이 되살아날 것이다.
계절은 순환하지만 사람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 불가역성이 죽음의 본질이며 애도의 시작이다.
Ⅶ. 사적인 슬픔에서 보편적 윤리로
― 살아 있을 때 건네야 하는 것들
「여름 엽서 41」은 매제 한 사람을 향한 사적인 글이다.
그럼에도 읽는 이의 가슴에는 자신의 사람이 떠오른다.
좋은 작품이 지닌 힘이다.
시인의 매제가 독자의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형제가 되고, 오래 만나지 못한 친구가 된다.
그 순간 작품은 개인적 추모의 테두리를 넘어선다.
우리에게 삶의 태도를 되돌려준다.
사랑은 마음속에만 오래 보관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사랑에도 몸이 필요하다.
찾아가는 발.
잡아주는 손.
안부를 건네는 목소리.
함께 앉아주는 시간.
인간의 관계는 결국 이런 작고 구체적인 행위로 만들어진다.
죽음 이후의 눈물보다 살아 있을 때의 방문 한 번이 때로 더 귀하다.
백 송이의 조화보다 따뜻한 손 한번이 더 깊다.
「여름 엽서 41」 이 독자에게 남기는 윤리적 울림도 여기에 있다.
이 글은 “잘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한 사람의 후회를 보여준다.
그 장면만으로 충분하다.
독자의 발이 움직이게 된다.
오래 연락하지 못한 사람이 떠오르고, 미뤄둔 안부가 생각난다.
문학이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품격 있는 방식이다.
명령하지 않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
훈계하지 않고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것.
주광일 시인의 짧은 엽서가 지닌 힘이다.
Ⅷ. 맺음말
― 여름이 지나도 매미 한 마리는 오래 울 것이다
한 사람이 떠났다.
서울에서는 매미가 울었다.
디트로이트의 매미도 울고 있을까, 시인은 잠 못 이루며 먼 하늘을 바라본다.
그 짧은 장면 속에 인간 존재의 가장 오래된 슬픔이 놓여 있다.
사랑했던 사람은 떠났고,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하지 못한 일들이 남는다.
그 미완의 마음이 기억이 된다.
기억은 때로 후회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고, 때로 기도라는 이름으로 밤을 건넌다.
「여름 엽서 41」 은 죽은 이를 위한 글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글이다.
아직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만나라는 것.
아직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안부를 건네라는 것.
아직 손의 온기가 남아 있다면 잡으라는 것.
그 메시지는 작품 밖으로 크게 외쳐지지 않는다.
매미 한 마리가 대신 울 뿐이다.
그 울음이 오래 남는다.
여름은 언젠가 물러날 것이다.
매미도 사라질 것이다.
나무마다 가을이 내려앉고 또 겨울이 올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2026년 8월 6일의 매미가 쉽게 울음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그 울음 속에는
이종효 요한이라는 한 사람의 이름이 있고,
“착하게 착하게만 살던” 한 생애가 있고,
끝내 건너지 못한 문병길 하나가 놓여 있다.
사람은 세상을 떠나며 모든 것을 가져가는 듯 보인다.
실은 한 가지를 남긴다.
남은 사람의 마음속에 더 잘 살아야 할 이유를 남긴다.
주광일 시인의 「여름 엽서 41」 은 그 이유를 매미 울음처럼 가늘고 오래 들려주는 작품이다.
울음에는 국경이 없다.
그리움에는 시차도 없다.
서울의 늦은 밤 한 나무에서 시작된 매미 울음 하나가 태평양을 건너 디트로이트의 하늘에 닿는 순간, 한 편의 짧은 여름 엽서는 비로소 한 인간을 위한 오래된 기도가 된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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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일 시인님께
「여름 엽서 41 ― 이종효 요한에게」 를 읽으며 선생님의 마음 한켠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착하게 착하게만 살던 매제.”
이 짧은 한마디 속에 고인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이 모두 들어 있었습니다. 화려한 수식보다 두 번 겹쳐 놓은 ‘착하게’라는 말이 한 사람의 생애를 더 깊고 맑게 밝혀주는 듯했습니다.
문병 한번 하지 못하셨다는 아픔도 깊이 전해졌습니다.
사람은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뒤에야 미처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리곤 합니다. 찾아뵐 것을, 전화 한 번 더 드릴 것을, 손 한번 더 잡아드릴 것을 되새기며 스스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 아쉬움 또한 사랑의 다른 모습이라 여겨집니다.
마음에 깊이 두지 않은 사람 때문에 밤을 지새우지는 않습니다. 매미 울음 하나에도 가슴이 저미는 것은 그만큼 매제 이종효 요한 님을 귀하게 품고 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울과 디트로이트는 멀리 떨어져 있으나 그리움에는 거리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는 순간, 서울에서 울던 매미 한 마리가 태평양을 건너 디트로이트의 하늘까지 날아가는 듯했습니다.
그 울음이 꾸짖음만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먼 곳에서 매제께서 보내시는 안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형님, 너무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그 한마디가 여름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매미의 작은 몸을 빌려 울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남기신 「여름 엽서 41」 은 한 편의 추모문을 넘어 한 사람의 착한 생애를 세상에 오래 머물게 하는 작은 등불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떠나도 사랑으로 불리는 이름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종효 요한 님께서 하늘의 평안 가운데 영면하시기를 삼가 기원드립니다.
아울러 주광일 시인님의 마음에도 어느 새벽, 뜨거운 열대야를 식혀주는 서늘한 바람 한 줄기 찾아들기를 바랍니다.
그리움은 오래 품으셔도 좋겠습니다.
다만 미안함은 조금 내려놓으셔도 좋겠습니다.
그토록 마음 아파하시는 것만으로도 두 분의 인연이 얼마나 깊고 따뜻했는지 충분히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광일 시인님께 깊은 위로와 경의를 올립니다.
청람 김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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