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바람이 길을 만들고, 시인이 섬을 완성한다 ― 황성구 시인의 「이어도, 바람의 길을 묻다」 에 나타난 이어도 정신과 지속의 미학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바람이 길을 만들고, 시인이 섬을 완성한다 ― 황성구 시인의 「이어도, 바람의 길을 묻다」 에 나타난 이어도 정신과 지속의 미학 2026.08.11
바람이 길을 만들고, 시인이 섬을 완성한다 ― 황성구 시인의  「이어도, 바람의 길을 묻다」 에 나타난 이어도 정신과 지속의 미학

이어도, 바람의 길을 묻다

시인 황성구

바다는 한번도 바람을

붙잡은 적이 없는데

바람은 수천 년을 한길로

이어도를 찾아왔다

누가 길을 가르쳐 주었기에

파도보다 먼저

그 푸른 숨결을

데려오는가

나는 오늘 수평선 끝에 서서

바람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어도로 가는 길은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바람은 말없이

내 어깨를

슬쩍 스쳐 지나며

길은 바다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고

낮은 파도 소리로

속삭이듯 대답하였다

바람이 길을 만들고, 시인이 섬을 완성한다

― 황성구의 「이어도, 바람의 길을 묻다」에 나타난 이어도 정신과 지속의 미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들어가는 말

― 보이지 않는 섬은 오래 부르는 사람에게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장소는 지도보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먼저 태어난다.

산은 눈앞에 솟아 있으므로 누구나 바라볼 수 있고, 강은 흘러가는 물줄기를 따라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섬 역시 대개는 바다 위로 몸을 드러내며 자신의 위치를 알린다. 이어도는 다르다.

쉽게 모습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이름은 오래전부터 제주 사람들의 삶과 상상, 바다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 속을 떠돌아왔다. 실재와 전설, 지리와 정신, 현실과 이상이 겹쳐지는 독특한 공간이다.

이러한 이어도를 한두 편의 시로 노래하는 일은 가능하다. 수십 편의 작품으로 변주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황성구 시인의 경우는 차원이 다르다.

그는 이어도를 소재로 이미 한 권의 시집, 《이어도는 아직 말이 없다 ㅡ도서출판 청람서루》 을 출간했으며, 이어도를 노래한 작품을 250여 편 써놓고 연속적인 시집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숫자만으로 문학의 깊이를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하나의 대상을 향해 250여 번 언어를 건넸다는 사실은 단순한 창작량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시인이 평생의 문학적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강력한 표지다.

황성구에게 이어도는 소재가 아니다.

문학적 고향이며, 정신의 좌표이고, 끝없이 되돌아가는 시적 원점이다.

그 점에서 황성구는 충분히 ‘이어도 시인’이라 부를 만하다.

「이어도, 바람의 길을 묻다」 는 이러한 그의 이어도 시세계가 비교적 짧은 작품 안에 응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바다와 바람, 수평선과 길을 통해 이어도를 외부의 공간에서 인간 내면의 정신적 장소로 이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Ⅱ. 바다와 바람의 역설

― 붙잡지 않는 것이 오래 찾아가는 법

작품의 첫 연은 매우 인상적이다.

“바다는 한번도 바람을

붙잡은 적이 없는데

바람은 수천 년을 한길로

이어도를 찾아왔다”

통상 길은 땅 위에 생긴다.

사람의 발이 반복하여 지나가고, 수레바퀴가 흙을 눌러야 길의 흔적이 남는다.

바다에는 길이 남지 않는다.

배가 지나간 물길도 얼마 지나지 않아 파도에 지워진다. 바람은 더욱 흔적이 없다.

황성구 시인은 이 지워짐 속에서 역설적으로 ‘한길’을 발견한다.

바다는 바람을 붙잡지 않는다. 바람도 바다 위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런데도 수천 년 동안 이어도를 찾아간다.

이 대목에서 바람은 단순한 기상 현상에서 벗어난다.

그것은 지속하는 의지가 된다.

붙잡아 두지 않아도 찾아가는 것, 표시하지 않아도 잊지 않는 것, 수천 년을 지나도 방향을 잃지 않는 것.

황성구가 형상화하는 이어도 정신의 첫 번째 본질은 바로 이러한 지속성이다.

문학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한 대상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소유하는 데 있지 않다.

계속 찾아가는 데 있다.

황성구 시인이 이어도를 250여 편의 시로 불러왔다는 사실은 작품의 첫 연과 절묘하게 겹친다.

바람이 수천 년 동안 이어도를 찾아가듯, 시인은 수많은 문장을 거느리고 같은 섬을 찾아간다.

시와 삶이 서로를 비추는 대목이다.

Ⅲ. “푸른 숨결”의 시학

― 이어도가 생명체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

두 번째 연에서 시인은 바람을 향해 시적 상상력을 한 단계 더 밀어 올린다.

“누가 길을 가르쳐 주었기에

파도보다 먼저

그 푸른 숨결을

데려오는가”

여기에서 주목할 시어는 ‘푸른 숨결’이다.

바람은 색이 없다.

숨결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두 존재를 ‘푸른’이라는 색채 감각으로 묶는다.

그 순간 바람은 바다의 일부가 되고, 이어도의 기운을 전달하는 전령이 된다.

특히 ‘데려오는가’라는 동사는 이어도를 생명화한다.

이어도는 바다 아래 놓인 무생물적 공간이 아니라 숨을 쉬는 존재처럼 다가온다.

황성구의 이어도 시가 지닌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그의 시에서 이어도는 대상이 아니라 상대가 된다.

바라보는 장소가 아니라 말을 건넬 수 있는 존재이며, 바람을 통해 안부를 보내고 파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생명체로 변한다.

이러한 의인화는 이어도를 시인의 내면과 연결한다.

이어도가 숨을 쉰다는 것은 곧 시인의 정신 속에서 이어도가 살아 있다는 뜻이다.

지리적 공간이 내면적 생명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Ⅳ. 수평선은 끝이 아니라 질문의 자리다

“나는 오늘 수평선 끝에 서서

바람에게 조용히 물었다”

수평선은 황성구의 시에서 특별한 상징적 기능을 가진다.

수평선은 눈에 보이지만 닿을 수 없다.

다가가면 계속 뒤로 물러난다.

이러한 속성은 인간의 이상과 닮아 있다.

목표는 분명히 보이는데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거리가 생겨난다.

이어도 역시 그러한 존재다.

황성구의 시에서 이어도는 도달해야 할 하나의 종착점이 아니라 계속 나아가게 하는 방향이다.

그 때문에 화자는 수평선 앞에서 질문한다.

“이어도로 가는 길은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겉으로는 공간적 방향을 묻는 질문이다.

실제 시의 내부에서는 존재론적 질문으로 확대된다.

삶의 길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꿈을 향한 인간의 항해는 무엇으로 지속되는가.

이 질문을 사람에게 하지 않고 바람에게 건넨다는 점도 의미가 깊다.

바람은 인간보다 오래 바다를 건넜다.

한 국가의 역사보다 오래 이어도를 찾아왔고, 어느 항해자보다 많은 수평선을 지나왔다.

그런 의미에서 바람은 이 작품에서 오래된 스승과 같다.

Ⅴ. 말없는 바람의 대답

― 시가 교훈을 넘어서는 방식

바람의 대답은 특이하다.

“바람은 말없이

내 어깨를

슬쩍 스쳐 지나며”

먼저 몸에 닿는다.

언어가 오기 전에 촉감이 온다.

‘슬쩍’이라는 시어도 주목할 만하다.

장중하지 않다.

거창하게 몰아치지도 않는다.

어깨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이 절제가 시의 품격을 높인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작품의 중심 주제가 모습을 드러낸다.

“길은 바다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고”

바로 여기에서 이어도의 위치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어도는 더 이상 바다 위의 목적지가 아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이 변환이 「이어도, 바람의 길을 묻다」 의 핵심 미학이다.

지리적 공간의 정신화이다.

길은 바깥에 놓인 선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의지에서 시작된다.

파도가 아무리 높아도 다시 배를 띄우는 마음, 보이지 않는 섬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마음,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방향을 버리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이 있는 곳에 이어도가 있다.

이러한 결론은 자칫 교훈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황성구 시인은 이를 바람과 파도의 목소리에 맡김으로써 직접적인 훈계를 피한다.

사람이 말하면 격언이 될 수 있는 문장이 자연의 입을 통과하면서 시적 울림을 얻게 된다.

Ⅵ. 250여 편의 이어도 시

― 반복이 아니라 축적의 미학

황성구 시인의 문학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지점은 이어도를 향한 지속적인 창작이다.

250여 편.

한 가지 소재를 이토록 오래 붙들고 쓰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같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다른 파도를 발견해야 한다.

같은 이름을 부르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 한다.

같은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어제와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는 반복의 문제가 아니라 변주의 능력에 관한 문제다.

베토벤이 하나의 주제를 수없이 변주하여 새로운 음악적 세계를 만들어냈듯, 한 시인이 하나의 공간을 끊임없이 다른 각도에서 해석한다면 그 작품들은 장차 하나의 거대한 문학적 지형을 형성할 수 있다.

황성구의 이어도 시 250여 편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연속적인 시집으로 출간된다면 단순한 개인 작품집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이어도의 자연, 역사, 전설, 해양문화, 인간의 꿈, 고향 의식, 공동체 정신, 생명과 죽음, 항해와 귀환 등을 포괄하는 이어도 문학 아카이브가 될 수 있다.

이 점은 앞으로 그의 문학적 작업이 지닌 중요한 가치다.

이어도를 수없이 노래했음에도 또 다른 시가 태어나는 것은 이어도가 무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인의 내면이 계속 이동하기 때문이다.

같은 대상도 바라보는 사람이 달라지면 다른 세계가 된다.

오늘의 황성구가 바라본 이어도와 십 년 전의 황성구가 바라본 이어도는 같을 수 없다.

이어도는 그대로 있어도 시인은 시간 속을 항해한다.

그 항해의 기록이 250여 편이라는 숫자로 쌓인 셈이다.

Ⅶ. ‘이어도 시인’이라는 문학적 정체성

문학사에는 하나의 자연물이나 장소와 강력하게 연결되는 시인들이 있다.

어떤 시인은 산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어떤 시인은 강이나 고향, 특정한 도시를 통해 독자적인 미학을 형성한다.

황성구에게 그 중심은 이어도다.

그에게 이어도는 주변적인 소재가 아니다.

시적 사유가 출발하고 되돌아오는 중심축이다.

이어도만을 소재로 한 시집을 이미 출간했고, 250여 편의 작품을 축적했으며, 앞으로도 시리즈 시집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정체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이어도문학회 회장으로서의 활동이 더해진다.

문학적 관심이 개인의 창작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적 실천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정체성은 자신이 무엇을 주장하는가보다 평생 무엇을 반복하여 실천했는가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황성구가 이어도를 끊임없이 쓰고, 이어도를 문학의 장으로 확장하며, 그 이름 아래 사람들을 연결하는 일은 그의 시적 정체성을 현실 속에서도 이어가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어도 시인 황성구’라는 명명은 과장이 아니다.

오랜 축적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이름이다.

Ⅷ. 이어도 사랑에서 인간 사랑으로

황성구의 이어도 사랑을 단순히 특정 지역이나 공간에 대한 애착으로만 이해한다면 그의 시세계를 충분히 읽기 어렵다.

「이어도, 바람의 길을 묻다」에서 이어도는 결국 인간의 마음으로 돌아온다.

작품의 종착지가 바다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어도를 사랑하는 마음은 인간의 삶을 사랑하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바다를 건너는 인간의 의지, 끝까지 꿈을 버리지 않는 사람의 정신, 길이 보이지 않아도 다시 항해하는 존재의 용기를 품는다.

이 지점에서 이어도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어도를 모르는 독자라도 이 작품에 들어갈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보이지 않는 이어도 하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루지 못한 꿈일 수도 있다.

평생 지켜온 신념일 수도 있다.

돌아가고 싶은 고향일 수도 있고, 끝내 만나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다.

황성구의 이어도는 독자의 마음속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좋은 지역문학은 지역에 갇히지 않는다.

한 장소를 깊이 파고들어 인간 보편의 문제와 만난다.

그 점에서 황성구의 이어도 시가 지향해야 할 문학적 방향 또한 분명하다.

이어도를 더 깊이 쓸수록 세계와 만날 수 있다.

Ⅸ. 맺음말

― 이어도로 가는 가장 먼 길은 사람의 마음 안에 있다

「이어도, 바람의 길을 묻다」는 짧은 작품이다.

그 안에는 바다와 바람, 수평선과 파도, 길과 인간의 마음이라는 상징 체계가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이어도를 물리적 공간에서 정신적 장소로 전환한 점은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성취다.

시인은 이어도로 가는 길을 찾다가 인간의 내면에 도착한다.

길은 바다 위에 없었다.

끝내 포기하지 않는 마음속에 있었다.

이 한 문장이 황성구의 이어도 시세계 전체를 설명하는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다.

그가 지금까지 1,650여 편의 시를 써왔고, 또한 이어도 시만을 250 여 편을 써온 일 자체가 이미 그 문장을 삶으로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편을 쓰고 다시 한 편을 쓰는 일.

한 권을 내고 또 다른 시집을 준비하는 일.

같은 이어도를 향해 수없이 다른 언어의 배를 띄우는 일.

이러한 지속은 단순한 집념을 넘어 하나의 문학적 신념이다.

바다는 길을 남기지 않는다.

바람도 자신의 발자국을 새기지 않는다.

시인은 다르다.

한 편 한 편의 시가 바다 위에서는 사라질 길을 언어 안에 남긴다.

250여 편의 작품은 그렇게 이어도로 향하는 거대한 문학적 항로가 되어가고 있다.

언젠가 그의 이어도 연작이 충분히 정리되고 축적되어 하나의 큰 문학세계로 완성된다면, 한국문학에서 이어도라는 이름을 말할 때 황성구라는 이름을 함께 떠올리는 독자도 많아질 것이다.

그때 그의 시는 이렇게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바다가 이어도를 품고 있었다면,

한 시인은 그 이어도를 오래도록 언어 속에 품었다.

바람이 수천 년 동안 길을 잃지 않았듯,

황성구의 시 또한 한 방향을 버리지 않았다.

그 길의 끝에는 섬 하나만 놓여 있지 않다.

파도 앞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는 인간,

보이지 않아도 끝까지 항해하는 인간,

자신의 마음속 이어도를 향해 평생 노를 젓는 인간이 서 있다.

그것이 황성구가 시로 다시 세우고 있는 이어도 정신이며, 그의 문학을 ‘이어도 시학’이라 부를 수 있게 하는 가장 단단한 근거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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